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정부는 피살된 김정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사인을 특정할 수 없다고 16일 밝혔다. 시신을 북한에 인도할 뜻도 시사했다. 사인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시신을 가해자로 추정되는 북한에 넘겨버리면 사건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를 경악케 한 피살 사건의 진실이 묻혀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흐마드 자히드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이날 외신 인터뷰에서 “전날 김정남 시신을 부검했지만 사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모든 수사와 의학적 절차가 마무리되면 대사관을 통해 가까운 친족에게 시신을 보낼 수 있다”면서 북측에 시신을 인도할 방침을 나타냈다.
앞서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은 전날 수시간 동안 부검을 막으면서 시신 인도를 요구했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살해 과정 전반을 감추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부검을 막지는 못했지만 ‘사인불명’이라는 결과를 얻고 시신도 곧 넘겨받게 될 경우 북한으로선 나쁘지 않은 결과일 수 있다.
살해 용의자는 속속 체포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날 김정남 살해 혐의로 인도네시아 여권을 가진 여성 1명과 말레이시아 국적의 남성 1명을 추가로 체포했다. 전날 붙잡힌 베트남 여권 소지 여성까지 포함해 용의자 3명이 체포된 것이다. 추적 중인 남성 용의자 4명 가운데는 북한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여권을 가진 여성은 25세의 ‘시티 아이샤’로 알려졌다. 전날 체포된 여성은 29세 ‘도안 티 흐엉’이라고 기재된 베트남 여권을 갖고 있었다. 다만 이들의 여권이 분실되거나 훔친 여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지 경찰은 두 여성 모두 김정남 피살 현장인 쿠알라룸푸르 공항 CCTV 영상에 찍힌 인물이라고 밝혔다. 지난 13일 공항에서 김정남에게 독극물 공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이 모두 잡힌 것이다. 경찰은 이들이 특정 국가에 고용돼 암살을 감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말레이시아 법원은 이 2명에 대해 7일간 구금 명령을 내렸다.
인도네시아 여권 소지자의 남자친구인 말레이시아인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어 체포됐다. 이 남자가 경찰이 추적 중이던 남성 공범 4명 가운데 1명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트남 여권 소지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남성 공범 4명 가운데 북한계와 베트남계가 포함돼 있다고 진술했다. 또 자신과 여성 공범은 “나쁜 장난을 쳐보자”는 남자들의 제안으로 김정남 얼굴에 스프레이를 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여성이 체포 당시 메고 있던 디올 크로스백에서 발견된 독극물의 성분을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김정남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 북한 인사들과 세 차례 접촉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귀국 명령을 전달받았다고 보도했다. 김정남은 “생각해볼 기회를 달라.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답했다. 동생의 귀국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이 암살 배경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쿠알라룸푸르=신훈 기자, 김현길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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