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가장 신뢰하던 정치부 기자에서 정치인으로
총선에 이어 두 번째 제안 받고 한 달 고민
"네이버와 나의 정치 참여는 전혀 무관"
"정치권, 여전히 종이 서류가 너무 많다"
"스마트폰 등으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치혁신 필요"
지난 3월 문재인 캠프 영입 인사들 가운데 출입기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건 윤영찬 전 네이버 부사장(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었다. 그는 당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본부장으로 더문캠(문재인 후보 경선 캠프)에 들어왔다. 언론사 정치부 기자 출신이란 심리적 동질감에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의 부사장으로 인생 이모작을 성공적으로 일군 데 대한 후광 효과랄까. 물론 한편에선 우려 섞인 시선도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안 바뀐다는 바로 그 정치판, IT 및 미디어 전문가로 불리는 그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간 각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타들이 기세 좋게 정치판에 발을 담갔다가 기량을 펼치기도 전에 쓰러지거나 ‘기존 정치인’의 옷으로 곧바로 갈아입는 실패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성공적 출발은 주변의 수근거림들을 일단 불식시켰다. 캠프에 합류한 뒤 내놓은 윤영찬표 작품들이 선거운동 시장에서 먹혔기 때문이다. 정책 쇼핑몰 ‘문재인 1번가’와 항공권 발매를 연상케 하는 사전투표 독려 캠페인 ‘545 얼리버드 파란 티켓’이 대박을 쳤다. 그와의 인터뷰는 투표 전날인 8일 오전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진행됐다. 물론 청와대 수석으로 임명되기 전이다. 인터뷰 직전 선거 유세를 정리하는 마무리 브리핑을 마친 그는 군데군데 얼룩이 번져 있는 파란색 선대위 점퍼 차림이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코와 턱 주변에는 거친 수염들이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그는 “집 나온 지 50일째”라고 했다. 왜 네이버 부사장 자리 대신 정치를 택했는지, 정치를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네이버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았을 텐데 이곳에서는 월급을 얼마나 받고 있나. “액수를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네이버에서 어느 정도의 월급을 받은 건 맞다. 그간 쌓인 빚도 모두 갚았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한 푼도 안 받는다. 자원봉사자다.”
-대표적으로 어떤 점이 그렇게 보였나. “예를 들어 지금 대부분 정치권의 홈페이지를 보면 정보 나열식이다. 홍보물이나 각종 콘텐트를 만들어 놓고 ‘와서 보고 가라’는 일방식 소통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요즘 시민들을 소극적인 수용자로만 보는 것이다. ‘디시인사이드’ 같은 사이트처럼 적극성과 놀이에 대한 욕구를 결합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와대에 가면 홍보수석을 맡는다는 관측도 있다. IT 전문가로서 정치를 하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 “그런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 언질을 받은 적은 없다.(윤 수석은 11일 청와대 신임 국민소통수석으로 임명됐다) 내가 진짜 정치인인지, 정치를 하고 싶은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참여했기 때문에 지금에야 그런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중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정당의 구조나 정치형태, 유권자들의 참여 등에서 새로운 실험을 해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이제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는 실시간으로 유권자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이들의 정치적 의사를 몇 년에 한 번 치르는 선거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정치와 정책에 반영하고 소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총선에 이어 두 번째 제안 받고 한 달 고민
"네이버와 나의 정치 참여는 전혀 무관"
"정치권, 여전히 종이 서류가 너무 많다"
"스마트폰 등으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치혁신 필요"
-네이버 부사장이 왜 정치판에 뛰어들었는가. “실은 지난 총선 때도 제안이 몇 번 왔었다. 당시엔 정치에 마음도 없었고,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해 거절했다. 하지만 이번에 제안이 왔을 때는 한 달가량 고민했고, 결국 마음을 굳히게 됐다.”(윤 수석은 함구했지만 두 번 모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제안했다고 한다)
-그럼 이번에는 왜 왔나. 민주당의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 보여서 합류한 건 아닌가. “그런 이유는 아니다. 지난해 탄핵 정국에서 광화문 광장을 메운 촛불시위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가 촛불을 들었다. 그러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지난 총선 때와는 달라진 지점이다. 결국 촛불시위가 나를 정치권으로 이끈 셈이다.’
