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통치에 자신이 없었으면, 교과서 국정화를 한답니까. 동아시아에서는 북한만 하고 있는 것을.” 한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중국까지 알려지면서 중국의 한 역사교육자는 이렇게 말했다.
집권 4년차를 향해 가는 지금, 자신감을 갖기에는 박근혜 정부의 성적표가 초라하다. 체감경기는 고사하고 자신하던 각종 경제지표마저 바닥이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1인당 국민소득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LG경제연구원은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2만7100 달러, 내년 2만7000 달러로 2년 연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고 4만 달러 시대를 위한 기반을 다지겠다고 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3%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한국은행은 경제성장률을 3.4%로 전망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7%로 전망한다. 수출도 부진하다. 지난 7월 정부는 ‘수출 경쟁력 강화’ 대책을 처방전으로 내놓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8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9%로 떨어졌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였다. 10월 수출 실적은 더 떨어져 -15.8%를 기록했다. 서민들의 체감경기와 직결되는 가계부채는 위험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가계와 기업 간의 소득불균형 확대는 심각하다. 양극화는 인내 수준을 넘어 헬조선의 ‘수저 계급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긍정적 사고’ 강조하는 국정화 논리들
김영삼 정권 말기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는 암울한 진단마저 나온다. 민주정책연구원은 지난 11월 4일 발표한 <프레임과 내년 총선, 그리고 대응전략>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그에 따른 논란도 집권 4년차를 앞두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정과 민생파탄을 은폐하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임.”
“통치에 자신이 없어서”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부·여당의 국정화 강행 논리는 역설적으로 역사에 대한 ‘자신감 고취’다. 정부·여당 및 보수단체들은 현행 교과서가 ‘패배주의’를 가르치고 있다며 ‘우리 역사에 대한 자신감을 갖자’고 강조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0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 역사교과서가 청소년에게 패배의식을 가르치고 있다. 개발도상국이 한국의 성장과 발전을 부러워하는데, 한국에선 ‘헬조선’이나 ‘망할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군림하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 ‘전도사’로 알려진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도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역사 바로 세우기’ 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교과서들 역시 대한민국이 일으켜 세운 기적의 힘에 대한 내용은 없고, 학생들에게 불평과 남 탓, 패배감을 심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헬조선, 희망이 없는 나라, 특권층만 잘사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보수 시민단체인 블루유니온 권유미 대표도 ‘패배주의’를 우려하고 ‘긍정적 사고’를 강조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일부 교사들이 정치투쟁을 가르치면 안 된다. 학생들은 전 세계를 바라보며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하는데, 사회를 어둡게 바라보고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가리키는 교과서 국정화의 목표는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민 만들기’이다. 교과서를 통해 국민을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성공한’ 국가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 만들기’는 2008년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와 2013년 ‘교학사 교과서’ 논쟁 때도 있었다.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몇몇 잘 알려진 역사서들을 보면 모두 너무 심하게 대한민국의 역사를 비판하고 있어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권장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애국적이지 않은 이유는 중·고등학교의 교사, 그리고 교육정책을 맡은 정부 당국이 국민의 의무를 가르치는 부분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핵심이다. 이러한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2015년 국정화 논쟁에서는 ‘자유경제원’에 의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보수세력인 정부·여당이 ‘긍정적인 국가관’ ‘긍정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경제학 교수와 전경련의 싱크탱크 자유경제원까지 이에 앞장서는 이유는 뭘까. 긍정적인 국가관과 긍정 이데올로기는 시장경제의 폐해를 감추고 변호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희경 사무총장과 김무성 대표가 ‘패배의식’과 ‘남 탓’을 비판한 것처럼 ‘긍정 이데올로기’는 문제를 국가의 탓이나 체제의 탓이 아니라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 ‘긍정 이데올로기’가 시장경제의 변호인 역할을 한 사례는 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94년 AT&T는 1만5000명의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하고 바로 그날 직원들을 동기유발 행사에 불러 모아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고된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이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하며 친기업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한 이명박 정부 때도 비슷하게 변주된다. 청년 실업난이 갈수록 악화되던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G20 세대는 긍정의 힘으로 도전한다. 세계무대에 도전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처지가 어려워도 인내하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극복해낸다”고 말했다. 청년세대의 실업난을 청년 개인의 의지로 극복하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다.
시장경제 폐해 감추고 변호 역할 가능
교과서 국정화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민’이 만들어진다면 기업에 더 없이 편리하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에서 국가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긍정적 사고는 미국의 국가적 자부심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일종의 상징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한 기업이든 경제 전체든 영원한 성장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는 영원한 성장이 숙명인 것처럼 꾸미거나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은 당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성공 필요성을 굳게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줄고, 직업의 안정성은 보장 받을 수 없고, 노동시간은 늘어난 오늘날의 노동현실에 노동자들에게 ‘긍정적 사고’를 주입하는 것은 기업에 반드시 필요한 사고방식인 것이다.
