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여당 대표의 공천룰 합의를 두고 벌집 쑤신 듯 어수선하다. 청와대 직할부대를 자임하는 친박계에선 “오랑캐(야당)와 야합” “쿠데타” 등 날 선 언어들이 난무한다. 청와대까지 가세해 한바탕 난리법석이다. 친박계 표현대로라면 바야흐로 ‘골육상잔’의 드라마가 펼쳐질 참이다.
김무성 대표의 ‘부산 합의’를 두고 ‘위화도 회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니 권력 주류 중 주류들의 이런 요동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외면하기 어려운 명분에 이처럼 소동 외엔 마땅한 방도가 없는 권력 주류의 왜소함이 씁쓸하다.
모든 정치적 소동엔 ‘복선’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추석을 앞둔 여권의 가장 심각한 화두는 ‘반기문(潘基文)’이었다. 돌연 재부상한 ‘반기문 대망론’은 여권 차기후보 1등인 김무성 대표의 곤경과 맞물린 것이었다. ‘마약 사위’ 건이 불거지고, 친박계가 ‘김무성 불가론’을 드디어 꺼낸 때였다. 태풍의 전조마냥, 여권이 그냥 무탈하게 지나가진 않을 것이라 짐작은 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3박4일 미국 뉴욕 출장 내내 7차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친분(?)을 과시했다. 유엔이란 국제외교 무대에 그 모습이 어떻게 비쳤는지는 관심 밖이지만, 적어도 의도대로 국내엔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반기문 대망론’은 그렇게 이번 추석 어느 때보다 큰 보름달만큼 커지고 커졌다. 어느새 반 총장은 ‘외교대통령’이란 생소한 개념으로 포장되고, 내치(內治)는 친박계가 지원하는 소위 ‘반 대통령, 최경환 총리’설로까지 발전했다. 이대로라면 다음 대한민국호(號)를 책임질 권력은 ‘반(半·절반) 권력’인 셈이다.
어느 정권이나 정권 재창출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권력 영속’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어느 팔레스타인 시인은 희망이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라 했지만, 권력에 ‘정권 재창출’은 ‘실현할 수 없는 희망’일 것이다. 진시황이 ‘영생’을 좇았듯 말이다.
열린우리당이 17대 총선 압승을 거둔 지 나흘 만인 2004년 4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은 김근태 원내대표를 은밀히 청와대로 불렀다. 모처럼 온기가 돈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김 대표는 나와 같은 중도진보고, 김혁규 전 경남지사나 정동영 의장은 중도보수가 아니냐”며 ‘김혁규 총리’ 카드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그러면 나를 도와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지만, 노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다. 노 대통령의 차기 구상이 시작됐다고 알려진(2006년 1월8일 윤태영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그 시점이다.
2009년 여름 무렵 사석에서 만난 이명박 정권 한 핵심 인사는 불쑥 ‘젊은 총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김태호 경남지사가 어떠냐”고 했다. 정확히 김 전 지사가 총리 후보로 지명되기 1년 전이다. 그는 말미에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만한 카드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하지만 성공한 예는 극히 드물다.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 정부 탄생이 그나마 가까운 사례겠지만, 민주당 분당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성공으로 보긴 어렵다. 정권들마다 인물·세력·정책 등 갖가지 방편을 동원해 실험해보지만 결과는 모두 허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모든 실패를 보며 ‘확실한 자기 사람’으로 차기 관리를 택한 듯하다. 그것도 대권후보 한 명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세력’의 도모를 꿈꾸는 듯하다. 왕조적 열정으로 무장한 ‘TK(대구·경북)’라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세력이다. 정권은 끝나도 ‘TK의 군주’로 여권의 정치적 상왕은 가능할지 모른다.
권력 영속의 욕망은 그러나 논리적으로도 백일몽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권 재창출의 평가는 국민의 몫이다. 정치권이 어떤 무대를 만들어도 마지막은 국민 평가란 현실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국민의 이목을 모두 가리지 않는 한 성공하기 어렵다.
