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탄핵 반대세력의 대응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대통령측 변호인단이 법정에서 ‘내전’ ’시가전‘ 등 막말을 쏟아내며 재판부를 윽박질렀는가 하면, 거리에서는 이른바 ‘태극기 세력’이 “군을 동원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헌재 재판관 등에 대한 테러위협도 공공연히 나돈다. 사정이 이런데도 어느 보수논객은 민(民)과 민(民) 간의 내전을 경고하며 국론분열을 기정사실화했다. 단결된 민과 범죄행위가 드러난 권(權)과의 대결이라는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꼼수에 다름 아니다.
작금의 탄핵정국을 지켜본 기자경력 30년의 일본인은 뜬금없이 20여 년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옴진리교 사건을 떠올렸다. 지나친 기시감 아니냐고 따졌더니, 박사모를 비롯한 일부 박 대통령 지지자들의 언행이 종말론적 종교단체인 옴진리교 신자들의 마지막 행보와 닮았다고 했다. 특히 자기 생각과 다른 모두를 극도로 적대시하고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으려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기야 이런 이념적 극단주의를 경계하며 뉴욕타임스도 최근 ‘태극기 집회’를 “사이비종교 같다(cult-like)”고 비꼰 바 있다.
옴진리교는 시각장애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가 1984년 “일본의 왕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며 등장했다. 명상 자세로 공중에 떠있는 아사라하의 사진에 혹해 일부 일본인들이 그를 숭배했다. 박사모를 비롯한 일부 탄핵 반대세력이 박정희 신화에 매몰된 채 박근혜 개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듯이, 과거 옴진리교도 아사하라의 ‘교의’를 ‘묻지마’ 실천하는 결사조직이 됐다.
주목할 점은 과거 자신들의 악행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옴진리교가 보인 공격성이다. 외국에서 군사훈련까지 하며 무장했고 교단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1994년에는 담당 판사를 독살하기 위해, 이듬해에는 검찰 수사를 교란시키기 위해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뿌렸다. 수십 명이 숨졌고 지금도 수천 명이 후유증에 신음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이 명명백백해지자 적반하장 격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면 아스팔트에 피를 흘리는 정도를 넘는 어마어마한 참극을 보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는 ‘태극기 세력’의 행태를 마냥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재판과정에도 뭔가 닮은 구석이 있는 듯하다. 교단측 변호인은 교주 아사하라에 대해선 “모두 제자들이 한 짓”이라며 무죄를, 교단 간부들에 대해선 “아사하라에 마인드컨트롤 당했다”며 감형을 주장했다. 결국 대부분 사형이 확정됐지만, 교단측은 툭하면 심리를 거부하며 공판자체를 뒤흔들었다.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법리 공방을 벌이기보다는 시간 끌기에 골몰하다 이마저 여의치 않자 재판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한 대통령측 변호인단의 막장 드라마가 연상된다.
물론 탄핵 반대세력의 일부 돌출된 행태를 옴진리교의 그것과 견주는 것은 지나치다. 다만, “목을 쳐야 한다”는 극단적 증오발언과 폭력화 양상마저 보이는 이들의 극단적 행동을 좌시해서는 곤란하다. 옴진리교 사건도 사전에 무수한 경고가 있었지만 쉬쉬하는 가운데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패색이 짙어지자 ‘내전’ ‘계엄령’ 운운하며 오로지 ‘박근혜 사수’를 외치는 집단의 광기화, 파쇼화를 경계하고 단속해야 하는 것이다.
보수언론들이 말하듯이 지금 한국은 정말 ‘내전’ 직전 상황인가. 겉으로 보면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긴장국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80% 안팎의 국민이 변함없이 탄핵을 지지하고 수백만의 촛불이 수개월간 광장을 밝혀왔다. 국론분열은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판을 뒤집어보려는 세력과 이에 편승한 일부 극단주의자들이다. ‘분열 공작’을 거부하는 단호한 집단지성으로 일그러진 세력의 마지막 몸부림을 통제해야 한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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