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외탈세와의 전쟁 ◆
역외탈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법인을 통해 은밀히 이뤄진다. 앞서 국제탐사보도인협회는 1977년부터 파나마에 있는 로펌인 모색 폰세카가 의뢰인과 거래한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를 입수해 공개했는데, 명단에는 일부 국가의 정상까지 등장했다. 이로 인해 아이슬란드 총리가 사임하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조세피난처에 대해 소득세율 및 법인세율이 15% 이하면서 세제의 투명성과 정보 공유 수준이 매우 낮고 기업들이 실제 사업을 수행하지 않는 국가로 정의했다. 이런 국가는 36개국 정도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자금이 이들 조세피난처로 이동했는지 집계된 데이터는 없고 추정치만 있다. 영국에 있는 비정부기구인 조세정의네트워크는 2010년 말 현재 21조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2경4200조원)가 조세피난처로 유입됐다고 분석하기도 했고, 이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30% 이상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조세피난처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바하마·버뮤다·케이맨제도와 같이 아예 법인세나 소득세가 없고 다른 국가와 세무조사나 추징에 대한 조세조약을 맺지 않고 있는 택스 파라다이스(Tax Paradise), 홍콩·라이베리아·파나마처럼 역외 소득에 대해 세금이 없거나 세율이 적은 택스 셸터(Tax Shelter), 룩셈부르크·스위스처럼 특정 산업과 영역에 대해 세제상 특혜를 부여하는 택스 리조트(Tax Resort)다.
이들 조세피난처는 대다수 소규모 국가로 세금을 없애 해외 기업을 유치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데, 이 때문에 타국의 세금 탈루를 조장해 성장하는 경제라고 해서 '기생경제'라는 악명도 붙어 있다. 서류 대행 업무나 환전업 등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카리브해에 있는 버뮤다는 인구 7만명에 불과한 섬나라지만 지난해 1인당 GDP는 8만5700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 세계 상위 6위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 1만5000곳이 이곳에 서류상 회사를 두고 있다. 또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리히텐슈타인은 1인당 GDP가 14만달러로 2위, 독일과 프랑스 가운데 있는 룩셈부르크는 10만6400달러로 3위다.
다국적기업들은 이들 국가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것을 선호한다. 스타벅스가 대표적이다. 스타벅스는 1998년 영국에 진출한 이래 2012년까지 영국에서 총 30억파운드(약 5조3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지만, 이 기간 영국 정부에 납부한 법인세는 860만파운드(약 150억원)에 그쳤다. 영국 법인세율이 20% 안팎인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세금을 내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이에 영국 내 불만이 고조되자 지난해에는 자진해 810만파운드(당시 환율 기준 145억원)를 납부하기도 했다.
세금을 거의 납부하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스타벅스 영국 법인이 네덜란드 계열사에 거액의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역외탈세나 조세회피에 대한 엄정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해외에서도 일고 있다. 제약업체 화이자는 보톡스로 유명한 아일랜드 제약업체 엘러간을 인수한 직후 본사를 통째로 아일랜드로 옮기려고 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아 백지화했다. 이에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기업이 해외로 이전할 경우 탈출세(exit-tax)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