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이 안보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 사건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당연시하고 나아가 확대 배치해야 할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국민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드를 (1기에서) 3기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사드 반대 입장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공격했다. 국민의당은 사드 반대 당론을 재검토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도대체 사드와 김정남 피살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 사건을 안보 불안 심리와 연계하려는 정치권의 행태는 개탄할 일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행태로 인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렀는지 잘 알고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보수세력이 안보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혼란만 부추기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만병통치약처럼 ‘사드 카드’를 수시로 꺼내드는 세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드는 군사적 효용성은 의심스러우면서도 중국의 반발 등 감당하기 어려운 부작용을 초래하는 무기체계이다. 이는 보수세력이 만능키처럼 사용하는 사드가 온전히 정치 공세 수단임을 보여준다.
물론 김정남 피살 사건이 한반도 안보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반인륜적인 김정은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분이 대북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한반도 안보를 좌우할 만큼 직접적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핵·미사일 문제와는 성격이 크게 다른 것이다. 김정남 피살 사건은 결코 사드 배치 명분이 될 수 없다.
김정남 피살 사건은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북한의 개입 가능성만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을 뿐 범행 주체 등 세부적인 내용은 불명확하다.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된 용의자 2명의 국적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로 드러나는 등 다국적 범죄의 성격을 띠는 점은 사건이 생각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우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더라도 정치권의 안보 불안 논란은 성급하고 바람직하지 않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확인된 사실 외에는 일절 발표하지 않기로 하는 등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보수 정치세력은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따로 있는데 정작 남한이 홍역을 치르는 이상한 현상이 더 이상 반복돼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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