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8일 갑자기 청와대와 새누리당에게 책 한 권을 추천했습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소설 ‘거짓말이다(북스피어)’를 언급하며 “김탁환의 새 소설인 ‘거짓말이다’를 무더위와 함께할 소설로 강추한다”며 “새누리당과 청와대에 권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는데요.
여름 휴가를 앞두고 곳곳에서 앞다퉈 ‘휴가철에 읽은 만한 책’을 추천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왕왕 “이 책 한 번 읽어봐” 하는 시즌 이기에 문 전 대표의 추천은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 전 대표의 추천이 눈에 띄는 것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콕 찍었다는 점입니다. 문 전 대표는 “세월호 수색 작업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들의 얘긴데, 읽으면서 우리의 무관심과 무성의가 참 아팠다”며 “특히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기간) 연장에 반대하는 새누리당과 청와대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거짓말이다’는 ‘불멸의 이순신’ 등을 집필한 역사소설 작가 김탁환씨의 신작으로 세월호 민간잠수사인 고(故) 김관홍씨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수색 작업 후유증에 시달리던 김씨는 책이 세상에 등장하기 얼마 앞두지 않은 6월 17일 삶을 마감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는데요.
12년만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전 대표가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한 것은 지난달 18일이었다고 합니다. 앞서 히말리야 트레킹을 마치고 지난달 9일 귀국해 경남 양산 자택에 머물던 문 전 대표는 서울로 올라와 김관홍 잠수사의 유족을 만났습니다. 자리를 함께한 세월호 유족의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했던 박주민 더민주 의원은 이튿날인 19일 자신의 SNS에 “김 잠수사가 돌아가셨을 때 문 전 대표는 멀리 네팔에 계셔서 조문을 하지 못하시고 조화만 보냈다. 이후 그 일을 계속 마음에 걸려 하다 유족들을 찾아왔다”고 전했는데요.
마침 이날은 책이 정식 출판에 앞서 예비 판매를 시작 하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김 잠수사의 한 지인이 문 전 대표에게 김 잠수사 얘기를 다룬 책이 곧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전했다고 합니다. 문 전 대표는 이 자리서 김탁환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목격자들’이라는 책을 이미 접했다며 “조선시대의 조운호 침몰 사건을 세월호 사건에 빗대어 작품을 쓰셨죠”라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이날 문 전대표는 수행팀원에게 “책이 나오면 꼭 좀 챙겨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 전 대표는 책을 읽은 후 이날 공개적으로 책을 추천한 것이죠.
문재인 추천/2016-08-08(한국일보)
청와대나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문 전 대표의 추천을 ‘착실히’ 받아들여 ‘거짓말이다’라는 책을 읽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추천을 한 문 전 대표 역시 이를 잘 알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책 얘기를 꺼낸 것은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4ㆍ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 시한 연장 문제 등이 풀리지 않는 등 세월호의 진상 규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침 이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내 세월호 관련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간 등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빈 손으로 해산을 알리며 “원내지도부에 결정을 일임한다”고 밝혔습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문 전 대표의 추천 덕분인지 출판사는 밀려드는 책 주문에 난리가 났다는 점입니다. 책을 펴낸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는 기자와 통화에서 “국회 내 서점 등 평소 거래를 하지 않는 곳에서 대량 주문을 해 오는 바람에 정신이 없는 하루였다”며 “어떻게든 책을 빨리 달라고 하면서 책 있는 장소를 알려주면 직접 가겠다고 하는 곳까지 생겼다”고 전했는데요. 이어 “원래 1쇄(5,000부)가 끝나고 2쇄로 찍은 3,000권이 내일 나올 예정이었는데 곧바로 3쇄 찍기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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