‘반노동’ ‘친시장’으로 향하는 ‘지식의 표준’
‘긍정적인 국가관’ ‘긍정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만들어진 교과서는 학생들을 어떤 인간으로 만들까.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은 아직 국정 교과서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교학사 교과서를 근거로 추정해 볼 때, 국정 교과서는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국가가 동원할 때 언제든지 자기 것을 내던지고 참가할 수 있는 인간상을 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99%가 반대하는 교과서이지만 교과서가 만들어진다면 곧 ‘지식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식의 표준’은‘반노동’‘친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육훈 소장은 “기업인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 땅에 살았던 민중들의 입장에서 어려움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민주화를 이루고 산업화를 이뤘던 정당한 기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3년 발행된 교학사 교과서의 탐구문제는 교과서가 학생들의 사고과정을 어떻게 교묘하게 규정했는지를 보여준다. 윤세병 대덕고 교사의 말이다. “가장 심했던 게 을미사변에 대한 탐구문제였다. ‘당시 일본은 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일본인의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하도록 유도했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과제를 제시해 보니 ‘명성황후는 눈엣가시였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윤 교사는 “대개의 교과서에서 탐구과제는 보통 2개로 구성돼 있는데, 하나는 교과내용을 확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바탕으로 생각을 확산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게 하는 ‘확산형 질문’이다. 그러나 교학사 탐구과제는 노골적으로 유도질문을 하고 그것이 부족해 힌트를 주면서 그들이 의도한 대로 학생들이 답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집필될 국정 교과서 또한 이러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윤 교사는 우려했다. “대안교과서나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했던 이영훈 교수나 안병직 교수 등이 이야기하는 게 경제적 인간형이다. 호모이코노미쿠스. 경제학은 이기적 인간을 전제로 한다. 이런 전제로 교과서를 집필하면 필연적으로 친일도 미화될 수밖에 없다. 일제가 식민지를 어떻게 했던간에 근대 자본주의의 시대물을 심어놓은 것 아닌가라는 식이다. 이것이 현대사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연결되어서 완전히 기업논리로 갈 것이다. 현재 국정화 필진 중에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가깝다는 짐작이다.” 김육훈 교사는 “지금 국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역사교육론은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만 갖고 북한이 남한보다 낫다는 식으로 자긍심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인권이나 사회의 다원적 가치 이런 것들은 억압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낙관적 편견은 자신들이 부정적인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낮다고 인식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회학자 캐런 세룰로는 ‘낙관적 편견’이라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준비태세를 와해시키고 재앙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과 보수단체는 ‘패배주의’ ‘남 탓’ ‘자학사관’이라고 지칭하면서 한국 사회에 ‘낙관적 편견’을 강요하고 있다. “불쾌한 가능성과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차단하려는 쉼없는 노력, 곧 고의적인 자기기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긍정적 사고는 개인 및 국가 차원의 성공과 결부된 행동양식의 정수이지만 그 근원에 놓인 것은 무시무시한 불안감이다.”(<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정부·여당은 헬조선 등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를 보여주는 ‘불편한 단서’들을 ‘교과서 때문’으로 몰아가며 ‘긍정적인 국가관’을 설파하고 있지만, 그 근원에는 “통치에 자신이 없는” 집권세력의 ‘불안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집권 4년차를 향해 가는 지금, 자신감을 갖기에는 박근혜 정부의 성적표가 초라하다. 체감경기는 고사하고 자신하던 각종 경제지표마저 바닥이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1인당 국민소득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LG경제연구원은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2만7100 달러, 내년 2만7000 달러로 2년 연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고 4만 달러 시대를 위한 기반을 다지겠다고 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3%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한국은행은 경제성장률을 3.4%로 전망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7%로 전망한다. 수출도 부진하다. 지난 7월 정부는 ‘수출 경쟁력 강화’ 대책을 처방전으로 내놓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8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9%로 떨어졌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였다. 10월 수출 실적은 더 떨어져 -15.8%를 기록했다. 서민들의 체감경기와 직결되는 가계부채는 위험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가계와 기업 간의 소득불균형 확대는 심각하다. 양극화는 인내 수준을 넘어 헬조선의 ‘수저 계급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긍정적 사고’ 강조하는 국정화 논리들
김영삼 정권 말기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는 암울한 진단마저 나온다. 민주정책연구원은 지난 11월 4일 발표한 <프레임과 내년 총선, 그리고 대응전략>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그에 따른 논란도 집권 4년차를 앞두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정과 민생파탄을 은폐하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임.”
