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비망록에 '공소심의위' 기소검사 배제 지시 정황.."검찰 수뇌부 동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14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 건의 항소를 무마하기 위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 수뇌부가 김 전 실장의 뜻대로 항소에 반대하는 모양새를 만들도록 종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원 전 원장 사건의 1심은 정치중립 의무를 위반한 국정원법에 대해선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공직선거법에 대해선 무죄를 선거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검찰이 기소한 대로 선고가 나오지 않으면 불복하고 항소하는 것은 불문율처럼 당연한데, 정권에 부담스러운 '원세훈 사건'에 대해선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같은 정황을 파악하고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 김기춘, 원세훈 기소는 '비정상'…항소 과정 개입 흔적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보면, 2014년 9월 17일자에 '공소심의위원회-참여 수사검사-규정 참고, 비정상의 정상화-기소검사 배제'라는 대목이 나온다.
해당 글귀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뜻하는 '장'(長) 지시사항 가운데 하나로, 중요 업무를 뜻하는 'ⅴ' 표시와 함께였다. 아래에는 '인권침해'라는 단어가 적혔다.
앞 부분은 공심위에 참여할 수사검사는 공심위에 관한 대검 예규를 따르도록 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문제는 뒷 부분으로, '비정상의 정상화-기소 검사 배제'는 원세훈 전 원장 사건을 기소한 검사는 공심위원에서 배제하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여기에는 기소 자체가 '비정상'이었다는 인식도 강하게 깔려 있다.
'인권침해'는 항소를 해서 사건을 계속 끌면 피의자인 원 전 원장의 인권침해에 해당하니, 항소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이 원 전 원장의 1심 판결의 항소 여부를 결정한 공심위 논의에 개입하려 했던 결정적인 정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 김 전 실장의 '지시사항' 대로 이날 공심위원 자격으로 공심위에 참여한 '기소 검사'는 없었다. 박형철 당시 특별수사부팀장이 공심위원이 아닌 '참관인' 자격으로만 공심위에 참여했을 뿐이었다.
이마저도 당시 수사팀 내부에서 "공심위에서 왜 배제시키냐"는 항의가 빗발쳐 성사된 참여였다. 박 부팀장은 수사 관련 설명만 하고 항소를 강하게 주장하다 중간에 쫓겨나다시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형사건에서 항소를 해야하는 상황일 때 공심위가 열리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수사한 검사가 공심위에 배제되는 경우는 정말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원 전 원장은 전년도인 2013년 6월 14일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을 방패막이로 윤석렬 특별수사팀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까지 뚝심있게 밀어붙였지만,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은 이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공안부장으로만 공소심위 구성 시도…노골적인 힘빼기
기소 단계부터 수사팀의 수사내용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검찰 수뇌부의 대응은 1심 판결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검찰은 1심에서 선거법 위반에 무죄가 나왔는데도 이례적으로 즉각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정치적 고민을 하는 모습을 엿보였다. 검찰은 항소 기한 18일을 꼬박 보내다 기한 하루 전날인 9월 17일 공심위를 열었다.
공심위원 9명이 당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할지에 대해 격론을 벌였고, 결론은 '항소'로 모아졌다. 당시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현 대검찰청 기획조정실장)와 이정회 특별수사팀장(현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타부 소속 검사 등이 참석했다.
윤 차장은 공심위 결과를 밝히는 기자간담회에서 '굳이' 선거법 무죄에 대한 항소를 결정하는 데 공심위에서도 치열한 내부 토론이 있었다고 밝혔다. 통상 항소사유와 항소 여부만 밝히는 것과 달랐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항소를 해야 하는데 그런 마당에 무죄가 난 부분을 두고 갈 수는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다"면서도 "선거법으로 기소할 당시 논란도 있어서 과연 (선거법 무죄에 대한 항소를) 하는 게 맞느냐는 논의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과 당시 관계자들을 말을 종합해보면, '김기춘→김영한→우병우(당시 민정비서관)→김수남→윤웅걸' 순서로 지시사항이 전달됐고, 청와대의 뜻에 따르도록 항소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수남 당시 서울중앙지검장(현 검찰총장)은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을 정권의 '코드'대로 매끄럽게 처리해 총장직에 올랐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 수뇌부가) 항소를 하더라도 최소한 외부적으로 만장일치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디지털 증거능력이 법원에서 인정이 안 된 것만 해도 항소가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최종 논의결과는 비밀에 부친 것으로 안다. 모두 항소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당시 검찰 수뇌부는 애초 형사부와 특수부, 공판부 부장들은 제외하고 윤 차장 휘하 공안부장들로만 공심위원을 구성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심위에서 항소 반대 의견을 끌어내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일련의 상황이 김 전 실장의 하명을 받은 검찰 수뇌부가 항소를 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공소 유지의 동력을 빼려 한 정황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김기춘 '원세훈 항소 결정' 개입…직원남용 정황
특검팀은 김기춘 전 실장이 원세훈 전 원장 판결 항소 결정 과정에 개입한 정황을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근거로 판단하고 있다.
특검 관계자는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에 원세훈 전 원장의 공소심의위원회 문구가 적혀 있는 부분을 포함해 김기춘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다양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원 전 원장의 1심 선고 후 법원 내부망에 '지록위마' 판결이라고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를 징계하는 데 관여한 정황,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에 개입한 정황 등이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에서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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