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시, '기본권 침해' 논란 일자 표지판 제거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터키 최대도시 이스탄불 펜디크 구역의 외진 언덕에는 지난 25일 묘지 하나가 생겼다.
키 작은 나무만 듬성듬성 서 있을 뿐 비석도 없는 묘지 입구에는 'HAINLER MEZARLGI'라는 초라한 철제 표지판이 세워졌다.
'반역자 묘지'라는 뜻이다.
이 곳에는 쿠데타 시도 중 유혈충돌 과정에서 사망한 쿠데타군 24명 가운데 10여 명이 묻혔다.
쿠데타군을 향한 치솟는 분노 속에서 이들 대부분은 장례식도 없이 매장됐다.
터키 종교청인 디야넷은 지난 19일 쿠데타군 사망자의 장례의식을 주재하지 않을 것이며 장례기도도 해주지 않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가 나서서 장례의식을 거부하라고 이슬람교계에 지침을 내린 것이다.
공동묘지 관리당국에서도 이들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오르두시(市)에서는 시장이 쿠데타군에게 묘지 제공을 금지해 유족이 정원에 매장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스탄불 시장은 이들이 오가는 행인에게 영원히 저주를 받게 할 요량으로 '반역자 묘지'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카디르 톱바시 시장은 지난 19일 "쿠데타군은 지옥에서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 믿는다"면서 "우리는 현세에서도 그들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도안통신사 등 터키 언론이 전했다.
지난 25일 초라한 묘지가 만들어지고 시장의 선언대로 '반역자 묘지' 표지판도 세워졌다.
그러나 망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자 지난 29일(현지시각) 표지판은 치워졌다.
톱바시 시장은 "디야넷이 이 문제를 논의한 후 표지판을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해서, 그 의견을 따랐다"고 밝혔다고 터키 매체들이 보도했다.
표지판은 치워졌지만 터키인과 언론에서 이 묘지는 '반역자 묘지'로 이미 딱지가 붙었다.
국제앰네스티의 터키 담당 앤드루 가드너는 "장례의식과 매장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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