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며 자신의 순수함을 강조해 책임 회피하려는 대통령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전문성, 책임성, 공개성에 기반하여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구받는 국정 운영이 단지 개인의 이익 획득에 활용했는가 아닌가라는 것만 가지고 대통령의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권력의 사물화에 의한 통치 시스템의 붕괴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적 사회적 폐해는 가늠할 수 없다. 수치심과 허탈감에 빠진 시민들의 정신적 고통은 대통령을 잘 못 뽑은 업보라 치자. 애초에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되는 권력 남용에 의한 인적 물적 피해는 대통령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수차례 대통령 담화에서는 권력을 오로지 행사하는 것으로만 알았을 뿐, 그것이 갖는 의미나 속성에 대한 아무런 성찰이나 고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사를 구별하지 못한 반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위와 권력을 말단 공무원의 권력과 동일시하는 듯하다. 이처럼 국가 권력의 효용을 가벼이 여기는 것만으로도 최고 권력자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권력 나눠 먹기에 분주했던 측근들은 권력을 사물화하기는 했을지언정, 적어도 한국 사회에 작용하는 막대한 정치 권력의 무게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온갖 전횡을 일삼을 수 있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왕정을 연상케 하는 특권적 이익 집단에 의한 정치 권력의 사물화라는 헌정 질서의 파괴적 양상으로 떠오른 만큼 많은 시민들이 공화주의 복원을 외쳤다. 하지만 정치 사상에서 특정의 개인이나 집단만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 체제를 지칭하는 공화주의적 가치만 가지고 '촛불 혁명'의 과제를 완수할 수 없다. 거기에다 권력 행사가 권력자의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야 한다는 정치 사상인 입헌주의가 결합할 때 온전한 민주주의에 다가설 수 있다.
교과서적으로 입헌주의는 헌법에 따른 권력 분립에 입각하여 상호 견제를 통해 권력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치 사상이다. 사익 추구를 위한 권력 남용이 이번 사태에서 공화주의적 의미를 부각시켰다. 한편, 권력의 견제 기능을 억압하는 대통령이 권력 작동의 결과물을 도외시한 채, 통치 수행이라는 명목 하에 정책의 실패를 넘어 정치의 부패마저 뒤덮으려는 것은 입헌주의의 파탄을 의미한다.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 권력 시스템이 대통령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가져왔으며, 따라서 헌법 개정을 통해 권력을 분산하려는 시도는 입헌주의적 관점에서도 타당하다. 하지만 이 시도는 입헌주의의 한쪽 면에밖에 부응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기만적으로 들고 나와 탄핵소추 절차마저 뒤흔든 개헌 논의는 이러한 빈틈을 노렸다.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권력 행사의 주체인 국가 권력을 헌법이 규율하여 정부의 권위나 합법성 또한 헌법에 의해 제한 받는다는 입헌주의의 더 깊은 가치를 고려하면 단지 권력 분산이 위기 극복의 방법이 되리라고는 수긍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앞으로 필연적으로 대두하게 될 개헌 논의에 있어서 권력 분산만이 아니라 시민이 정치 권력에 참여하는 정치 개혁을 지향한다면, 권력 작동의 메커니즘과 더불어 그 작동 방식에 대해서 이념적 정의로부터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아베 신조 정권이 추진한 안보관련법안이 갖는 위헌적 요소에 대응하여 헌법에 관련한 많은 논의가 일었다.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여 안전보장법 개정을 강행한 것이 입법에 의해 사실상의 헌법 개정을 야기해 입헌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 받았다.
이러한 입헌주의의 위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권력 남용으로 헌정 질서를 파탄시켜 피의자가 된 대통령이 헌법 위반 사실을 인정 못하고 특권적 상황에 기대 검찰 조사를 무시하는 헌법 파괴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입헌주의라는 원칙은 단지 헌법의 '위반'을 심판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헌법의 '구성'을 위해서도 관철되어야만 한다.
이미 시민사회에서는 박근혜 퇴진을 넘어 새로운 시민 권력을 구현하는 헌정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퇴진이 현실화 되자 보수 언론은 안정 기조를 내세우며 촛불이 더 이상 정치적 동력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공화주의 복원을 위해 진보세력과 시민세력, 그리고 보수언론마저 가담하여 박근혜 세력을 척결하는 공동 전선을 펼쳤지만, 보수언론의 의도는 딱 거기까지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있어서 조선일보, TV조선 등 보수언론의 역할이 컸던 건 사실이다. 조선일보가 촛불집회 규모나 의미를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은 이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배 세력의 재편을 통한 정권 획득이 목표인 보수언론에게 더 이상의 시민적 역동성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물론 촛불이 급진적으로 정권을 집어 삼키게 되리라곤 예상도 못했을 것이다. 시민세력과 공화주의는 공유할 수 있어도 국가 권력이 헌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입헌주의는 보수적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
불편한 심기를 문화일보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1일에 내놓은 '국가 대청소'를 위한 사회개혁기구 설치안에 대해서, '촛불 혁명'을 내세워 '혁명위원회'를 조직하려는 발상이라고 12일치 사설에서 비판했다. 입헌주의를 불온시하는 '촛불 혁명'의 정치 이데올로기화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공화주의와 입헌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해서 넘어서야 될 산이 많다.
