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 역사학계의 대부 이병도 박사가 지난 1962년 10월 9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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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국정화는 전시대적인 낡은 방식으로 후진국가나 공산주의국가, 혹은 전체주의국가에서 어떤 주의를 주입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3년 전인 1962년, 한국 보수 역사학계의 대부인 이병도 역사학자(전 문교부장관)가 이런 글을 한 신문에 기고한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최근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중고교<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병도 "국정제는 동일한 조미료 먹이는 것"
1960년부터 1981년까지 학술원 회장을 맡은 이병도 박사(1896년 ~ 1989년)는 서울대 대학원장, 문교부장관, 국사편찬위원 등을 지내며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진단학회를 만들어 실증 사학으로 뚜렷한 업적을 남겼지만, 식민주의 사관을 벗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동아일보>는 1962년 10월 9일자 6면 '국정교과서 진단' 특집에 이 박사를 비롯한 학자 5명의 기고문을 실었다. 모든 기고문이 당시 중고교에서 <실업>교과서와 함께 국정교과서로 나오던 <국어>교과서를 검정교과서로 전환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고문에서 이 박사는 '획일적 교육은 전시대적 방식'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여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 것은 전시대적인 낡은 방식으로 후진국가나 공산주의국가, 혹은 전체주의국가에서 어떠한 정책과 주의를 주입하기 위한 방법에 불과한 것이며, 진보된 선진국가에서는 채택치 않는 것이다.
국정으로 한다면 좋으나 나쁘나 모두 그것을 사용하게 된다. 마치 동일한 분량, 동일한 내용, 동일한 조미료의 음식을 모든 사람에게 먹이는 격이어서 선택의 여지와 자유가 박탈되고 있다.
1962년이면 한국도 후진국이었는데, "국정교과서=후진국가"라고 주장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 박사의 이 같은 '국정화 반대' 논리는 김정배 현 국사편찬위원장과 김재춘 직전 교육부차관의 과거 발언과도 맥을 같이 한다.
김 국편위원장은 1973년 6월 25일자 <동아일보> 5면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국사가 획일적으로 되는 것에 반대한다. 획일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다"면서 "(국정화로) 다양성을 말살하고 획일성만을 찾으려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1974년 해방 이후 처음으로 국정화된 중고교<국사> 교과서에 대해 김 국편위원장과 뜻을 같이하며 반대활동을 펼쳤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09년 6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정책연구인 <교과서 검정체제 개선방안 연구> 논문에서 "국정교과서는 독재 국가나 후진국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 "우익으로 심하게 치우친 사학자들만 국정제 찬성"
이 박사의 기고문에 대해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역사학자)은 "정부여당은 남북이 분단 상황이기에 국정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전쟁 뒤 지금보다 냉전체제가 더 극심한 1962년에도 역사교과서가 검정제였으며, 이병도를 비롯한 학자들은 <국어>교과서도 검정제로 바꿀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정책위원장은 "이병도와 같은 보수사학자도 국정제에 반대한 까닭은 역사학에서는 '하나의 역사가 없다'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면서 "지금도 국정교과서 반대 대열에 보수 사학자들까지 대거 참여하고 있는 반면, 우익으로 심하게 치우친 역사학자들만 국정제에 찬성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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