-네이버에서 ‘차기 정권과의 관계를 위해 전략적으로 보냈다’고 짐작하는 이들도 있다. “참 곤란하다. 회사(네이버)와는 전혀 무관하다. 신문사(동아일보)를 그만둘 때도 그랬지만 결정을 내리면 즉각 실행에 옮기는 편이다. 합류 제안을 받고 한 달간 고민한 뒤 어느 날 새벽에 결심을 굳혔고, 바로 그날 오전 회사에 출근해 사직 의사를 밝혔다. 네이버 출신으로는 정치권에 온 첫 번째 사례인데, 나 때문에 회사가 곤경에 처해 매우 미안한 마음이다. ”
-무보수로 일한다는데 가족들의 만류는 없었나? “집사람이 대범한 스타일이다. ‘당신 원하는 대로 하라. 당신이 선택하는 어떤 것이라도 동의하겠다’고 이야기를 해 줘서 큰 고민을 덜었다.”
-미디어, 특히 IT 업계 요직에 있었던 인사로서 정치권에 들어와 보니 어떤가. “아직도 종이 문서가 너무 많아 신기했다.(웃음) 내가 직전에 IT 회사를 다녀서 그런지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네이버에서는 모든 문서를 전자 결재 방식으로 처리했다. 또 하나 안타까웠던 것은 들어와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온라인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정책쇼핑몰 ‘문재인 1번가’는 그런 고민이 반영돼 나온 결과물인가. “맞다. 사람들에게 정책을 직접 만들고 고르게 하면서 재미와 참여를 극대화시킨 사례다. 휴가나 여행을 위해 항공권을 구매하는 과정을 본떠 만든 ‘545 얼리버드 파란 티켓’, 유권자들이 선거 포스터를 만들 수 있도록 한 ‘파란을 일으키자’ 등도 마찬가지다. 모든 캠페인에서 일관되게 관통하는 건 이용자인 유권자 주도의 참여 방식이다. 유권자들이 들어와 선거 참여 티켓을 발권하고, 스스로 선거 포스터를 만들고, 이런 콘텐트들을 SNS를 통해 공유하도록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용자의 참여가 필요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는 방식이다.”
-IT 전문가로서 지금 선거 판세가 어떤 것 같나. 내일 투표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나. “지금 들어오는 각종 통계를 보면 문재인 후보가 40%대 초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0%대 중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10%대 후반을 득표할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나와 봐야 안다.” (개표 결과는 문 후보 41.1%, 홍 후보 24.0%, 안 후보 21.4%로 그가 예상한 것보다 안 후보가 약간 더 나왔다.)
-10년 넘게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취재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나. “많이 다르다. 관찰자 입장에서 선수로 뛰어보니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예전엔 수면 위만 봤다면 이제는 수면 밑에서 열심히 휘젓고 있는 발까지 보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발을 저어야 하는지 새삼 실감하고 있다.”
-18대 대선 때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의 싱크탱크 ‘정책공간 내일’의 이사장을 맡았던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가 친형이다. 문재인 후보 선대위에 참여한다고 할 때 조언은 없었나. “형님은 안철수 후보 캠프에 있었지만 대선 후 학교로 돌아갔다. 저에게는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하고 응원해 주겠다’고만 하셨다.”
◇윤영찬은 누구=문재인 정부의 초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윤영찬(53ㆍ사진) 선거대책위원회 SNS본부 공동본부장은 신문기자와 포털의 요직을 거친 미디어 전문가다. 1990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주로 정치부 기자로 활동한 윤 수석은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관련 특종 보도로 1995년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민주당 출입 시절엔 당시 총재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차에 동승시켜 국회의원 공천 내용을 알려줄 정도로 동교동계 야권 인사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낙연 전남지사와는 동아일보 정치부에서 선후배로 손발을 맞췄다.
2008년 네이버로 이직한 뒤에는 미디어서비스 실장(미디어 담당 이사)을 맡아 뉴스편집과 홍보 등을 맡았다. 올 1월 네이버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더불어민주당 캠프에 합류했다. 정책 쇼핑몰 ‘문재인 1번가’, 항공권 발매를 연상케 하는 사전투표 독려 캠페인 ‘545 얼리버드 파란 티켓’ 등을 잇달아 내보였다.
동아일보와 네이버 재직 당시 업무 추진력외에도 소탈하면서도 겸손한 성품을 겸비해 주변에 적(敵)을 만들지 않는 스타일로 통했다. 지인들사이엔 “후배들에게는 관대하지만 상사들에게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선대위가 꾸릴 때부터 그를 홍보수석으로 낙점해 영입했다고 한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의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서울대 윤영관 명예교수의 친동생이다. 형제가 나란히 노무현ㆍ문재인 정부에서 고위 공직자로 일하는 경력을 갖게 됐다. 윤 명예교수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당시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싱크탱크였던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을 맡았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