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류인플루엔자(AI) 위기경보 단계를 최고 수준으로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AI로 인한 피해가 사상 최악 수준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뒤늦게 위기경보를 조정한 정부의 조치에 ‘늑장 대응’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이미 1,500만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5일 가축방역심의회를 열고 AI 위기경보를 기존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하기로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발령 시점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이르면 16일 오전 중에 발표된다. 가축 방역과 관련한 위기경보는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4단계로 나뉘는데, AI로 인해 ‘심각’ 경보가 발동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기경보가 ‘심각’으로 변경되면 ▦발생 및 인접 시.도에만 설치됐던 이동통제초소와 거점소독시설이 전국으로 확대되며 ▦농식품부의 방역대책본부가 범정부 차원의 AI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농식품부 장관) 또는 AI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본부장 국민안전처 장관)로 변경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전문가들과 축산농민들 사이에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정부는 6일 가축방역심의회에서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올리는 것을 논의했지만,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보다가 ▦전국적으로 수평전파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아직 AI가 발생하지 않은 영남지역 가금사육밀집단지에서 AI가 발생할 경우 위기경보 단계를 올리겠다며 미뤘다.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상황은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이날 기준으로 살처분된 가금류는 1,544만마리에 달해, 사상 최악의 AI로 기록된 2014년 수준(1,396만마리)을 한참 뛰어 넘었다. 일부 지역에서 바이러스가 방역대를 넘어 전파된 상황이 포착됐고, 이미 양성 판정을 받은 농가 60호의 신고 전 21일간의 차량이동을 분석한 결과 9곳 농가의 차량이 영남지역으로 이동한 것도 드러났다. 특히 이날 방역심의회 도중 부산 기장군 소재 토종닭 농가에서 AI 의심신고가 들어와 현재 정밀검사를 진행 중이다. 영남지역까지 뚫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진작에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올리고 특단의 대응을 강구해야 했는데 정부의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대응이 늦었던 데는 국정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처럼 피해규모가 급속도로 커질 때는 청와대나 국무총리가 나서 부처 간 협조를 구하고 가능한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어야 했는데,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그런 대응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높여도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재 대부분의 거점소독시설에 차량 소독 등을 위한 세척장치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는 등 빈틈이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송찬선 건국대 교수는 “소독을 하라고만 하지 소독제 얼마를 어디에 어떻게 뿌리라는 구체적인 매뉴얼도 없고, 세척장치는 아예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라며 “소독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해줄 전문인력도 없어 현장방역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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