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14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메르스환자 치료병원을 찾아 격리병동 간호사와 통화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015년 6월14일 메르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감염병동 간호사실에서 박 대통령은 격리병실에서 메르스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과 영상통화를 하며 이들을 격려했다.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국립병원을 찾은 대통령의 행보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지만 이 사진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대통령이 수화기를 들고 바라보는 모니터 오른쪽 벽면에 붙은 ‘살려야 한다’라는 문구 때문이다. A4 용지에 알아보기 쉽게 또박또박 프린팅된 이 문구는 같은 날 찍힌 다른 각도의 사진을 보면 한 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벽면 여기저기에 붙여 놓아서 그날 찍힌 대부분의 사진과 방송 영상에 대통령과 함께 등장했다. 마치 협찬을 맺은 스포츠 스타가 매체에 등장할 때 나타나는 스폰서사 로고처럼 말이다. 그날의 주인공은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벽면 여기저기에 붙여놓은 이 문구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부터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병원에서 연출된 사진으로 국민에게 ‘쇼’ 한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와대와 병원은 연출을 극구 부인했지만, 나중에 밝혀진 내용은 대통령이 병원을 방문하기 전에 청와대 관계자들이 다녀간 뒤 한 환자의 명패에 붙어 있던 한 장의 종이가 병원 여기저기 나붙었다는 사실이다.
1년도 훨씬 지난 이 사진을 올해가 다 가는 시점에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이 한 장의 사진이 박근혜 정부의 지난 4년 모두를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당시로 돌아가 보면 메르스라는 바이러스가 한반도를 강타할 때였다. 첫 메르스 환자의 확진 판정이 나온 것은 5월20일, 박 대통령은 무려 열하루가 지나고서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보건역량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을 뿐 본인이 주재하는 대책회의나 현장 지휘도 하지 않았다. 전국이 메르스로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데 열하루가 지나도록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으니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급락하는 지지율에 화들짝 놀란 박근혜 정부는 메르스사태 수습보다는 책임 떠넘기기와 당장의 비난을 모면할 꼼수를 마구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등장한 이 한 장의 사진. 국군의무학교에나 붙어 있어야 할 이 구호가 대통령이 현장 방문한 병원 곳곳에 닥지닥지 붙었다.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을 덮기 위해 이들이 택한 것은 전 국민을 위한 ‘쇼’. 가장 잘 보이는 쪽에 붙여 놓은 한 장으로는 혹시 각도에 따라서 나오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는지 벽마다 도배질한 수준으로 붙여 놓는다. 무능했던 정권이 이런 건 어찌 그리 꼼꼼한지….
그런데 이거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바로 그 전년도에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도 그랬다.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배에서 못 나오고 있는 순간, 대통령은 무려 7시간 동안이나 사라졌다. 그러고는 나중에 나타나서 눈물까지 흘리는 퍼포먼스를 단행했다. 최근에는 비선 문제가 터질 때마다 윽박지르던 대통령이 꼼짝없는 증거와 증언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자 국민 앞에 세 번씩이나 나타나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세월호, 메르스 사태 때처럼 책임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내용 없는 선전구호, 세월호와 비선실세 관련 기자회견을 보고 대통령의 진심을 단 한 방울이라도 느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히려 현실과는 먼 우주에서 사는 듯한 그 정신세계의 액면을 본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나는 무능하고 무책임하오. 게다가 난 거짓말도 잘하오.’ ‘살려야 한다’라는 문구는 이렇게 읽힌다. 우린 그런 대통령을 뽑았고 그 통치하에서 4년을 살았다.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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