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세종=정진우 기자, 정혜윤 기자]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수출 세계 6위, GDP 규모 세계 11위 등 경제규모나 지표로 보면 그렇다. 이미 20년 전 선진국 클럽으로 분류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횡행하는 시대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영역에서 과연 선진국일까라는 물음에 우리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는 창간 15주년을 맞이해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대한민국이 앞으로 20년 동안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모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색해 보기로 했다.
[[OECD20년 대한민국, 선진국의 길]<7>-②10년째 켜져있는 OECD의 경고등]
# 결혼 10년 차인 회사원 김수진(가명, 37세)씨는 딸 아이 한명만 낳았다. 워킹맘 그는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이 없다. 아버지 세대에선 보통 2~3명 이상의 자녀를 낳았지만 경제적 여건상 2명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씨의 주변에도 아이가 둘 이상인 집은 드물다. 직장 동료 중엔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는 사람도 있고, 혼기가 넘었지만 결혼을 안 한 사람도 많다.
김씨의 사례는 이례적인 게 아니다. 합계출산율(여성 한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수)이 겨우 1명을 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저출산 문제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어린이(0~14세) 인구가 40여년 만에 반 토막 났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지난해 어린이 인구는 1년 전보다 19만2886명 줄어든 706만1513명으로 집계됐다. 어린이 수가 가장 많았던 1972년(1385만8472명)과 비교하면 43년 만에 거의 절반으로 준 것이다. 최근 5년을 비교하면 지난해 어린이 인구는 2011년보다 74만8867명(9.6%) 감소했다. 비혼(결혼하지 않음)과 만혼(늦게 결혼함) 추세 확산, 가임기 여성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10년째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를 지적했다. 저출산·고령화는 곧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이어지는 등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OECD 우등생이었던 한국, 지금은...우리나라는 OECD 가입 이후 지난 20년 동안 OECD회원국 평균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1970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OECD 평균의 17.1%였지만 지난해 86.4%까지 상승했다.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갖추는 등 한국은 OECD에서도 우등생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최근 10년 잠재성장률을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란 노동과 자본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생산요소를 투입해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 없이 최대로 이뤄낼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한마디로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나타낸다.
KDI(한국개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06~2010년 5년간 평균 4%를 기록한 잠재성장률은 2011~2015년엔 3.1%로 추락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KDI는 올해부터 앞으로 5년 후인 2020년까지 3%, 2021~2025년엔 2.5%, 2025~2030년엔 1.8% 등으로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OECD는 한국경제의 이런 원인을 저출산과 고령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낮은 생산성에서 찾는다. OECD가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 줄곧 조언한 내용이다. 정부는 10년(2007~2016년)간 3165조원(이중 150조원 규모가 저출산·고령화 정책에 투입)의 예산을 투입,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와 더불어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크게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가 불확실해지다 보니 기업들의 투자가 줄면서 자본투입이 둔화됐고,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총요소 생산성이 하락해 잠재성장률이 크게 떨어졌다”며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노동투입이 계속 줄어들면 잠재성장률에 더 큰 부담을 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OECD가 바라본 한국경제
OECD가 지난 10년간 한국경제보고서를 통해 가장 많이 한 얘기는 ‘구조적 문제’다. 여러 문제가 뒤엉켜 복잡한 상황이 됐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선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만 해도 각종 규제에 막혀 기업들의 일자리가 줄면서 청년들이 취업을 못해 결혼을 하지 않는 문제와 수명이 연장돼 사람들이 오래 살면서 자연스럽게 고령화되는 문제가 혼합돼 있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경제정책이 먹히지 않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일할 사람은 줄고 고령층이 늘면서 당장 복지 부담부터 급격하게 늘어난다. 고령층이 노후 대비를 위해 돈을 쓰지 않아 시장에서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현상도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거시정책을 통해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 경기를 띄울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이 상식적이지만, 지금처럼 복합적인 요인이 쌓인다면 결국 일본처럼 경제 정책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삶의 질을 강조하는 OECD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소기업과 대기업 등으로 양분된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지난 10년간 계속 지적하며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했다.
그러나 2014년 기준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보다 38% 적은 채 머물러 있다. 서비스업 활성화를 통한 성장잠재력 확충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고용에서 서비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70.1%를 기록했지만, OECD 평균 72.9%에는 미치지 못한다. 부가가치 비중에선 2005년 59.4%를 기록한 이후 10년째 이 수준을 맴돌고 있지만, OECD 평균 71.3%에 한참 뒤처진다.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도 선진국 평균의 80% 수준으로, OECD 최하위권이다.
◇OECD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규제개혁(Regulatory Reform)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한국에 조언한다. OECD는 올해 한국경제보고서에서도 이를 비중 있게 다뤘다. 규제비용 총량제 도입과 규제 네거티브 전환 등을 통해 서비스 분야 등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비스분야 규제가 제조업의 4배 수준이라고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했다. 정부 관계자는 “쉽게 말해 규제를 없애야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들이 취직해 돈을 벌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을 거라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또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현재와 같이 5년 단임제에서 추진한 정책들이 다음 정권으로 이어지는 건 힘들다. 정권 초반 2~3년 일할 수 있는 시기에 강하게 추진되다 정권 말기엔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지속적인 실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와 정부가 견제하며 대립하기보다, 저출산·고령화나 노동시장 양극화 등 시급한 문제에 대해선 한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여러 갈등 구조를 해결하는데 가장 중요한 조율 장소가 국회”라며 “국회가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고, 이 과정에서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정책을 새로운 틀에서 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 재정정책이 땜질식 처방이란 이유에서다. 어디에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원점에서 살펴보고, 예산이 새는 곳을 막아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곳에 돈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마다 추가경정(추경) 예산을 짜야 하는 등 효율적인 재정운영은 기대하기 어려다.
아울러 시간선택제 등 다양한 일자리를 통해 더 많은 청년과 여성이 노동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하고, 구조조정 등 산업개혁으로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면서 노동·교육개혁을 통한 경제 주체들의 생산성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혜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는 “고성장에 익숙한 대한민국이 저성장에 빠지면서 경제 주체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며 “빠른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비하면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OECD한국경제보고서=OECD는 2년 주기로 34개 회원국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다. 경제동향과 각종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평가하고 정책권고 사항을 포함한 국가별 검토 내용을 담는다. OECD한국경제보고서도 2년마다 나온다. 지난 5월 15번째 보고서가 나왔다. OECD 한국경제보고서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를 겪은 1998년 경제 급변기부터 매년 발간되다가 2008년 경기가 안정되면서 2년 마다 한 번씩 나오고 있다.
올해 보고서엔 거시경제동향과 정책, 혁신과 구조개혁, 노동시장 개혁 등이 담겼다. 정부는 OECD한국경제보고서를 정책 구상에 활용한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정책방향을 설정한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질적인 성장에도 정책적 관심을 가져야한다"며 "OECD한국경제보고서는 정책 구상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진우 기자 econphoo@mt.co.kr, 정혜윤 기자 hyeyoon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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