둘째, 어찌어찌해 잠시 국민 이목을 가리는 데 성공해도, 새로운 권력은 늘 과거 권력을 부인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권 유행어는 ‘배신’이다. 배신을 안 당하려 기를 쓸수록 배신 확률이 높다는 암시만 줄 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무서운 것은 시간이다. 바로 ‘망각’이다. 이게 결정적이다. 지나간 권력은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망각’의 늪을 피하려 기술을 부릴 수 있지만, 그럴수록 관심보다는 짜증과 실망만 만들어내기 쉽다. 결국 그건 배신과 망각, 몰락을 더욱 앞당기는 길이다.
청와대발 정권 재창출 ‘작전’은 오히려 ‘망조’의 신호탄이기 십상이다. 박 대통령의 세력 만들기가 ‘못난 자식(친박)들 국회 취업시키기’ 같은 꼴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김무성 대표의 ‘부산 합의’를 두고 ‘위화도 회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니 권력 주류 중 주류들의 이런 요동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외면하기 어려운 명분에 이처럼 소동 외엔 마땅한 방도가 없는 권력 주류의 왜소함이 씁쓸하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3박4일 미국 뉴욕 출장 내내 7차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친분(?)을 과시했다. 유엔이란 국제외교 무대에 그 모습이 어떻게 비쳤는지는 관심 밖이지만, 적어도 의도대로 국내엔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반기문 대망론’은 그렇게 이번 추석 어느 때보다 큰 보름달만큼 커지고 커졌다. 어느새 반 총장은 ‘외교대통령’이란 생소한 개념으로 포장되고, 내치(內治)는 친박계가 지원하는 소위 ‘반 대통령, 최경환 총리’설로까지 발전했다. 이대로라면 다음 대한민국호(號)를 책임질 권력은 ‘반(半·절반) 권력’인 셈이다.
어느 정권이나 정권 재창출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권력 영속’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어느 팔레스타인 시인은 희망이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라 했지만, 권력에 ‘정권 재창출’은 ‘실현할 수 없는 희망’일 것이다. 진시황이 ‘영생’을 좇았듯 말이다.
열린우리당이 17대 총선 압승을 거둔 지 나흘 만인 2004년 4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은 김근태 원내대표를 은밀히 청와대로 불렀다. 모처럼 온기가 돈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김 대표는 나와 같은 중도진보고, 김혁규 전 경남지사나 정동영 의장은 중도보수가 아니냐”며 ‘김혁규 총리’ 카드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그러면 나를 도와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지만, 노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다. 노 대통령의 차기 구상이 시작됐다고 알려진(2006년 1월8일 윤태영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그 시점이다.
2009년 여름 무렵 사석에서 만난 이명박 정권 한 핵심 인사는 불쑥 ‘젊은 총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김태호 경남지사가 어떠냐”고 했다. 정확히 김 전 지사가 총리 후보로 지명되기 1년 전이다. 그는 말미에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만한 카드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하지만 성공한 예는 극히 드물다.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 정부 탄생이 그나마 가까운 사례겠지만, 민주당 분당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성공으로 보긴 어렵다. 정권들마다 인물·세력·정책 등 갖가지 방편을 동원해 실험해보지만 결과는 모두 허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모든 실패를 보며 ‘확실한 자기 사람’으로 차기 관리를 택한 듯하다. 그것도 대권후보 한 명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세력’의 도모를 꿈꾸는 듯하다. 왕조적 열정으로 무장한 ‘TK(대구·경북)’라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세력이다. 정권은 끝나도 ‘TK의 군주’로 여권의 정치적 상왕은 가능할지 모른다.
권력 영속의 욕망은 그러나 논리적으로도 백일몽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권 재창출의 평가는 국민의 몫이다. 정치권이 어떤 무대를 만들어도 마지막은 국민 평가란 현실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국민의 이목을 모두 가리지 않는 한 성공하기 어렵다.
둘째, 어찌어찌해 잠시 국민 이목을 가리는 데 성공해도, 새로운 권력은 늘 과거 권력을 부인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권 유행어는 ‘배신’이다. 배신을 안 당하려 기를 쓸수록 배신 확률이 높다는 암시만 줄 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무서운 것은 시간이다. 바로 ‘망각’이다. 이게 결정적이다. 지나간 권력은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망각’의 늪을 피하려 기술을 부릴 수 있지만, 그럴수록 관심보다는 짜증과 실망만 만들어내기 쉽다. 결국 그건 배신과 망각, 몰락을 더욱 앞당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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