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보수냐.”
대선 결과를 알리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다 흠칫 놀랐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이게 나라냐”고 분노한 여론이 만든 조기 대선이었다. 그래서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고, 한치 예상을 벗어남 없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후보가 당선됐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이들이 또 다른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홍준표ㆍ유승민 두 보수 후보의 성적 때문이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의 이름만 바꾼 세력이 선출한 후보가 홍준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뛰쳐나온 이들이 뽑은 후보가 유승민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득표율은 24% 대 6.8%, 비교할 수 없는 수치였다. 이른바 보수 유권자들이 홍준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나라 보수는 정녕 대통령 탄핵이 잘못됐다고 믿는 것인가.
적어도 댓글은 그렇지 않았다. “유승민이 2위를 했어야 정상적인 나라 아닌가.“ “이런 후보(유승민)를 뽑아야지. 답답하다. 이게 보수냐.” “정말 이해 안 되는 홍준표 지지율, 더 이해 안 되는 유승민 지지율. ㅠㅠ.”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도 이런 분노에 의견을 보탰다. “문재인 찍었지만 홍준표가 2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보수는) 정신 좀 차리세요!”
물론 홍준표에 표를 준 유권자의 상당수는 그를 지지한다기보다 진보가 정권을 잡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일 테다. 문재인 대통령을 그야말로 ‘종북’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승민보다는 더 당선 가능성이 있는 홍준표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이 땅의 병든 보수를 치료할 쓴 약이 될 수 없음은 댓글이 잘 알고 있었다. “부패하고 잘못을 인정 안 하는 ×들과는 확실히 선을 그으세요.” “쓰레기 보수는 쓸어버리고 진정한 보수를 재건해주세요. 다음 선거 때는 나 같은 보수가 방황하지 않도록.”
그들에게는 바른정당의 탈당 사태가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탈당한 의원들이 바라는 건 ‘보수 개혁’이 아니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우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일 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이 돌연 사퇴하자 떠나왔던 옛집이 보다 안전해 보였던 것이다. “그간 보수라 자처해온 세력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 진짜 보수가 걸러지고 나머지는 분리수거 되는 과정”이라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분석이 그래서 명쾌하다.
프랑스에서도 엊그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우리가 보수 쪽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프랑스는 진보 쪽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사회당 소속의 마뉘엘 발스 전 총리가 한달 뒤 있을 총선에서 앙마르슈(전진)의 공천을 희망했다. 앙마르슈는 이번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만든 중도신당이다. 당연히 사회당에서 난리가 났지만 마크롱의 앙마르슈는 단칼에 거부했다. “우리가 하려는 건 프랑스 정치생태계의 개혁이지 재활용이 아니다.”
보수건 진보건 적나라한 밑바닥이 보여야 무엇을 개혁해야 할 지 보이는 것이다. 댓글은 그런 진리를 꿰뚫고 있었다. “문재인 지지자지만, 건전한 보수와 건전한 진보의 대결이 나라의 발전을 이끕니다. 부디 당 정비 잘 하세요.” “보수ㆍ진보의 상호 견제와 힘의 균형은 늘 필요합니다. 답 안 나오는 수구가 아닌 개념 있는 보수로 자리매김 해주세요.” “합리적 보수와 이성적 진보가 겨루는 대한민국을 기대합니다.”
무엇이 옥인지 무엇이 돌인지 보여줬기에, 220만표, 6.8%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래서 댓글의 분노 속에는 희망이 섞여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보수가 새로 찾은 씨앗 아닐까. “덕분에 보수라고 말하는 게 덜 창피하게 됐어요.” “그 동안 설레고 즐거웠어요. 나는 젊은 보수입니다!” “난 7%에 투자했어요. 앞으로 70% 기대해요.” “건투를 빈다. 한국 진보의 최대 불행은 제대로 된 보수가 없었다는 것이므로.”
김지은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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