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유일한 본분으로 일컬어지는 공부. 하지만 "공부만 하라"는 어른들의 질책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드러나거나 숨겨진 곳에서 두각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있고, 그리고 청소년에게 힘이 되어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같은 고민에 속해 있는, 청소년인 필자가 직접 인터뷰합니다. 또, 청소년들이 모이고, 주최했던 행사나 모임을 취재합니다. 청소년 시민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집필하는 연재기획, <옆동네 1318>입니다. 이번 차례에는 세월호 '시각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안산지역의 고등학교 2학년, 최서윤씨를 만났습니다. - 기자 말
예쁜 거울과 배지의 뒷면에 커다란 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배이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우리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던 그 배, 세월호이다. 그 때의 세월호와는 달리, 이 세월호는 당당하게 순항하고 있다. 그 위에 적힌 메시지는 '우리가 기억하는 한 우리의 마음속에서 세월호는 늘 순항하길 REMEMBER 0416'.
지름 75mm의 손거울과 58mm의 배지. 파란 색 디자인 아래 예쁘게 꾸며진 '시민들의 꿈'을 만든 주인공은 안산지역 고등학교 2학년인 최서윤씨. 세월호 참사를 더욱 잘 기억하기 위해 이 배지와 거울을 만들었다고 한다. 벌써 SNS를 통해 300여개의 거울을 판매하며 모은 26만 원의 응원을 416 기억저장소에 보냈다.
그랬던 최서윤씨가 이번에는 텀블벅을 통해 펀딩을 한다. 목표는 소박하다. 50만 원 이상 다양한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배지와 거울을 만든다. 2014년에 시간이 멈춰버려, 지금은 자신과 동갑내기가 된 세월호의 '선배'를 위해 배지와 거울을 만드는 그의 심정을 들어보고 싶었다. 최서윤씨를 지난 22일 안산 중앙동 번화가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할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사업 시작
- 만나서 반갑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산강서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최서윤이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디자인을 독학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 디자인을 만질 줄 알게 되어 개인적인 프리랜서 일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YESUL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려서 회사 일도 하고 있다. 지금은 내 이름을 걸고 세월호 굿즈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또 행자부에서 개최한 '국가상징디자인공모전'에 광화문 작품으로 한국디자인진흥원장상을 수상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공부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실 텐데... 대학은 가고 싶다면서 공부는 안 하는 무책임한 고딩이다."
- 진행하고 있는 세월호 기억 프로젝트 '그 날을 잊지 않는 방법, '세월호 굿즈'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꽤 오래 전에 했다. 하지만 초기에 배지를 만들 돈이 없어서 할머니께서 손자 왔다고 주셨던 용돈으로 시작했다. 11월 24일 개인적으로 만든 세월호 거울을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모르시는 분들이 구매하기 시작했다. 미성년자라 페북의 공유 범위가 좁은데도 불구하고, 무려 일흔 네 분이 공유를 해 주셨다.
순천향대학교 학생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알려져서 거울이 70개 넘게 팔렸다. 주변의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도 몇 개를 사 가셨다. 고흥, 여수, 강릉 등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안산지역에 있는 10개의 중고등학교에서도 꽤 많이 거울을 사 가셨다.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도 50여개를 구매하셨다. 그래서 300여개를 판매할 수 있었다. 100개 정도는 선물로 나눠주면서 사비로 기부금을 채웠다.
거울과 배지를 한 개 만드는 데는 천 원 정도가 들어간다.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디자인비, 포장료, 배지 자체가격 정도를 빼고는 전액이 416 기억저장소에 기부된다. 최소한의 디자인료를 받는다고 해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 텐데, 또 다른 굿즈를 만들어서 펀딩하는 데 전액 사용할 것이다."
- 그렇다면 펀딩 계획 계기는 뭔가.
"1차 판매 때 이미 SNS를 통해 효과를 봤기 때문에 또 SNS로 판매를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텀블벅을 통해 리워드 형 펀딩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년 1월 8일까지 진행되고, 50만 원 이상만 모인다면 실제 제품이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받아볼 수 있게 된다. 이번 펀딩이 끝나도 계속 펀딩을 진행할 예정이다. 스티커, 기억저장소로 보낼 수 있는 엽서 등 점점 새로운 굿즈들이 추가될 것이기 때문에 일회성 펀딩은 아니다.
