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창에 ‘대포폰 구입’이라는 키워드를 넣었다. ‘업무상 노출 NO/ 야간업소 대출 광고, 전단지 등(신분 노출을 하고 싶지 않은 분)/ 신용불량(통신불량) 분들’을 위해 전국 24시간 총알 배송이 가능하다는 광고가 떴다.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대포폰 업자는 명의자의 국적에 따라 유심 카드(USIM:휴대전화에 사용되는 IC 카드) 값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명의는 17만원, 내국인 명의는 20만원을 불렀다.
여기에 폴더폰 기계를 더하면 2만원, 스마트폰을 사용하려면 10만원 이상 추가 비용이 든다. 원하는 배송 지역을 말하니 3시간 안에 퀵으로 배달이 가능하다고 했다. 대포폰 문의 과정에서 신상을 묻지 않는 건 ‘상도의’였다. 대포폰 판매와 구매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1억원 이하 처벌을 받는다.
대포폰은 범죄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거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2014년 4월 청와대는 ‘3대 대포악(대포통장·대포차·대포폰)’ 근절을 위한 법무부·국세청·검찰 등 합동 회의를 주재했다. 범죄에 악용되는 대포폰을 뿌리 뽑겠다며 적극 나섰다. 합동 회의 두 달 전에는 미래창조과학부·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으로 ‘서민생활침해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대포폰 단속을 하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 ‘정부 부처 합동으로 3대 대포악 근절에 나섰다’ ‘대포통장·대포차·대포폰이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겠다’ ‘검경은 관련 범죄 단속을 강화하고, 적발 시에는 강력히 처벌하기로 했다’라는 보도가 나왔다.
지금도 대포폰 단속은 계속되고 있다. 법원도 대포폰 사용에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려고 대포폰을 사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아무개씨에게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 50부(부장 신광렬)는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대포폰 이용만으로도 범죄가 된다는 명시적인 판단을 처음으로 내렸다”라며 판결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 대포폰 근절 대책도 비선 실세 최순실 일가에게 통하지 않았다. 최씨 일가에게 대포폰 사용은 일상이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일을 준비하고 진행할 때뿐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최씨 일가는 대포폰을 즐겨 사용했다.
대포폰 색깔별로 전화 오는 사람 정해져 있어
청와대가 직접 나서 대포폰 근절에 앞장서던 2014년 11월, 최순실씨는 서울 강남의 ‘샘플실’에서 박근혜 대통령 의상을 살피며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이 건네준 폴더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그때 이영선 행정관의 손에는 또 다른 폴더폰이 있었다. 동영상이 찍혔던 이맘때 최순실씨의 집에 같이 산 적이 있는 한 측근의 증언이다.
“최순실씨가 대포폰으로 사용하는 폴더폰 두세 개를 보았다. 검정색·빨간색 등 색깔이 다른데, 색깔별로 전화 오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다. 색으로 구분하니까 전화기 화면을 보지 않고도 최순실씨는 누구한테 전화가 걸려왔는지 알았다. 2015년 3월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최순실씨가 조용히 하라고 소리친 다음에 한 폴더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건 이렇게 하시고 저건 저렇게 하시라’는 이야기를 하고 끊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해외 순방 중인 VIP(박근혜 대통령)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3월1일부터 3월8일까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중동 4개국을 공식 방문했다.
최순실씨만 대포폰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 최씨의 ‘비서실장’ 노릇을 한 최순득씨의 딸 장시호씨 또한 대포폰을 자주 썼다. 초기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동계영재센터) 이사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던 한 스포츠 인사는 <시사IN>과 만나 장씨에게 대포폰을 건네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시사IN> 제480호 ‘장시호의 기막힌 사기’ 기사 참조). 이 스포츠 인사의 추가 증언이다. “장시호도 자신이 원래 쓰던 휴대전화기 외에 흰색과 검은색 폴더폰을 썼다. 대포폰이라고 했다. 그 대포폰으로 이모(최순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 등과 통화하는 것을 내가 직접 보았다. 장시호는 전화기가 여러 개였고 수시로 바꿨다. 한 번은 들고 다닌 지 얼마 안 된 새 대포폰이 ‘뚫렸다’면서 서둘러 교체한 적도 있다. 내가 대포폰 사용을 꺼림칙해하자 명의를 빌려주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며 업무와 관련해서는 자기가 준 대포폰만 이용하라고 했다.”
