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최근 불발한 쿠데타를 구실로 정적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고 있다. 군경과 판사, 검사, 종교인 등 9천 명을 대량으로 연행해 구금한 데 이어 교사와 공무원 2만 4천 명을 해임했다. 중동 전문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7월 17일 자 기사(“Turkey's coup may have failed-but history shows it won't be long before another one succeeds”)에서 이번 쿠데타 시도는 터키 국내 정치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독재자 에르도안이 이슬람국가(IS) 등 지역 분쟁을 후원하며 자초한 일이라고 본다. 그는 또 이번 쿠데타 시도가 1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서구의 중동 개입 모델을 반복한 새로운 ‘술탄’의 후과이자 서구의 개입 속에서 이미 실패한 국가들이 야기해 온 중동 정세와 얽혀 있다고 경고한다. 이번 사건의 역사적, 지역적 문맥을 짚은 피스크의 시각을 전한다.
터키 군대의 쿠데타 시도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자초한 일이다. 그가 오스만 제국을 재창조하려는 욕심으로 이웃을 적으로 돌리고 나라를 우스꽝스러운 꼴로 만드는 상황에서 터키군이 고분고분하게 있을 리 없었다. 향후 터키군이 술탄에 순종할 수 있어 이번 군사 쿠데타만 잘 누르면 문제가 끝날 거라 추측하거나, 최소 161명의 사망자와 2,839명 이상(7월 17일 기준)의 구금을 몰락한 중동 민족 국가들의 붕괴와 별도로 구분해서 생각한다면 큰 실수다.
터키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 주말 동안 벌어진 사건들은 국경과 국가관의 몰락과 직접 관련돼 있다. 중동 국가들이 변하지 않는 제도와 국경을 가지고 있다는 국가관 말이다. 그러나 이 국가관은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등 아랍 세계 국가들을 가로지르는 그러한 참상과 상충한다. 이제 이 지역에서 불안정은 부패만큼이나, 지역 세력가와 독재자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져 있다. 에르도안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헌법을 개정하고 쿠르드족에 사악한 충돌을 재개한 시점부터 또 한 명의 독재자가 됐다.
말할 것도 없이, 워싱턴의 첫 번째 반응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터키인이 자신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 부분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2013년 이집트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메드 무르시 정부가 전복된 것에 대해 똑같은 정부가 취했던 입장을 비교해 보면 그들의 입장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이집트 민중에 무르시를 지지하라고 요청하지 않았고 이번 터키 쿠데타보다도 훨씬 더 많은 피를 흘렸던 군사 쿠데타를 지지했다. 터키군이 성공했다면 에르도안은 불행한 무르시만큼이나 경멸적인 대우를 받았을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서구가 자유와 존엄보다는 안정을 원할 때 달리 뭘 기대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안정을 원하기 때문에 이란의 군대와 이라크 민병대 충성파들이 이슬람국가에 맞선 전투에 연합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그래서 팔루자 탈환 뒤 “사라졌던” 가련한 수니파 700명의 실종 사건에도 침묵하고 있다.① 이는 “아사드(시리아 대통령) 퇴출”이라는 판에 박힌 말이 소리 없이 중단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바샤르 알 아사드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임기를 넘어섰고 오바마의 임기 후에도 정권을 유지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마스쿠스(시리아 수도)의 정권은 이번 주말 터키에서의 사건들을 소상히 지켜보게 될 것이다.
1차 세계 대전의 전승 세력은 오스만 제국을 파괴했다. 오스만 제국을 파괴하는 것은 당시 터키 정부가 독일 편을 든 치명적인 실수를 한 뒤 일어난 1차 대전의 목적 중 하나였다. 동맹국은 폐허가 된 이 제국을 잘게 쪼개고 잔혹한 국왕들과 전승 식민국 그리고 독재자들에게 넘겼다. 에르도안과 그를 권력에 남겨 두기로 결정한 군의 다수는 지금 이 동일한 폐허가 된 국가의 모델에 들어맞는다.
에르도안에게, 그리고 서구에게도 적신호가 있었다. 파키스탄의 경험을 반추해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파렴치하게도 러시아와 싸웠던 ‘무자헤딘’에 미사일과 총, 현금을 지원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이용했고, 제국(인도)의 잘게 쪼개진 또 다른 ‘조각’이었던 이 나라는 결국 실패한 국가가 됐다. 파키스탄의 도시들은 대량 폭탄과 부패한 군대 그리고 탈레반을 포함해 러시아 적군과 협력하는 정보 부대로 분열돼 찢겨졌고 결국 이 국가 자체를 위협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터키가 시리아에서 이슬람주의자에 무기를 제공하고 자신의 정보 부대가 이슬람주의자와 협력하며 또 시리아 국가권력과 싸우면서 미국과 동일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 역시 실패한 국가로 향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도시들은 대량 폭탄에 갈가리 찢기고 지방에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스며들었다. 유일한 차이점은 터키 또한 시리아의 홈즈나 알레포만큼이나 파괴된 터키 남동부 디야바키르 지역의 쿠르드족에 전쟁을 재개했다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그가 이 나라를 위해 선택한 역할의 비용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사과하는 것이나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은 오히려 간단한 문제였다. 하지만 자기 군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였다.