밀어주시는 가격에 따라 굿즈의 구성이 변하진 않는다. 갯수만 늘어나고, 기부금만 늘어난다. 기부금은 치사하게 내 이름으로 보내지 않는다. 기부자분들의 성함을 담은 명단집과 함께 416 기억저장소로 보내 유가족 분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에 쓰이게 된다."
- 원론적으로 넘어가보자. 최근 일어난 다른 사건/사고도 많은데, 하필 세월호를 펀딩 주제로 삼은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 학교 바로 옆 학교가 단원고이다. 우리 동네에서도 동네 형누나들, 가까웠던 사람들을 잃었다. 그 이유도 있지만 하필 세월호로 골랐던 이유는... 팔찌나 리본이 달린 고리를 주로 사람들이 착용하거나 만드는데, 이것보다는 소중하게 여길 만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 내 디자인 모토가 소중한 것을 담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사람에게 가까운 곳에 가져갈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 그 모토가 담긴 첫 작품이 이번 세월호 프로젝트인 셈이다.
사실 추모의 의미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요'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싶었다. 또 거울은 내가 들고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반대편의 문구를 보고 떠올릴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에 스며들 수 있는 실용적인 굿즈라고 생각한다. 아기자기하고, 예뻐야 들고다니기도 좋고, 그 굿즈를 보는 사람들이 한 번 더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아기자기하고 가볍게 디자인을 했다."
순수익 전액이 아니라 매출 전액을 기부하라는 분들 있어
- 만든다고 하니까 주변 반응이 어땠나. 응원의 반응이 많았을 것 같은데, 혹시 '욕'을 듣지는 않으셨는지.
"응원의 말을 들으면 비판도 많이 듣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가장 많이 들었던 욕이 '세월호를 갖고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었다. 의도 자체가 세월호로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 또는 내가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라, 사건에 관심을 갖았다. 나 또한 이를 마케팅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악용할 이유도 없고, 악용하고 싶지도 않다.
전액을 기부하라는 반응도 있으시다. 순수익의 전액이 아닌 배지 값을 포함한 매출 전액을 기부하라는 분들이 계신데, 추가 물량을 구매한다든지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도 원금 회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액 기부는 어렵다. 처음 시작한 밑천이 할머니가 학용품 사라고 주신 돈인데, 돌고돌아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 돈으로 학용품을 사려고 한다.
때때로의 비판은 나태해질 수 있는 나 자신을 계몽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분이 응원을 해 주셨다. '디자인이 예쁘다', '기부할 방법을 몰랐는데 이렇게나마 기부할 방법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너무 생각이 좋으시다. 응원한다.' 이런 응원을 해주셨다. 거울을 구매하지 않으셨던 분도 메시지를 보내면서 응원해주셨다. 응원도 보내주시고, 내 뜻에 동참해주신 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리고 싶고, 더 좋은 굿즈로 찾아뵙고 싶다."
- 이제 개인 디자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언제부터 디자인을 시작했나. 센스가 참 좋으신데, 어떤 '비결'이 있나 물어봐도 될까.
"중3때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구해서 혼자 만지다보니까 여기까지 왔다. 원래 꿈은 과학자였는데, 정말 어쩌다보니 과학자와는 전혀 무관한 디자인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특기와 적성이 달라서 꽤나 고민했는데, 올해 '이렇게 된 이상 디자이너로 간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문가분들 만나는 자리에서 '센스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컴퓨터 대신 펜을 잡으면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중학교 때 미술 수행평가도 빵점 받았을 정도인데. (웃음)
이제 겨우 2년차 디자이너인데, 아직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연습도 하고, 잘 그리는 스킬도 배워야 한다. 비결...이라면 내가 보기에 예쁘고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그대로 컴퓨터 위에 마우스로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할 때만큼 대답하기 어색할 때가 없다. '마우스 그림도 그림인가?'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주로 쓰는 타블렛을 쓸 때까지 연습을 많이 해야 된다."
프로젝트 의미는 '그들을 기억하자'는 것
- 디자이너로서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솔직히 말하자면 한 회사에 연연하지 않고 싶다. 나의 의지를 갖고 내 작품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물품들에 손 대보고 싶다. 사실 소중한 것을 담고 싶다는 내 모토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마다 소중한 것이 다 다르고, 모든 사람의 소중한 것을 다 찾아보면 모두 '물품'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는 '인성 빼면 시체인 디자이너'다. 항상 마음속에 선의를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영혼을 갖고 있는 디자이너', 그런 소리도 들어봤으면 좋겠다. 우리 나이대야 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면서도 영혼을 잃지 않고 싶다. 아직 디자이너라고 말하기도 버겁지만 말이다."