장시호씨와 함께 살며 집안일을 살폈던 임 아무개씨 등이 대포폰 개설을 맡았다. 임씨는 주변에 명의를 잠시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고 다녔다고 한다. 최씨 일가는 자신들이 관여한 사업체 직원들에게도 보안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회사 명의의 휴대전화를 지급했다. 개인 명의 휴대전화를 삼가라고 한 것이다. 장시호씨의 회사 일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회사 명의의 휴대전화가 지급되었고, 그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공유한 다음 서로 돌려가며 썼다. 그래서 특정 시점에 누가 썼는지를 정확하게 알기는 쉽지 않다. 해당 폰이 압수수색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언론 취재 시작되자 조직적 증거인멸 나서
최순실·장시호씨 등이 대포폰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월1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안 의원은 폴더폰 5개를 옷 주머니에서 꺼내 장시호씨의 대포폰이라 주장하며 “모두 6개인데 나머지 1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줬다고 생각한다. (대포폰은) 국정 농단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최씨 일가의 대포폰 사용은 일상이자 습관이었다. 평소에도 최씨 일가는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다는 의미다. 그런 탓인지 매사에 흔적을 남기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 보안에 신경을 많이 썼다. 최순실·장시호씨와 함께 일을 했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최순실·장시호는 의심이 많았다. 공식 문건에 그들의 이름을 올리면 안 되었다. 업무를 지시한 손글씨 자료도 다 파쇄해야 했다. 직원들도 웬만해서는 서류상 등록하지 않았고 월급도 현금으로 줬다. 이메일도 회사 공식 이메일 딱 하나만 내부에서 사용하게 했다. 이메일 비밀번호도 보름 주기로 바꿨다. 핵심 자료는 최측근 한두 명만 보게 했다. 회사 바깥으로 자료가 나가는 일은 금지시켰다. 걸리면 해당 직원을 심하게 혼냈다. 그만큼 흔적이 남는 걸 극도로 경계했다.”
장씨의 한 측근은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나 차은택 감독이 강남의 최순실 카페로 불리는 테스타로싸를 수차례 오가며 회의를 함께 한다. 그런데도 사건 초기 둘 다 언론에 회장(최순실)을 모른다고 딱 잡아떼더라. 최씨 패밀리의 보안을 믿고 거짓말을 한 게 아니겠나. 나도 솔직히 최순실·장시호가 구속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수 있는 부분은 일부라고 봐서다”라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최순실·장시호씨는 조직적 증거인멸에 나섰다. 이메일을 폐쇄하고 문건을 파쇄했으며 사무실 집기를 치웠다.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을 기소하며 쓴 검찰 공소장에도 증거인멸 혐의가 나온다.
독일로 도주했던 최순실씨가 검찰의 압수수색 하루 전날 김영수 전 포레카 대표 등에게 전화해 “더블루케이에서 가져온 컴퓨터 5대를 모두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최씨의 지시대로 김 전 대표 등은 컴퓨터를 빼돌려 숨긴 뒤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모두 새로 포맷했다. 그것도 모자라 다시 망치로 내리쳐 부수었다. 핵심 증거가 사라졌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또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했다.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서 이 부회장의 휴대전화를 없애라고도 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전문 업자를 통해 폐기했다. 또 불법으로 대포폰을 만들었다.
공소장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안종범 전 수석과 정호성 전 비서관도 대포폰을 사용했다. 안 전 수석은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이 검찰에 출석하기 전, 대포폰을 이용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안전한 번호’라며 정 전 총장에게 접근해 검찰 조사에 대해 입을 맞추려고 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압수수색한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4대 중 2대도 대포폰이었다. 해당 대포폰에서 핵심 증거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 녹음이 나왔다.
최순실씨가 구속된 이후에도 증거인멸이 진행되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최씨의 개인 회사 더블루케이의 금고 등이 최순실씨의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 더운트로 옮겨지고 곧 이어 경기도의 한 창고에 보관되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뒤늦게 압수수색에 들어갔지만 주요 문서는 이미 다 파쇄된 상태였다.
이 외에도 최순실씨 일가 주변에서는 증거인멸에 관한 증언이 계속 나온다. 지금까지 드러난 범죄행위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최씨 일가 최측근으로 일을 하다 쫓겨난 한 인사는 이렇게 심경을 전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반드시 복수하는 최순실씨 일가의 성격을 알아서 입을 열기가 두렵다. 평소에도 조금만 사이가 틀어지면, 깡패를 풀어 주변까지 괴롭히는 사람들이다. 현재 검찰이 기소한 혐의 정도로는 몇 년 살다 나와서, 빼돌린 재산으로 잘살고 다시 사람들을 괴롭힐 것을 생각하니 너무 무섭다.”
