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미국 플로리다 펜사콜라 시의회 개막 전에 사탄사원의 데이비드 서홀이 자신들의 교단 의식을 집전하고 있다. 사탄사원은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는 근본주의 성향의 기독교복음주의에 맞서 정교분리 등 인간의 이성에 바탕한 세속주의 원칙을 지키자는 운동이다. 사탄은 사탄사원에게 모든 초자연적 존재를 조롱하는 비유로써 차용됐다. 이날 사탄사원은 기독교가 시의회 개막 전에 기도할 수 있다면 자신들도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 이런 의식을 펼쳤다. <워싱턴포스트> 누리집에 올라온 동영상 갈무리.
악마의 대명사 사탄이 미국에서 정교분리 원칙 수호에 나서고 있다? 황당한 얘기같지만, 기독교 근본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미국에서 사탄이 정교분리 등 세속주의 원칙 수호의 수단과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7월14일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 시의회 본회의 개회 전 기도 시간. 영화 <스타워스>에 나오는 다스 시디어스처럼 검은 가운을 뒤집어 쓴 남성이 연단에 나섰다. 그는 서부 플로리다 ‘사탄 사원’ (Satanic Temple)의 공동 창립자 데이비드 서홀. 그는 자신의 교단 의식을 집전했다. 그는 미리 대기하던 방청석의 사람들이 기독교의 주기도문을 크게 외치는 야유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교단 의식을 끝까지 진행했다.
그가 대표적인 공공장소인 시의회 회의장에서 이른바 악마교의 의식을 집전하게 된 것은 종교의 자유의 평등이라는 원칙에 입각한 것. 펜사콜라 시의회에서는 개회 전에 기도 시간이 있었는데, 이는 이 지역의 보수적인 기독교 교회들에 의해 독점됐다. 서홀은 미국 헌법에 규정된 종교의 자유와 평등에 입각해 자신의 교단에게도 기도할 자격과 기회를 있다고 주장하자, 시의회도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홀과 사탄사원이 추구하는 것은 사실 사탄 숭배가 아니라, 정교분리 등 세속주의 원칙의 옹호, 종교의 평등과 다양성 옹호이다. 사탄사원이 일반인이 혐오하는 사탄교 의식을 공공장소인 시의회에서 관철한 것은 정치를 종교에 귀속시키려는 기독교근본주의를 조롱하기 위해서이다.
사탄사원 운동의 공동창립자인 더그 메스너는 31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이를 분명히 한다. 그는 ‘사탄’이 단지 인간에 대한 모든 형태의 지배에 대한 거부를 상징하는 ‘은유적인 단어’라고 설명한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도 사탄사원을 좌파 정치활동체라고 규정한다.
사탄사원은 자신들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사탄사원의 사명은 모든 사람들 사이의 자비와 공감을 증진하고, 압제적인 권위를 거부하고, 실질적인 상식과 정의를 옹호하고, 인간의 양심에 따라서 개인의 의지와 시민적 품성에 바탕한 숭고한 목적을 수행하는 것이다.”
현재 사탄사원이 가장 주력하는 사업은 공립학교에서 자신들의 사탄클럽방과후교실 개설이다. 이는 기독교복음주의 단체들이 공립학교에서 방과후학교를 개설하자 되자, 이에 대응하면서 자신들의 활동과 조직을 활동할 기회로 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37년 창설된 아동복음주의펠로우십이 후원하는 ‘굿뉴스클럽’이 5세 안팍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근본주의 성향의 기독교복음주의 운동을 전개해왔다. 굿뉴스클럽은 공립학교에서 방과후교실을 개설하려고 노력했으나, 정교분리를 명시한 미국 헌법의 정신에 따라 이를 허용받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 미국 대법원이 후원자의 종교적 견해을 이유로 방과후교실 프로그램을 거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조를 위배하는 것이라며, 종교단체의 방과후교실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 이후 굿뉴스클럽은 2011년까지 미국 공립 초등학교의 5%에 해당하는 3560개 학교에 방과후교실을 개설했다.
사탄사원도 이를 이용하기로 작정했다. 사탄사원의 방과후교실이 물론 악마숭배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사탄사원은 다른 종교들이 인정하는 사탄이나, 루시퍼, 바알제브 등 초자연적인 악마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탄사원은 모든 형태의 초자연적 존재를 부정하며, 과학적 이성이 현실을 가장 정확한 이해할 수 있다는 견해를 표방한다. 메스너는 “굿뉴스클럽이 지옥과 신의 분노라는 공포심을 아동들에게 주입하는 세뇌에 집중하는 반면, 사탄클럽방과후교실은 자유로운 탐구과 이성주의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고 말했다.
덴버대학교의 교육학 석사 출신의 전문교원인 에이미 젠센은 굿뉴스클럽과 사탄사원의 커리큘럼을 비교한 뒤 사탄사원의 자원봉사자 교사로 일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증오하거나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굿뉴스클럽이 가르치려는 것이다”며 “교사로서 나는 사탄사원이 가르치려는 것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방과후교실의 커리큘럼은 추론과 여러 사회생활 기술의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 방과후교실에서는 건강한 간식, 문학수업, 창작활동, 과학교실 및 퍼즐풀기와 예술프로젝트를 포함한다. 사탄사원의 유타 지부장 챌리스 블라이드는 “아이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고, 추론할 수 있고, 동료 인간들과 공감과 자비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사탄클럽방과후교실이 개설된 학교는 미국 전역에서 9개이다.
사탄사원의 이런 활동들은 미국의 공공시설과 장소에서 꺼리낌없이 행해지던 근본주의 성향의 기독교 의식들에게 적지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플로리다 펜사콜리 시의회에서처럼 미국의 많은 시의회들은 개회 전에 기독교가 독점하는 종교의식을 갖는데, 사탄사원이 자신들에게도 기회를 요청하자 아예 이를 폐지해버리고 있다. 애리조나 피닉스 시의회는 사탄사원이 기도 순서 제공을 요구하자, 지난 2월부터 의회에서의 기도를 폐지버렸다. 사탄숭배자들에게 기도 순서를 주느니 아예 폐지한 것이다. 이는 사탄사원이 바로 바라던 바이다.
미국 대법원은 2014년 시의회에서 종교의식이 미국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며, 종교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결하자, 사탄사원은 이를 조롱하고 시험하기 위해 이런 시도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사원은 오클라호마에서 기독교의 십계명을 새긴 조각상을 세우려하자, 이에 대응해서 기독교에서 악마로 취급하는 바포메트 상을 세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사탄사원 류의 운동이 처음은 아니다.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를 창시한 보비 헨더슨은 지난 2005년 캔자스 주 교육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공립학교에서 우주는 신이 창조했다는 지적설계론을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에게 기독교 사상을 주입시키는 우려가 있다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기독교가 공공장소에서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은 그런 대접을 더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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