울산 남구에 사는 직장인 이규성(26)씨는 최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 재미있는 글을 많이 올려서 팔로(받아보기)를 해왔던 페이스북의 한 개인 계정에 불법 도박 광고가 대거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씨는 “도박 광고로 뒤덮였길래 처음엔 해킹당한 줄 알았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계정을 판매한 것”이라고 말했다.
SNS 계정을 편법으로 매매(賣買)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매일 뉴스, 동영상 등을 수십 건씩 올려 친구 수를 늘린 뒤 계정의 운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팔린 계정은 대부분 도박이나 성매매 광고와 같은 불법 행위를 홍보하는 데 쓰인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3~5년 전에는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의 매매가 기승을 부렸는데 최근에는 SNS에서 이런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한 달에 수백 개의 계정이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팔로어 1명당 50원씩 팔리는 SNS 계정
4일 스마트폰에서 유명한 중고 물품 직거래 앱(응용프로그램)의 검색창에 ‘트위터’를 입력했다. ‘트위터 7만명 팔로어 계정 싸게 팝니다’라는 글을 포함해 14개가 올라왔다. 이 판매자는 “학업 때문에 트위터를 접게 돼서 싸게 25만원 정도에 팝니다”라며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다.
다른 중고 거래 앱에서 ‘페이스북’을 검색했더니, ‘페이스북 800 팔로어’라는 글이 떴다. 800은 팔로어가 800명이란 뜻이다. 이 판매자는 “한 명당 45원씩 잡아서 3만 8000원 받습니다”라고 썼다. 이런 식으로 계정을 팔겠다는 글이 60~70개에 달했다.
SNS 계정이 쓰다가 버리는 중고 물품처럼 간단하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판매가는 둘쭉날쭉했다.
아예 SNS 계정의 판매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전문 매매 중개업자까지 중계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인터뷰에 응한 SNS 계정 중개업자는 “현재 페이스북 계정의 적정가는 뉴스 같은 일반 콘텐츠로 사람을 끌어모으면 팔로어 1명당 100원이고, 음란 게시물이나 불법 만화 등으로 손쉽게 모았으면 1명당 50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요즘 인기가 시들한 트위터는 가격이 바닥이라고 했다. 이 업자는 “대학생이나 무직인 사람들 중에는 아예 이걸로 돈을 버는 사람도 많다”며 “판매 목적으로 SNS에 새로운 계정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는 게 직업인 셈”이라고 말했다.
SNS 계정 매매가 활발한 이유는 돈을 주고라도 이런 계정이 필요한 수요처가 많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뉴스, 동영상 등 콘텐츠를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주요 통로가 되면서, 예전에는 무작위로 이메일이나 휴대폰 문자로 불법 도박을 유혹했던 업자들이 대거 페이스북으로 몰려온 것이다.
문제는 계정이 팔려나가면서 팔로어의 개인정보까지 모두 불법 사업자에게 넘어간다는 점이다. 이런 계정의 이용자들은 단순히 눈살을 찌푸리는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는 피해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페이스북의 계정이 넘어가면 친구 사이로 연결된 이용자의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생일 등 개인정보도 모두 넘어간다.
◇불법 광고 노출 막을 수 있는 방법 없어
공공연한 SNS 계정 거래를 원천 봉쇄할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자 보호에 나서야 할 페이스북은 “우리 탓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페이스북코리아 관계자는 “계정의 주인이 바뀐다고 해서 이 계정이 매매된 것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며 “돈 거래는 페이스북 밖에서 일어나고 온라인에서는 계정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뽀족한 수단이 없다. 계정의 사적(私的) 거래 자체가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불법 게시물에 대한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 차단하는 것이 고작이다.
성균관대 정태명 교수(소프트웨어학)는 “SNS가 인기를 끌면서 나타난 부작용 중 하나가 매매를 통한 불법 광고 노출”이라며 “인터넷 기업들도 이런 거래 행태가 이용자의 불편을 가중시켜 결국 서비스의 품질을 떨어뜨린다는 생각으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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