체포된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수는 사실 군사 쿠데타를 계획했던 사람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그들은 이스탄불의 술탄(에르도안)이 그의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고 믿는 터키 공직자 수천 명 중의 일부일 뿐이다. 그것은 단지 나토와 유럽연합이 이 사건에 느낄 공포를 나타내는 정도가 아니다. 실제 문제는 에르도안이 (지금의) 성공으로 얼마나 더 대담하게 사람들을 탄압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더 많은 기소와 언론인 구금, 언론사 폐쇄와 쿠르드족 살해, 그리고 또 1915년 아르메니아 인종 청소 사실 부인 등의 문제가 얼마나 더 과감해질지 우려스럽다.
외부인들은 때론 터키가 보이는 쿠르드족의 투쟁성에 대한 공포와 인종주의적인 혐오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러시아, 유럽 등 서구는 일반적으로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너무 무분별하게 써서 터키가 쿠르드족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고 1차 세계 대전 당시 아르메니아인들을 그렇게 봤던 것처럼 그들을 터키의 현존하는 위험으로 여기는 문맥을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아돌프 히틀러마저 존경을 표한 나름대로 훌륭한 세속적 독재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터키를 통일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이 국가에 서구 세력이 음모를 꾸밀지도 모른다는 짙은 (그리고 논리적인) 의심과 더불어, 터키 중심부에 항상 존재해 왔던 종파주의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종합해 보면, 이번 주말 터키에서 일어난 사건은 보기보다 훨씬 극적인 사건이다. 유럽의 국경에서부터, 터키와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와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통해 리비아까지. 프랑스 니스 테러 사건이 일어난 시점 뒤에 튀니지를 언급해도 될지 모르겠지만,② 튀니지도 지금 무정부 상태와 실패한 국가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③가 아서 밸푸어④의 도움으로 오스만 제국을 분할하기 시작했지만 이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앙카라에서의 쿠데타 아닌 쿠데타를 이 어두운 역사의 프레임 속에서 봐야 한다. 또 다른 쿠데타가 몇 달 또는 몇 년 안에 일어날 수 있다.
① 지난달 이라크 팔루자 탈환 작전 과정에서 수니파 남성 643명의 실종, 수니파 주민들에 대한 즉결
처형과 고문 행위가 문제로 제기됐다. 이라크 당국은 인권을 침해한 혐의로 일부 시아파 민병대와 군인을 조사하고 있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② 지난 14일 밤 프랑스 니스 해변 테러 용의자는 튀니지에서 태어나 니스에서 거주하는 남성으로 알려졌다.
③ 1916년 5월 영국과 프랑스는 각 외교관의 이름을 딴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고 비밀리에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분할했다. 현재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국경은 이때 인위적으로 그어졌다.
④ 이스라엘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밸푸어 선언’을 만든 영국 전 외무장관.<워커스 20호>
터키 군대의 쿠데타 시도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자초한 일이다. 그가 오스만 제국을 재창조하려는 욕심으로 이웃을 적으로 돌리고 나라를 우스꽝스러운 꼴로 만드는 상황에서 터키군이 고분고분하게 있을 리 없었다. 향후 터키군이 술탄에 순종할 수 있어 이번 군사 쿠데타만 잘 누르면 문제가 끝날 거라 추측하거나, 최소 161명의 사망자와 2,839명 이상(7월 17일 기준)의 구금을 몰락한 중동 민족 국가들의 붕괴와 별도로 구분해서 생각한다면 큰 실수다.
터키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 주말 동안 벌어진 사건들은 국경과 국가관의 몰락과 직접 관련돼 있다. 중동 국가들이 변하지 않는 제도와 국경을 가지고 있다는 국가관 말이다. 그러나 이 국가관은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등 아랍 세계 국가들을 가로지르는 그러한 참상과 상충한다. 이제 이 지역에서 불안정은 부패만큼이나, 지역 세력가와 독재자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져 있다. 에르도안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헌법을 개정하고 쿠르드족에 사악한 충돌을 재개한 시점부터 또 한 명의 독재자가 됐다.
말할 것도 없이, 워싱턴의 첫 번째 반응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터키인이 자신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 부분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2013년 이집트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메드 무르시 정부가 전복된 것에 대해 똑같은 정부가 취했던 입장을 비교해 보면 그들의 입장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이집트 민중에 무르시를 지지하라고 요청하지 않았고 이번 터키 쿠데타보다도 훨씬 더 많은 피를 흘렸던 군사 쿠데타를 지지했다. 터키군이 성공했다면 에르도안은 불행한 무르시만큼이나 경멸적인 대우를 받았을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서구가 자유와 존엄보다는 안정을 원할 때 달리 뭘 기대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안정을 원하기 때문에 이란의 군대와 이라크 민병대 충성파들이 이슬람국가에 맞선 전투에 연합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그래서 팔루자 탈환 뒤 “사라졌던” 가련한 수니파 700명의 실종 사건에도 침묵하고 있다.① 이는 “아사드(시리아 대통령) 퇴출”이라는 판에 박힌 말이 소리 없이 중단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바샤르 알 아사드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임기를 넘어섰고 오바마의 임기 후에도 정권을 유지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마스쿠스(시리아 수도)의 정권은 이번 주말 터키에서의 사건들을 소상히 지켜보게 될 것이다.