전문성, 책임성, 공개성에 기반하여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구받는 국정 운영이 단지 개인의 이익 획득에 활용했는가 아닌가라는 것만 가지고 대통령의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권력의 사물화에 의한 통치 시스템의 붕괴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적 사회적 폐해는 가늠할 수 없다. 수치심과 허탈감에 빠진 시민들의 정신적 고통은 대통령을 잘 못 뽑은 업보라 치자. 애초에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되는 권력 남용에 의한 인적 물적 피해는 대통령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수차례 대통령 담화에서는 권력을 오로지 행사하는 것으로만 알았을 뿐, 그것이 갖는 의미나 속성에 대한 아무런 성찰이나 고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사를 구별하지 못한 반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위와 권력을 말단 공무원의 권력과 동일시하는 듯하다. 이처럼 국가 권력의 효용을 가벼이 여기는 것만으로도 최고 권력자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권력 나눠 먹기에 분주했던 측근들은 권력을 사물화하기는 했을지언정, 적어도 한국 사회에 작용하는 막대한 정치 권력의 무게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온갖 전횡을 일삼을 수 있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왕정을 연상케 하는 특권적 이익 집단에 의한 정치 권력의 사물화라는 헌정 질서의 파괴적 양상으로 떠오른 만큼 많은 시민들이 공화주의 복원을 외쳤다. 하지만 정치 사상에서 특정의 개인이나 집단만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 체제를 지칭하는 공화주의적 가치만 가지고 '촛불 혁명'의 과제를 완수할 수 없다. 거기에다 권력 행사가 권력자의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야 한다는 정치 사상인 입헌주의가 결합할 때 온전한 민주주의에 다가설 수 있다.
교과서적으로 입헌주의는 헌법에 따른 권력 분립에 입각하여 상호 견제를 통해 권력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치 사상이다. 사익 추구를 위한 권력 남용이 이번 사태에서 공화주의적 의미를 부각시켰다. 한편, 권력의 견제 기능을 억압하는 대통령이 권력 작동의 결과물을 도외시한 채, 통치 수행이라는 명목 하에 정책의 실패를 넘어 정치의 부패마저 뒤덮으려는 것은 입헌주의의 파탄을 의미한다.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 권력 시스템이 대통령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가져왔으며, 따라서 헌법 개정을 통해 권력을 분산하려는 시도는 입헌주의적 관점에서도 타당하다. 하지만 이 시도는 입헌주의의 한쪽 면에밖에 부응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기만적으로 들고 나와 탄핵소추 절차마저 뒤흔든 개헌 논의는 이러한 빈틈을 노렸다.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권력 행사의 주체인 국가 권력을 헌법이 규율하여 정부의 권위나 합법성 또한 헌법에 의해 제한 받는다는 입헌주의의 더 깊은 가치를 고려하면 단지 권력 분산이 위기 극복의 방법이 되리라고는 수긍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앞으로 필연적으로 대두하게 될 개헌 논의에 있어서 권력 분산만이 아니라 시민이 정치 권력에 참여하는 정치 개혁을 지향한다면, 권력 작동의 메커니즘과 더불어 그 작동 방식에 대해서 이념적 정의로부터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아베 신조 정권이 추진한 안보관련법안이 갖는 위헌적 요소에 대응하여 헌법에 관련한 많은 논의가 일었다.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여 안전보장법 개정을 강행한 것이 입법에 의해 사실상의 헌법 개정을 야기해 입헌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 받았다.
이러한 입헌주의의 위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권력 남용으로 헌정 질서를 파탄시켜 피의자가 된 대통령이 헌법 위반 사실을 인정 못하고 특권적 상황에 기대 검찰 조사를 무시하는 헌법 파괴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입헌주의라는 원칙은 단지 헌법의 '위반'을 심판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헌법의 '구성'을 위해서도 관철되어야만 한다.
이미 시민사회에서는 박근혜 퇴진을 넘어 새로운 시민 권력을 구현하는 헌정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퇴진이 현실화 되자 보수 언론은 안정 기조를 내세우며 촛불이 더 이상 정치적 동력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공화주의 복원을 위해 진보세력과 시민세력, 그리고 보수언론마저 가담하여 박근혜 세력을 척결하는 공동 전선을 펼쳤지만, 보수언론의 의도는 딱 거기까지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있어서 조선일보, TV조선 등 보수언론의 역할이 컸던 건 사실이다. 조선일보가 촛불집회 규모나 의미를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은 이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배 세력의 재편을 통한 정권 획득이 목표인 보수언론에게 더 이상의 시민적 역동성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물론 촛불이 급진적으로 정권을 집어 삼키게 되리라곤 예상도 못했을 것이다. 시민세력과 공화주의는 공유할 수 있어도 국가 권력이 헌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입헌주의는 보수적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
불편한 심기를 문화일보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1일에 내놓은 '국가 대청소'를 위한 사회개혁기구 설치안에 대해서, '촛불 혁명'을 내세워 '혁명위원회'를 조직하려는 발상이라고 12일치 사설에서 비판했다. 입헌주의를 불온시하는 '촛불 혁명'의 정치 이데올로기화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공화주의와 입헌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해서 넘어서야 될 산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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