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동 만민공동회 개최박근혜정권 즉각퇴진 9차 범국민행동이 열리는 24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김제동의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다ⓒ 권우성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웰컴 투 더 캔들 파티(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Welcome to the candle party)."
2016년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 3시, 광화문 광장에 모인 약 2000여 명의 사람들 앞에 김제동이 웃으면서 등장했다. 9차 촛불집회에 앞서 김제동클럽에서 주최한 '시민과 김제동이 함께하는 만민공동회'(아래 만민공동회)의 시작은 성탄절 맞이 '파티'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광장의 손석희' 김제동, 목소리를 모으다
▲ 김제동 만민공동회 개최박근혜정권 즉각퇴진 9차 범국민행동이 열리는 24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김제동의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다. 안동에서 온 김각현씨가 자작시 '촛불집회'를 발표하고 있다.ⓒ 권우성
이날 발언한 시민 중에는 다소 과격하거나 엉뚱한 주제로 마이크를 잡은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던 시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김제동은 침착하게 배려했다. 예컨대 개인적인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난입한 이를 진행자들이 제지했지만, 강원도에서 새벽부터 왔다는 그가 말할 수 있도록 김제동은 간이무대를 잠시 내어주었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 들리지 않게 우는 사람들의 울음을 함께 듣는 게 만민공동회의 뜻"이라던 그의 말이 실제로 구현되는 현장이었다. 김제동은 시민 한 명 한 명의 발언을 끝까지 경청하고, 그 발언의 요지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를 헌법과 연결하며 행사를 진행했다. 안동에서 올라온 김각현 시인의 '촛불집회', '촛불집회2'의 시 낭송은, 시민들의 앙코르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고 하이라이트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왔다는 중학교 2학년 오정태씨였다. 오씨는 "국정교과서 얘기가 나와서, 그렇게 우편향된 교과서로 역사를 배워야 하나 걱정이 되고, 심적으로 부담이 된다. 공부가 안 된다"고 입을 열었다. 공부하는데 어른들의 죄로 '심적 부담'을 줘서 미안하다고 김제동은 고개 숙였다. "공부하기 싫은 건 아니냐"는 김제동의 질문에 "하기가 싫은 것도 있다"고 솔직히 답하면서, 좌중의 폭소가 터졌다.
오씨의 '사이다' 발언은 이제부터였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청문회를 12시까지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무관심한 태도로 답하는지, 그런다고 자신의 죄가 덜 퍼질 것이라 생각하는지 의문"이라고 평했고, "메르스, 세월호에 조류도 독감에 걸렸고, 사람도 독감에 걸렸다. 6.25 이후 최대 위기가 박근혜 정부에서 몰려오고 있다"며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빨리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제동은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 성대모사를 하면서 분위기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후 어떤 정부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지 질문했다.
"모든 국민의 뜻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이처럼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존중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공동 책임을 갖고 있는 '빨갱이당', 새누리당과 관련된 이들을 절대로 되면 안 된다. UN사무총장에서 내려온 '기름장어'님께서도, 자꾸 간 보시는데, 안 그래도 흙탕물인 곳을 더욱 헤집어놓지 말고, 차분하게 행동했으면 좋겠다. 나이도 많고, 품위도 있으신 분이 스스로 나서서 자신의 품위를 깎을 필요는 없다."
오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편지를 언급하면서 "진짜 빨갱이당이 바로 새누리당"이라고 힘주어 말하는가 하면, "혼란한 시국을 틈타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 확신하지 말라"고 야권 대선 후보들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남겼다. 김제동은 크게 웃으며 "나는 오늘 은퇴를 선언해야 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의 목소리로 마무리한 김제동
▲ 김제동 만민공동회 개최박근혜정권 즉각퇴진 9차 범국민행동이 열리는 24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김제동의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다ⓒ 권우성
"아직도 친박이 있다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친박한테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 수 있으니 사람들이 조심하라고 하던데, 명예가 있어야 훼손을 하지. (웃음) 내가 훼손할 명예가 있는지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비박은 몰랐다고 한다. 몰랐으면 무능력한 것이다. 무능력한 사람들에게 계속 우리 일을 하게 할 수는 없다.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친박은 해체하는 것이 맞고, 비박은 반성하고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면목이 서지 않겠나. 몇십년 된 정당이, 친박과 비박만 있고 친국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이제 와서 '따뜻한' 보수를 하겠다고 한다. 원래 보수는 따뜻하다. 모두가 아는 걸 이제야 아는 것처럼 하니 곤란하다."
이전까지 있었던 현장에서 항상 김제동은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시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김제동 개인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이들 역시 늘어났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시민의 발언이 끝난 후, 김제동은 이날 만민공동회의 끝을 '김제동의 이야기'로 풀었다. 그는 "이따 진행되는 토크콘서트도 내가 해야 한다"며 "돈 안 받고 한다고 (집회 주최 측이) 날 너무 막 굴린다"고 하며 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원래 연말 되면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시즌 8을 해야 한다. 지난 7년 동안 해마다 해왔는데, 전세계 유일무이한 역사를 가진 토크콘서트를 해왔음에도 올해 유일하게 못했다. 이, 만민공동회 때문에! 돈도 안 주고! 이런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오는데 나선다고 하고! 심적 부담이 많다. 내가 나서려고 나서나! 부르니까 나서지! '대통령 김제동' 이런 소리 제발 하지 마! 나 돈 더 못 벌 게 되잖아! 그런데 진짜 이런 이야기가 너무 안 알려졌다! 나도 내 이야기 좀 해야겠다! 다 조용히 해! 손들지 마!"
김제동은 만민공동회의 마무리를 작심한 듯, '김제동의 생각'으로 채웠다. 김제동의 발언이 정치혐오 혹은 여성혐오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종편 등에서 앞뒤 맥락 없이 일부 발언만 소개되어서 생긴 오해다, 억울하다"며 "혼자 집에 있으면서 상처 많이 받는다"고 재치 있게 호소했다. 개헌 논의의 올바른 방향, 성 평등, 여성 인권, 통일, 최저임금과 조세정의 등 진짜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간략하게나마 언급했다. 그 결론은 결국 이거였다.
"그냥 내려오면 되잖아."
김제동은 "올림머리", "연쇄담화범", "피눈물", "순수한 마음" 등을 언급하며 다시 한 번, 박근혜 대통령의 빠른 퇴진을 촉구했다. 시민들의 박수 속에서 만민공동회도 끝이 났다. 날도 추워지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이전 만민공동회에 비해 모인 시민의 인원은 분명 적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광장은, 뜨거운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 현장이었다. 김제동의 "캔들 파티"는 "기쁘다, 탄핵 오셨네"하며 파티 분위기 속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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