“통치에 자신이 없어서”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부·여당의 국정화 강행 논리는 역설적으로 역사에 대한 ‘자신감 고취’다. 정부·여당 및 보수단체들은 현행 교과서가 ‘패배주의’를 가르치고 있다며 ‘우리 역사에 대한 자신감을 갖자’고 강조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0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 역사교과서가 청소년에게 패배의식을 가르치고 있다. 개발도상국이 한국의 성장과 발전을 부러워하는데, 한국에선 ‘헬조선’이나 ‘망할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군림하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 ‘전도사’로 알려진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도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역사 바로 세우기’ 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교과서들 역시 대한민국이 일으켜 세운 기적의 힘에 대한 내용은 없고, 학생들에게 불평과 남 탓, 패배감을 심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헬조선, 희망이 없는 나라, 특권층만 잘사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보수 시민단체인 블루유니온 권유미 대표도 ‘패배주의’를 우려하고 ‘긍정적 사고’를 강조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일부 교사들이 정치투쟁을 가르치면 안 된다. 학생들은 전 세계를 바라보며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하는데, 사회를 어둡게 바라보고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가리키는 교과서 국정화의 목표는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민 만들기’이다. 교과서를 통해 국민을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성공한’ 국가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 만들기’는 2008년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와 2013년 ‘교학사 교과서’ 논쟁 때도 있었다.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몇몇 잘 알려진 역사서들을 보면 모두 너무 심하게 대한민국의 역사를 비판하고 있어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권장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애국적이지 않은 이유는 중·고등학교의 교사, 그리고 교육정책을 맡은 정부 당국이 국민의 의무를 가르치는 부분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핵심이다. 이러한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2015년 국정화 논쟁에서는 ‘자유경제원’에 의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보수세력인 정부·여당이 ‘긍정적인 국가관’ ‘긍정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경제학 교수와 전경련의 싱크탱크 자유경제원까지 이에 앞장서는 이유는 뭘까. 긍정적인 국가관과 긍정 이데올로기는 시장경제의 폐해를 감추고 변호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희경 사무총장과 김무성 대표가 ‘패배의식’과 ‘남 탓’을 비판한 것처럼 ‘긍정 이데올로기’는 문제를 국가의 탓이나 체제의 탓이 아니라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 ‘긍정 이데올로기’가 시장경제의 변호인 역할을 한 사례는 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94년 AT&T는 1만5000명의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하고 바로 그날 직원들을 동기유발 행사에 불러 모아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고된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이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하며 친기업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한 이명박 정부 때도 비슷하게 변주된다. 청년 실업난이 갈수록 악화되던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G20 세대는 긍정의 힘으로 도전한다. 세계무대에 도전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처지가 어려워도 인내하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극복해낸다”고 말했다. 청년세대의 실업난을 청년 개인의 의지로 극복하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다.
시장경제 폐해 감추고 변호 역할 가능
교과서 국정화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민’이 만들어진다면 기업에 더 없이 편리하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에서 국가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긍정적 사고는 미국의 국가적 자부심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일종의 상징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한 기업이든 경제 전체든 영원한 성장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는 영원한 성장이 숙명인 것처럼 꾸미거나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은 당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성공 필요성을 굳게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줄고, 직업의 안정성은 보장 받을 수 없고, 노동시간은 늘어난 오늘날의 노동현실에 노동자들에게 ‘긍정적 사고’를 주입하는 것은 기업에 반드시 필요한 사고방식인 것이다.
‘반노동’ ‘친시장’으로 향하는 ‘지식의 표준’
‘긍정적인 국가관’ ‘긍정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만들어진 교과서는 학생들을 어떤 인간으로 만들까.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은 아직 국정 교과서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교학사 교과서를 근거로 추정해 볼 때, 국정 교과서는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국가가 동원할 때 언제든지 자기 것을 내던지고 참가할 수 있는 인간상을 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99%가 반대하는 교과서이지만 교과서가 만들어진다면 곧 ‘지식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식의 표준’은‘반노동’‘친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육훈 소장은 “기업인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 땅에 살았던 민중들의 입장에서 어려움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민주화를 이루고 산업화를 이뤘던 정당한 기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3년 발행된 교학사 교과서의 탐구문제는 교과서가 학생들의 사고과정을 어떻게 교묘하게 규정했는지를 보여준다. 윤세병 대덕고 교사의 말이다. “가장 심했던 게 을미사변에 대한 탐구문제였다. ‘당시 일본은 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일본인의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하도록 유도했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과제를 제시해 보니 ‘명성황후는 눈엣가시였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윤 교사는 “대개의 교과서에서 탐구과제는 보통 2개로 구성돼 있는데, 하나는 교과내용을 확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바탕으로 생각을 확산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게 하는 ‘확산형 질문’이다. 그러나 교학사 탐구과제는 노골적으로 유도질문을 하고 그것이 부족해 힌트를 주면서 그들이 의도한 대로 학생들이 답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집필될 국정 교과서 또한 이러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윤 교사는 우려했다. “대안교과서나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했던 이영훈 교수나 안병직 교수 등이 이야기하는 게 경제적 인간형이다. 호모이코노미쿠스. 경제학은 이기적 인간을 전제로 한다. 이런 전제로 교과서를 집필하면 필연적으로 친일도 미화될 수밖에 없다. 일제가 식민지를 어떻게 했던간에 근대 자본주의의 시대물을 심어놓은 것 아닌가라는 식이다. 이것이 현대사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연결되어서 완전히 기업논리로 갈 것이다. 현재 국정화 필진 중에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가깝다는 짐작이다.” 김육훈 교사는 “지금 국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역사교육론은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만 갖고 북한이 남한보다 낫다는 식으로 자긍심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인권이나 사회의 다원적 가치 이런 것들은 억압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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