- 다시 세월호 이야기로 돌아와서, 세월호 자체에 대한 어른과 청소년의 생각과 관련해 바라는 점,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 정확한 진실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 않다. 단순한 재산의 사고가 아니라, 우리의 친구, 형, 선배를 잃었던 사고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재산의 문제를 따지는 것, 교통사고라고 하는 것도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의미도 '진실을 밝히라'는 의미가 아닌 '그들을 기억하자'이다. 나 자신도 인양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마음 아프게 바라볼 뿐이다.
청소년들은 '세월호'라는 세 글자만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다음에는 우리도 그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겁이 난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 외에는 이번 사고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진실이 밝혀지면 책임자에게 300명의 희생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알아서 생각하시리라고 믿는다. 그래도 인양 부분에 대해서 단순히 금액에 대해서 계산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 세월호 사고를 정치적, 경제적인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가슴아픈 사고를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고생하셨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펀딩과 관련해서 바라는 점이나,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금액을 채워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것에 중점을 두진 않았다. SNS 외의 사람들에게 이런 프로젝트가 있음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고, 이 프로젝트에 올린 글을 통해 세월호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슴 속에 갖고 있다고 해서 '지겨울 일'은 아니기 때문에 세월호, 또는 내 프로젝트를 보고 '지겹다'라는 반응은 제발 보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 멘트를 고르자면, 이 말 한마디만 하고 싶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한 우리의 마음 속에서 만큼은 세월호가 순항해서 별 탈 없이 다녔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다. 그 때의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Remember 0416'이라는 글귀로서 기억하는 방법, 노란리본으로 기억하는 방법 등 다양하지만, 멋진 디자인 상품으로 기억하고자 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긴 점은 기발했다.
두 번째 판매를 펀딩으로 진행하면서, 목표액만이라도 채우면 좋겠다는 서윤씨의 작은 소망을 지면이 아닌 뒷이야기에 전하며 상상해본다. 기왕이면 완판 대신 '혼밥티' 마냥 대박을 쳐보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서윤씨의 배지와 거울을 구입해,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 장소 이곳 저곳에서 서윤씨의 거울을 목격하는 그 날이 오길 상상해 본다.
▲ 최서윤 씨가 만든 '세월호 굿즈'의 모습. 뱃지와 거울이다. | |
ⓒ 박장식 |
예쁜 거울과 배지의 뒷면에 커다란 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배이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우리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던 그 배, 세월호이다. 그 때의 세월호와는 달리, 이 세월호는 당당하게 순항하고 있다. 그 위에 적힌 메시지는 '우리가 기억하는 한 우리의 마음속에서 세월호는 늘 순항하길 REMEMBER 0416'.
지름 75mm의 손거울과 58mm의 배지. 파란 색 디자인 아래 예쁘게 꾸며진 '시민들의 꿈'을 만든 주인공은 안산지역 고등학교 2학년인 최서윤씨. 세월호 참사를 더욱 잘 기억하기 위해 이 배지와 거울을 만들었다고 한다. 벌써 SNS를 통해 300여개의 거울을 판매하며 모은 26만 원의 응원을 416 기억저장소에 보냈다.
그랬던 최서윤씨가 이번에는 텀블벅을 통해 펀딩을 한다. 목표는 소박하다. 50만 원 이상 다양한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배지와 거울을 만든다. 2014년에 시간이 멈춰버려, 지금은 자신과 동갑내기가 된 세월호의 '선배'를 위해 배지와 거울을 만드는 그의 심정을 들어보고 싶었다. 최서윤씨를 지난 22일 안산 중앙동 번화가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최서윤 씨가 '세월호 굿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 박장식 |
할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사업 시작
"안산강서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최서윤이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디자인을 독학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 디자인을 만질 줄 알게 되어 개인적인 프리랜서 일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YESUL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려서 회사 일도 하고 있다. 지금은 내 이름을 걸고 세월호 굿즈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또 행자부에서 개최한 '국가상징디자인공모전'에 광화문 작품으로 한국디자인진흥원장상을 수상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공부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실 텐데... 대학은 가고 싶다면서 공부는 안 하는 무책임한 고딩이다."
- 진행하고 있는 세월호 기억 프로젝트 '그 날을 잊지 않는 방법, '세월호 굿즈'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꽤 오래 전에 했다. 하지만 초기에 배지를 만들 돈이 없어서 할머니께서 손자 왔다고 주셨던 용돈으로 시작했다. 11월 24일 개인적으로 만든 세월호 거울을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모르시는 분들이 구매하기 시작했다. 미성년자라 페북의 공유 범위가 좁은데도 불구하고, 무려 일흔 네 분이 공유를 해 주셨다.
