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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ugust 12, 2016

무엇이 ‘사대’고 ‘매국’인가? 오용되고 남용되는 용어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 전 통일부 장관
용어들이 오용·남용되고 있다. ‘사대’는 어떤 건가? 약소국이 자국 이익보다 강대국의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사대다. 외국 언론에 정부정책 비판이 ‘매국’이다? 매국은 권력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주권이나 이권을 팔아먹는 일이다.

사드 찬반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보복이 사실상 시작된 것 같다. 그러자 사드 찬성 언론들은 전문가들의 중국 언론 인터뷰가 중국의 보복을 유도한다면서 ‘친중 사대 매국’이라고 공격한다. 이런 움직임에 기시감이 든다. 1970~80년대 민주인사들이 어렵사리 외국 언론과 만나 정부를 좀 비판하면 당시 군사정권은 으레 ‘사대’나 ‘매국’의 딱지를 붙였던 적이 있다.

지난 8월1일 오후 필자는 중국 <신화통신>과 인터뷰했다. 사드를,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큰 틀의 동북아 정세 흐름과 연관 지어 얘기했다. 골자는 이렇다.

중국이 2010년대부터 ‘중화부흥-중국몽’의 기치를 내걸고 ‘책임대국’을 자임하고 나섰다. 천하를 호령하던 과거 중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아시아 회귀-아시아 재균형’ 정책으로 중국의 그런 움직임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시진핑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태평양은 중·미가 나눠 써도 충분할 만큼 넓다”고 말한(2013.6) 뒤에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훨씬 강화됐다. 치고 나가려는 중국과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사이에 현재 3개의 대결전선이 형성돼 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한반도다. 이렇게 보면, 한반도 사드 배치는 미·중 패권 경쟁 바둑판에 미국이 놓은 ‘신의 한 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드는 북한 미사일 요격도 하지만, 탐지거리 2000㎞인 엑스밴드 레이더를 통해 중국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 핵·미사일 때문에 절대 필요하다던 사드를 수도권에서 먼 곳에 배치한단다.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은 이제 사드보다 아래 급인 패트리엇 미사일로 방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누구를 위한 사드 배치인가’라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만약 그것이 미국의 동북아 패권 유지 전략의 일환이라면, 우리는 대북 안보보다 미국의 동북아 국가이익을 더 챙겨준 셈이다.

그리고 한·미 동맹 강화 차원에서 사드가 실제로 배치되면 그동안 공들여 구축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끝날 것이고,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2014년 6월 사드 한반도 배치 얘기가 나온 뒤 중국은 누차 반대 의사를 공표했고, 시진핑 주석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우리에게 보복할 가능성은 높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외교정책은 실패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상이 인터뷰 요지였다.

8월3일 한 종편 텔레비전 기자가 전화로 신화통신 인터뷰에 대해 질문했다. 기사를 읽었을 것으로 보고 요지만 설명했다. 그날 오후 그 종편 텔레비전은 인터뷰의 논리나 요지는 소개하지 않고 중국 언론에 정부 정책을 비판함으로써 중국의 공세를 부채질한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비슷한 성향의 신문과 종편들도 ‘친중 사대’ 운운하는 보도를 했다. 중국의 보복 예측이 보복을 유도한다는 보도도 있다. 마침내 여당 원내대표는 중국 언론에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은 ‘매국’이라고 규정했다.

용어들이 오용·남용되고 있다. 먼저, ‘사대’는 어떤 건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보면, 고려조 후반과 조선조 때 우리나라는 중국을 상국(上國)으로 섬기며 조공을 바쳤다. 대외관계는 먼저 상국에 물어본 뒤 지침에 따라야 했다. 우리 왕은 물론 세자까지 중국이 책봉했다. 이런 관계가 사대 관계다. 오늘날 용어로는 약소국이 자국 이익보다 강대국의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사대다. 중국 언론 인터뷰가 ‘신사대주의’라던데, 미국 언론에 정부 정책 비판하면 그건 무슨 사대주의인가?

외국 언론에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매국’이다? 매국은 권력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주권이나 이권을 팔아먹는 일이다. 조선조 말 대신들이 나라의 외교권을 일본 정부에 넘긴 을사조약 체결이 대표적 매국이다. 조선의 금광채굴권이나 철도부설권 같은 이권을 미국·일본 업자에게 넘긴 것도 매국에 해당한다. 국사 결정권이 없고 이권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이 매국이다.

러시아 공산혁명 지도자 레닌은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언어의 마술을 걸어야 한다”며 선전·선동으로 혁명동력을 키웠다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런 중우정치를 할 단계는 지나지 않았는가? 국민의 정치의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용어는 선동적으로 쓰기보다 사전적 의미로 쓰는 것이 옳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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