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접종 차질에 방역공백 사태 장기화
정부, ‘O+A형’ 구제역 백신 수입한다더니
아직 백신 제조사 재고물량도 파악 못해
백신 추가공급, 일주일 이상 길어질 듯
정부가 ‘O+A형’ 구제역 백신을 긴급 수입하겠다고 밝혔지만 닷새 동안 정작 이 백신을 만드는 영국 제약사 본사엔 제대로 연락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동안 방역 당국이 한 일은 이 회사의 국내 지사를 재촉한 게 전부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8일 경기 연천군에서 A형 구제역이 발생하자 O형과 A형 구제역을 동시에 방어할 수 있는 ‘O+A형’ 백신 제조사인 영국 메리알에 백신 공수를 긴급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충북 보은군과 전북 정읍시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 유형은 O형이었다. 영국 메리알의 ‘O+A형’백신을 긴급 수입해 사상 첫 두 유형(O형과 A형) 구제역 동시 발생에 대응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었다.
그러나 12일 본보 확인 결과, 농식품부는 이날까지도 ‘O+A형’백신 재고 물량이 얼마나 있는 지조차 메리알 본사에서 아무런 확답도 받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메리알사의 한국 법인인 메리알코리아가 본사에 재고 확인을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회신이 없다고 보고 받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당초 O+A형 백신 추가 공급에 일주일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 일정도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문제는 정부가 국가적 재난인 가축 전염병의 백신 수급 문제를 영국 백신 제조사의 한국법인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백신회사 본사와 직접 핫라인을 구축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메리알사는 공식적으로 메리알코리아와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러한 정부의 대응은 구제역 위기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거세다. 정부가 백신 확보 문제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영국에 직접 사람을 파견한다든지 외교채널 등을 통해 영국 정부 등에 도움을 요청하는 식의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선 메리알사에 ‘O+A형’재고가 있는 지, 과연 수입이 가능한 지도 불확실한 상황다. 그럼에도 방역당국은 물량 공급이 불가능한 경우에 대한 ‘플랜B’도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중국이나 아르헨티나 등 다른 공급처를 알아보고는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메리알사를 통한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농식품부가 대한민국의 방역을 외국회사 한국지점에만 의존하며 방역 당국이 공언한 긴급 백신 접종은 물 건너 갔고 초기 방역‘골든타임’도 지나가고 있다. 백신 물량 부족으로 인한 방역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2011년 최악의 구제역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냔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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