순천향대학교 학생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알려져서 거울이 70개 넘게 팔렸다. 주변의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도 몇 개를 사 가셨다. 고흥, 여수, 강릉 등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안산지역에 있는 10개의 중고등학교에서도 꽤 많이 거울을 사 가셨다.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도 50여개를 구매하셨다. 그래서 300여개를 판매할 수 있었다. 100개 정도는 선물로 나눠주면서 사비로 기부금을 채웠다.
거울과 배지를 한 개 만드는 데는 천 원 정도가 들어간다.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디자인비, 포장료, 배지 자체가격 정도를 빼고는 전액이 416 기억저장소에 기부된다. 최소한의 디자인료를 받는다고 해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 텐데, 또 다른 굿즈를 만들어서 펀딩하는 데 전액 사용할 것이다."
- 그렇다면 펀딩 계획 계기는 뭔가.
"1차 판매 때 이미 SNS를 통해 효과를 봤기 때문에 또 SNS로 판매를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텀블벅을 통해 리워드 형 펀딩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년 1월 8일까지 진행되고, 50만 원 이상만 모인다면 실제 제품이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받아볼 수 있게 된다. 이번 펀딩이 끝나도 계속 펀딩을 진행할 예정이다. 스티커, 기억저장소로 보낼 수 있는 엽서 등 점점 새로운 굿즈들이 추가될 것이기 때문에 일회성 펀딩은 아니다.
밀어주시는 가격에 따라 굿즈의 구성이 변하진 않는다. 갯수만 늘어나고, 기부금만 늘어난다. 기부금은 치사하게 내 이름으로 보내지 않는다. 기부자분들의 성함을 담은 명단집과 함께 416 기억저장소로 보내 유가족 분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에 쓰이게 된다."
- 원론적으로 넘어가보자. 최근 일어난 다른 사건/사고도 많은데, 하필 세월호를 펀딩 주제로 삼은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 학교 바로 옆 학교가 단원고이다. 우리 동네에서도 동네 형누나들, 가까웠던 사람들을 잃었다. 그 이유도 있지만 하필 세월호로 골랐던 이유는... 팔찌나 리본이 달린 고리를 주로 사람들이 착용하거나 만드는데, 이것보다는 소중하게 여길 만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 내 디자인 모토가 소중한 것을 담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사람에게 가까운 곳에 가져갈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 그 모토가 담긴 첫 작품이 이번 세월호 프로젝트인 셈이다.
사실 추모의 의미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요'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싶었다. 또 거울은 내가 들고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반대편의 문구를 보고 떠올릴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에 스며들 수 있는 실용적인 굿즈라고 생각한다. 아기자기하고, 예뻐야 들고다니기도 좋고, 그 굿즈를 보는 사람들이 한 번 더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아기자기하고 가볍게 디자인을 했다."
▲ 기부금을 416 기억저장소에 전달하는 모습. 왼쪽부터 최서윤 씨, 416 기억저장소 소장이자 김도언 학생의 어머니인 이지성 소장. | |
ⓒ 박장식 |
순수익 전액이 아니라 매출 전액을 기부하라는 분들 있어
- 만든다고 하니까 주변 반응이 어땠나. 응원의 반응이 많았을 것 같은데, 혹시 '욕'을 듣지는 않으셨는지.
"응원의 말을 들으면 비판도 많이 듣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가장 많이 들었던 욕이 '세월호를 갖고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었다. 의도 자체가 세월호로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 또는 내가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라, 사건에 관심을 갖았다. 나 또한 이를 마케팅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악용할 이유도 없고, 악용하고 싶지도 않다.
전액을 기부하라는 반응도 있으시다. 순수익의 전액이 아닌 배지 값을 포함한 매출 전액을 기부하라는 분들이 계신데, 추가 물량을 구매한다든지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도 원금 회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액 기부는 어렵다. 처음 시작한 밑천이 할머니가 학용품 사라고 주신 돈인데, 돌고돌아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 돈으로 학용품을 사려고 한다.