1차 세계 대전의 전승 세력은 오스만 제국을 파괴했다. 오스만 제국을 파괴하는 것은 당시 터키 정부가 독일 편을 든 치명적인 실수를 한 뒤 일어난 1차 대전의 목적 중 하나였다. 동맹국은 폐허가 된 이 제국을 잘게 쪼개고 잔혹한 국왕들과 전승 식민국 그리고 독재자들에게 넘겼다. 에르도안과 그를 권력에 남겨 두기로 결정한 군의 다수는 지금 이 동일한 폐허가 된 국가의 모델에 들어맞는다.
에르도안에게, 그리고 서구에게도 적신호가 있었다. 파키스탄의 경험을 반추해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파렴치하게도 러시아와 싸웠던 ‘무자헤딘’에 미사일과 총, 현금을 지원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이용했고, 제국(인도)의 잘게 쪼개진 또 다른 ‘조각’이었던 이 나라는 결국 실패한 국가가 됐다. 파키스탄의 도시들은 대량 폭탄과 부패한 군대 그리고 탈레반을 포함해 러시아 적군과 협력하는 정보 부대로 분열돼 찢겨졌고 결국 이 국가 자체를 위협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터키가 시리아에서 이슬람주의자에 무기를 제공하고 자신의 정보 부대가 이슬람주의자와 협력하며 또 시리아 국가권력과 싸우면서 미국과 동일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 역시 실패한 국가로 향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도시들은 대량 폭탄에 갈가리 찢기고 지방에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스며들었다. 유일한 차이점은 터키 또한 시리아의 홈즈나 알레포만큼이나 파괴된 터키 남동부 디야바키르 지역의 쿠르드족에 전쟁을 재개했다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그가 이 나라를 위해 선택한 역할의 비용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사과하는 것이나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은 오히려 간단한 문제였다. 하지만 자기 군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였다.
체포된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수는 사실 군사 쿠데타를 계획했던 사람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그들은 이스탄불의 술탄(에르도안)이 그의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고 믿는 터키 공직자 수천 명 중의 일부일 뿐이다. 그것은 단지 나토와 유럽연합이 이 사건에 느낄 공포를 나타내는 정도가 아니다. 실제 문제는 에르도안이 (지금의) 성공으로 얼마나 더 대담하게 사람들을 탄압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더 많은 기소와 언론인 구금, 언론사 폐쇄와 쿠르드족 살해, 그리고 또 1915년 아르메니아 인종 청소 사실 부인 등의 문제가 얼마나 더 과감해질지 우려스럽다.
외부인들은 때론 터키가 보이는 쿠르드족의 투쟁성에 대한 공포와 인종주의적인 혐오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러시아, 유럽 등 서구는 일반적으로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너무 무분별하게 써서 터키가 쿠르드족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고 1차 세계 대전 당시 아르메니아인들을 그렇게 봤던 것처럼 그들을 터키의 현존하는 위험으로 여기는 문맥을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아돌프 히틀러마저 존경을 표한 나름대로 훌륭한 세속적 독재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터키를 통일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이 국가에 서구 세력이 음모를 꾸밀지도 모른다는 짙은 (그리고 논리적인) 의심과 더불어, 터키 중심부에 항상 존재해 왔던 종파주의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종합해 보면, 이번 주말 터키에서 일어난 사건은 보기보다 훨씬 극적인 사건이다. 유럽의 국경에서부터, 터키와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와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통해 리비아까지. 프랑스 니스 테러 사건이 일어난 시점 뒤에 튀니지를 언급해도 될지 모르겠지만,② 튀니지도 지금 무정부 상태와 실패한 국가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③가 아서 밸푸어④의 도움으로 오스만 제국을 분할하기 시작했지만 이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앙카라에서의 쿠데타 아닌 쿠데타를 이 어두운 역사의 프레임 속에서 봐야 한다. 또 다른 쿠데타가 몇 달 또는 몇 년 안에 일어날 수 있다.
① 지난달 이라크 팔루자 탈환 작전 과정에서 수니파 남성 643명의 실종, 수니파 주민들에 대한 즉결
처형과 고문 행위가 문제로 제기됐다. 이라크 당국은 인권을 침해한 혐의로 일부 시아파 민병대와 군인을 조사하고 있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② 지난 14일 밤 프랑스 니스 해변 테러 용의자는 튀니지에서 태어나 니스에서 거주하는 남성으로 알려졌다.
③ 1916년 5월 영국과 프랑스는 각 외교관의 이름을 딴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고 비밀리에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분할했다. 현재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국경은 이때 인위적으로 그어졌다.
④ 이스라엘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밸푸어 선언’을 만든 영국 전 외무장관.<워커스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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