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2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당 대표 후보등록 기자회견을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캠프 대변인을 맡은 김광진 전 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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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8일)는 '대통령 탈당'이라는 제목의 정치권 뉴스가 유독 많이 쏟아져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전당대회 출마 기자회견에서 2012년 대선에서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개입 논란을 거론하며 공정한 대선 관리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과 내각총사퇴 후 선거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의 길로 가려면 초당적 입장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야 한다"며 전면개각을 요구했다.
왜 그럴까?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이 낮아서? 해봤자 새누리당에 득이 될 게 없는 얘기라서? 여당 논평처럼 추 의원의 발언이 지지층을 겨냥한 인기영합성 발언이라서?
한편으로, 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가뜩이나 인기 없는 대통령이 탈당계 한 장 쓰는 '정치적 제스처'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과거사를 돌아보면, 대통령의 탈당은 권력지형에 크고작은 풍파를 일으켜왔다.
대통령 탈당하면 고위당정협의회 등 근거 사라져
먼저, 대통령이 탈당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짚어보자.
2013년 4월 15일 마련된 '당정협의업무운영에 관한 국무총리 훈령'(601호)은 여당을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으로 정의하고(2조), 행정부와 여당 사이에 정책협의 및 조정을 위하여 고위당정협의회를 둔다(7조 1항)고 되어있다.
대통령이 탈당하면 새누리당은 '집권여당' 이란 타이틀을 떼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청와대와 정부 사이에 각종 법안과 현안들을 조율하는 채널도 사라지게 된다.
대신, 청와대와 정부는 각종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국회내 모든 정당들과 등거리를 유지하는 '초당적 협의'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국정 조율의 명목으로 새누리당에 파견돼 있는 행정부 소속 전문위원들의 '원대복귀'도 불가피하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대통령 탈당과 상관없이 국정 운영을 계속 뒷받침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지 않더라도 일단 대통령과 법적으로 '남남'이 되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주로 권력과 조직에 기대 중요한 선거를 치러왔던 여당이 대통령 없이 '체질 개선'에 성공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치사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1987년 헌법 개정 이래 역대 대통령(5명, 박근혜 제외) 4명이 대선이 치러진 해에 소속 정당의 당적을 정리했다. 새누리당은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자유당 탈당과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 탈당을 맛본 경험이 있다.
▲ 민자당 떠나는 노태우 대통령 1992년 10월 5일, 노태우 대통령은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민자당의 당적을 떠나겠다는 9.18선언에 따라 당사를 방문, 탈당계를 제출한후 당사를 떠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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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의 민자당 탈당은 그해 충남 연기군의 조직적인 관권선거가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내놓은 '고육책'이었다. 관권선거를 안 하겠다던 노태우는 훨씬 교묘한 금권선거로 유권자들을 기만했다.
노태우는 2011년 8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대선 막바지에 김영삼 후보로부터 자금이 모자란다는 SOS(긴급요청)를 받고 금진호 상공부 장관을 통해 한 몫에 1000억 원을 보내주는 등 3000여억 원의 대선자금을 지원해줬다"고 실토했다. 1992년 노태우는 법률상의 당적은 정리했지만 마음 속 당적까지 정리하지 않은 '위장탈당'을 감행한 셈이다.
1997년의 양상은 또 달랐다.
그해 10월 21일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이 요구한 '김대중 비자금' 수사를 하지말라고 김태정 검찰총장에 지시하자 신한국당은 같은 해 11월 6일 포항에서 열린 대선 필승 결의대회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상징하는 '03'이라는 마스코트를 몽둥이로 치는 퍼포먼스까지 하며 '대통령 내쫓기'에 나섰다. 결국 김영삼은 범여권 후보였던 이회창·이인제의 단일화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방법으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대통령이 탈당하더라도 어떠한 모양새를 띔에 따라 정국에 미치는 파장은 천지차이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2년 전 박 대통령 "여당이 날 공격하면 당에 남을 이유 없어"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해 2014년 7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열렸던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김무성 지도부와의 오찬 자리에서 한 발언이 보도돼 논란을 일으켰다(2015년 6월 2일 국민일보).
박 대통령은 "야당이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당이 공격하면 정부는 일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 새누리당이 만약 그렇게 하면 내가 여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해 참석자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무성 당시 대표와 청와대는 보도 내용을 부인했지만, 여당 내에서는 "박 대통령의 성격상 충분히 했을 만한 발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 대통령의 2년 전 발언에 비추어보면, 대통령은 추미애나 박지원 등 야당발 탈당 요구에는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여당, 정확히 얘기하면 계파 갈등을 겪고 있는 여당이다. 지난해 7월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 사퇴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새누리당이 올해는 그의 공천을 놓고 '내전'을 벌이다가 총선에서 대패했다.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상징되는 박 대통령의 박해는 유 의원을 오히려 정치적으로 성장시켰고, 그는 내년 여권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박 대통령과 차별화된 대선주자를 발굴해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새누리당 비주류의 구상은 건건이 박 대통령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 지난 2014년 7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오찬을 갖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날 오찬에 불참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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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종착역이 탈당이라는 대통령과 여당의 정치적 결별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도 여권 내에서는 별로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속내를 밝히는 사람도 없다.
친박의 입장에서는 '대통령 탈당'을 거론하는 것이 금기를 건드리는 셈이고, 비박의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 일이라면 사사건건 반대한다"는 계파 프레임의 작동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친박계 의원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이 여당의 주도권을 잡게 되면 대통령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정치적 선택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도 "그렇게 되면 새누리당에는 망조가 드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비박계의 한 의원은 "(여당이 아닌) 야당 등쌀에 못 이겨 대통령이 당에서 손을 떼는 방식으로 (탈당) 문제가 해결돼야 여당이 받을 충격파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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