때때로의 비판은 나태해질 수 있는 나 자신을 계몽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분이 응원을 해 주셨다. '디자인이 예쁘다', '기부할 방법을 몰랐는데 이렇게나마 기부할 방법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너무 생각이 좋으시다. 응원한다.' 이런 응원을 해주셨다. 거울을 구매하지 않으셨던 분도 메시지를 보내면서 응원해주셨다. 응원도 보내주시고, 내 뜻에 동참해주신 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리고 싶고, 더 좋은 굿즈로 찾아뵙고 싶다."
- 이제 개인 디자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언제부터 디자인을 시작했나. 센스가 참 좋으신데, 어떤 '비결'이 있나 물어봐도 될까.
"중3때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구해서 혼자 만지다보니까 여기까지 왔다. 원래 꿈은 과학자였는데, 정말 어쩌다보니 과학자와는 전혀 무관한 디자인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특기와 적성이 달라서 꽤나 고민했는데, 올해 '이렇게 된 이상 디자이너로 간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문가분들 만나는 자리에서 '센스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컴퓨터 대신 펜을 잡으면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중학교 때 미술 수행평가도 빵점 받았을 정도인데. (웃음)
이제 겨우 2년차 디자이너인데, 아직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연습도 하고, 잘 그리는 스킬도 배워야 한다. 비결...이라면 내가 보기에 예쁘고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그대로 컴퓨터 위에 마우스로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할 때만큼 대답하기 어색할 때가 없다. '마우스 그림도 그림인가?'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주로 쓰는 타블렛을 쓸 때까지 연습을 많이 해야 된다."
▲ 최서윤 씨가 만든 뱃지와 거울의 도안. | |
ⓒ 최서윤 |
프로젝트 의미는 '그들을 기억하자'는 것
- 디자이너로서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솔직히 말하자면 한 회사에 연연하지 않고 싶다. 나의 의지를 갖고 내 작품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물품들에 손 대보고 싶다. 사실 소중한 것을 담고 싶다는 내 모토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마다 소중한 것이 다 다르고, 모든 사람의 소중한 것을 다 찾아보면 모두 '물품'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는 '인성 빼면 시체인 디자이너'다. 항상 마음속에 선의를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영혼을 갖고 있는 디자이너', 그런 소리도 들어봤으면 좋겠다. 우리 나이대야 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면서도 영혼을 잃지 않고 싶다. 아직 디자이너라고 말하기도 버겁지만 말이다."
- 다시 세월호 이야기로 돌아와서, 세월호 자체에 대한 어른과 청소년의 생각과 관련해 바라는 점,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 정확한 진실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 않다. 단순한 재산의 사고가 아니라, 우리의 친구, 형, 선배를 잃었던 사고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재산의 문제를 따지는 것, 교통사고라고 하는 것도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의미도 '진실을 밝히라'는 의미가 아닌 '그들을 기억하자'이다. 나 자신도 인양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마음 아프게 바라볼 뿐이다.
청소년들은 '세월호'라는 세 글자만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다음에는 우리도 그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겁이 난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 외에는 이번 사고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진실이 밝혀지면 책임자에게 300명의 희생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알아서 생각하시리라고 믿는다. 그래도 인양 부분에 대해서 단순히 금액에 대해서 계산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 세월호 사고를 정치적, 경제적인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가슴아픈 사고를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고생하셨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펀딩과 관련해서 바라는 점이나,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금액을 채워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것에 중점을 두진 않았다. SNS 외의 사람들에게 이런 프로젝트가 있음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고, 이 프로젝트에 올린 글을 통해 세월호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슴 속에 갖고 있다고 해서 '지겨울 일'은 아니기 때문에 세월호, 또는 내 프로젝트를 보고 '지겹다'라는 반응은 제발 보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 멘트를 고르자면, 이 말 한마디만 하고 싶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한 우리의 마음 속에서 만큼은 세월호가 순항해서 별 탈 없이 다녔으면 좋겠다."
▲ 최서윤 씨가 '세월호 굿즈'를 들어보이고 있다. | |
ⓒ 박장식 |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다. 그 때의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Remember 0416'이라는 글귀로서 기억하는 방법, 노란리본으로 기억하는 방법 등 다양하지만, 멋진 디자인 상품으로 기억하고자 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긴 점은 기발했다.
두 번째 판매를 펀딩으로 진행하면서, 목표액만이라도 채우면 좋겠다는 서윤씨의 작은 소망을 지면이 아닌 뒷이야기에 전하며 상상해본다. 기왕이면 완판 대신 '혼밥티' 마냥 대박을 쳐보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서윤씨의 배지와 거울을 구입해,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 장소 이곳 저곳에서 서윤씨의 거울을 목격하는 그 날이 오길 상상해 본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