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녹음파일’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변수로 떠올랐다. 이 녹음파일은 최순실(61) 씨의 비서 역할을 했던 김수현(37) 고원기획 대표가 2014년 5월부터 2016년 8월 사이에 자신의 휴대전화로 고영태(41) 전 더블루K 상무 등과의 통화를 녹음한 것이다. 최근 공개된 2~3개의 녹음파일에서 최씨의 자금을 고씨 등이 빼돌리려 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정황이 나오자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녹음파일은 고씨 등이 사익을 챙기기 위해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을 기획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 예로 지난해 2월 29일 고씨는 김 대표와의 통화에서 “제일 좋은 그림은 뭐냐면 이렇게 틀을 딱딱 몇 개 짜놓은 다음에 빵 터져서 날아가면 이게 다 우리 거니까, 난 그 그림을 짜고 있는 거지”라고 말했다는 대목 등이다.
하지만 고영태 씨는 지난 9일 <월간중앙>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 건 최순실 씨의 회사에 사표를 내려고 고민하던 시기에 녹음된 내용”이라며 “농담조의 말이었고 이미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끝난 일이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고 씨와의 일문일답
Q : ‘김수현 녹음파일’이 문제되고 있는데. A : “검찰에서 이미 조사받고 문제없다고 해 끝난 일이다. K스포츠 재단 당시 사무총장의 배임 행위를 인지하고 ‘사무총장을 잘라야 한다’는 식으로 농담 겸 한 말로 기억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사석에서 흔히 하는 농담 있지 않나. ‘아주 이 나라가 썩었어. 싹 다 바꿔야 해. 너는 국무총리하고 나는 문체부 장관 할게’ 뭐 이런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해명하는 것도 구차하고 민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든지 적극적으로 조사받을 준비가 돼있다. 처벌받아야 한다면 받겠다. 지난 해 12월부터 일관되게 말해왔듯이 그간의 제 행태에서 문제되는 부분이 드러난다면 반드시 책임지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Q : 그동안 왜 잠적했나. A : “최 씨 밑에서 일했던 입장에서 뭘 잘했다고, 떠들썩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겠나. 물론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도 해서 움츠려 든 것도 있다.”
Q : 신변의 위협을 어떻게 느꼈나. A : “뭐라 딱히 표현할 수 없는데…. 당초 언론에 제보하고 검찰에 모든 내용을 다 얘기할 때도 은연 중 그런 생각은 항상 안고 갔다. ‘이러다 잘못되는 거 아닐까? 보복당할 수도 있을 텐데’라고. 한번은 집에 가는 데 어떤 봉고차가 멈추더니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내리더라. 순간 머리 속에 온갖 상념이 스쳐지나갔다. 이젠 죽는구나 했다. 그때 심정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알고 보니 기자들이었지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Q : 국정농단 사건의 '의인'으로 대접받다가 최근 녹취록 논란으로 최순실의 ‘공범’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분이 어떤가. A : “이제껏 단 한 번도 나 자신이 의인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 어떤 의원님이 저를 의인이라 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 부담스럽고 민망했다.”
고씨는 지난 12월 28일부터 이어진 기자와의 수 차례 통화에서도 “자꾸 내가 의인이라는 식으로 방송에 나오던데,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누가 보면 의인이라고 자평하는 줄 오해할 것 같아 염려 된다”고 말해왔다.
Q : 최순실 씨와 내연관계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A : “실제 내연관계였다면 증거가 반드시 있을 거다. 그런데 왜 내놓지 못하나? 내연남이라면 차은택 씨처럼 잘 나갔어야지, 왜 한몫 제대로 못 챙겼을까 거꾸로 내가 묻고 싶다. 제가 의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쓰레기는 아니다."
Q : 지난 해 말까지 머물던 집이 장시호 씨의 명의로 된 집이었는데. A : “원래 아는 형과 동거 중이었는데, 최씨가 보안 유지를 위해 집을 옮기라 지시했었다. 그때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하고 머물렀던 집이다. 원래 단순한 성격이라 그 집의 명의가 누구로 돼있는지 관심도 없었고, 장시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에야 장씨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나중에 장씨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간의 최씨가 벌였던 일들에 대해 의문점도 있었는데 장씨와 얘기하며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보고 싶다.” (장시호 씨는 이 부분과 관련해 지난 10일 변호인을 통해 기자에게 “고영태 씨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내 명의로 된 집이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고씨와 동거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어이없어서 크게 웃었다. 구치소에서 덕분에 처음으로 웃었다”고 말했다.)
Q : 최씨와 관련된 얘기로 인해 엄청난 일들을 겪고 있는데, 후회되지는 않나. A : “가끔 길에서 모르는 분들이 제게 ‘힘내세요. 고영태 씨~’라고 해주신다. 순간 멋쩍고 민망해서 고개로 까닥 인사하고 돌아서곤 했다. 한번은 집에 와서 방 한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났다. ‘내가 뭐라고…’라고 중얼거리게 되더라. 처음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쁜 일을 알리는 제 자신이 마치 영화 <내부자들>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철이 드는 기분이다. 최씨가 나쁜 사람인 줄 알면서도 열심히 시키는 일을 하던 시간이 있었다. 남은 시간 반성하며 살고 싶다.” <인터뷰 전문은 2월 17일 발간되는 월간중앙 3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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