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탓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부지가 경북 성주로 확정된 이후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국방부가 또다시 책임을 떠넘기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한민구 장관은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사전 설명과 협조의 과정을 밟으려고 했는데, 자꾸 언론에서 (예상 후보지가) 나오니까, 조기에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드 배치 부지를) 발표했다”고 답했다. 주민들에게 충분한 동의를 구하려 했지만, 언론이 등을 떠밀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드 발표 과정을 되짚어보면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 국방부는 쫓기듯 사드 배치를 발표했고, 이 과정에서 국론이 분열됐지만 사태 수습은커녕 미군의 눈치를 보는데 급급했다. 물론 무분별한 사드 괴담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한 장관 스스로가 ‘일개 포대’라던 사드로 인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안보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도 국방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 부지를 수 주 안에 발표한다”고 밝힌 것은 지난달 8일이었다. 전날 오후에 공지된 갑작스런 브리핑이었다. 이후 ‘수 주’라는 시간을 놓고 2주 후인 21~22일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마침 미군이 괌에 배치한 사드 포대를 언론에 공개하기로 입장을 바꾼 터였다. 레이더 전자파 유해논란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현장 취재날짜는 17~19일로 잡혔다. 군 관계자는 “미군측에서 괌기지 공개 직후인 22일쯤 사드 배치 부지를 발표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
▲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15일 오전 경북 성주군청광장에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가진 가운데 성주 주민들이 사드배치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결정타는 12일자 일간지 보도였다. 그간 한번도 거론되지 않던 경북 성주군을 후보로 지목하면서 국방부는 당혹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중구난방으로 튀던 언론 보도를 내심 즐기다가 일격을 당한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국방부는 당장 발표하자고 주한미군에 긴급 요청했다.
돌발 요청에 미군은 난색을 표했다. 더구나 사드 책임자인 토머스 밴달 미8군사령관이 해외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미군 관계자는 “한미 양측이 얼굴을 붉힐 정도로 언쟁을 벌인 것으로 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궁지에 몰린 국방부는 미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13일 발표를 강행했다. 한미 양국은 사드 배치를 통해 동맹의 공고함을 과시하려 했지만, 정작 최종 발표현장에는 미군측 인사가 자취를 감추면서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심지어 국방부는 13일 오후 3시 발표를 불과 5시간 남겨 놓고서야 언론에 통보해 ‘소통부재’의 극치를 보였다.
발표 순간에도 국방부는 우왕좌왕했다. 성난 성주군민 수백 명이 상경하자 국방부는 부랴부랴 오후 4시로 면담을 잡았다. 사드 발표 한 시간 뒤였다. 자연히 성주군민들을 우롱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에 국방부는 예정된 발표를 돌연 취소했다가 사방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오자 몇 분만에 다시 번복하는 촌극을 벌였다.
▲ 김광수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