여기에 폴더폰 기계를 더하면 2만원, 스마트폰을 사용하려면 10만원 이상 추가 비용이 든다. 원하는 배송 지역을 말하니 3시간 안에 퀵으로 배달이 가능하다고 했다. 대포폰 문의 과정에서 신상을 묻지 않는 건 ‘상도의’였다. 대포폰 판매와 구매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1억원 이하 처벌을 받는다.
ⓒ연합뉴스
11월22일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2012년 10월19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스마트폰을 거꾸로 든 채 한 유권자와 통화를 하고 있다. |
지금도 대포폰 단속은 계속되고 있다. 법원도 대포폰 사용에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려고 대포폰을 사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아무개씨에게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 50부(부장 신광렬)는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대포폰 이용만으로도 범죄가 된다는 명시적인 판단을 처음으로 내렸다”라며 판결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 대포폰 근절 대책도 비선 실세 최순실 일가에게 통하지 않았다. 최씨 일가에게 대포폰 사용은 일상이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일을 준비하고 진행할 때뿐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최씨 일가는 대포폰을 즐겨 사용했다.
대포폰 색깔별로 전화 오는 사람 정해져 있어
청와대가 직접 나서 대포폰 근절에 앞장서던 2014년 11월, 최순실씨는 서울 강남의 ‘샘플실’에서 박근혜 대통령 의상을 살피며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이 건네준 폴더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그때 이영선 행정관의 손에는 또 다른 폴더폰이 있었다. 동영상이 찍혔던 이맘때 최순실씨의 집에 같이 산 적이 있는 한 측근의 증언이다.
ⓒ연합뉴스
11월11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긴급현안질문에서 장시호씨가 사용한 대포폰이라며 들어 보이고 있다. |
“최순실씨가 대포폰으로 사용하는 폴더폰 두세 개를 보았다. 검정색·빨간색 등 색깔이 다른데, 색깔별로 전화 오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다. 색으로 구분하니까 전화기 화면을 보지 않고도 최순실씨는 누구한테 전화가 걸려왔는지 알았다. 2015년 3월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최순실씨가 조용히 하라고 소리친 다음에 한 폴더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건 이렇게 하시고 저건 저렇게 하시라’는 이야기를 하고 끊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해외 순방 중인 VIP(박근혜 대통령)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3월1일부터 3월8일까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중동 4개국을 공식 방문했다.
최순실씨만 대포폰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 최씨의 ‘비서실장’ 노릇을 한 최순득씨의 딸 장시호씨 또한 대포폰을 자주 썼다. 초기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동계영재센터) 이사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던 한 스포츠 인사는 <시사IN>과 만나 장씨에게 대포폰을 건네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시사IN> 제480호 ‘장시호의 기막힌 사기’ 기사 참조). 이 스포츠 인사의 추가 증언이다. “장시호도 자신이 원래 쓰던 휴대전화기 외에 흰색과 검은색 폴더폰을 썼다. 대포폰이라고 했다. 그 대포폰으로 이모(최순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 등과 통화하는 것을 내가 직접 보았다. 장시호는 전화기가 여러 개였고 수시로 바꿨다. 한 번은 들고 다닌 지 얼마 안 된 새 대포폰이 ‘뚫렸다’면서 서둘러 교체한 적도 있다. 내가 대포폰 사용을 꺼림칙해하자 명의를 빌려주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며 업무와 관련해서는 자기가 준 대포폰만 이용하라고 했다.”
장시호씨와 함께 살며 집안일을 살폈던 임 아무개씨 등이 대포폰 개설을 맡았다. 임씨는 주변에 명의를 잠시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고 다녔다고 한다. 최씨 일가는 자신들이 관여한 사업체 직원들에게도 보안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회사 명의의 휴대전화를 지급했다. 개인 명의 휴대전화를 삼가라고 한 것이다. 장시호씨의 회사 일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회사 명의의 휴대전화가 지급되었고, 그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공유한 다음 서로 돌려가며 썼다. 그래서 특정 시점에 누가 썼는지를 정확하게 알기는 쉽지 않다. 해당 폰이 압수수색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언론 취재 시작되자 조직적 증거인멸 나서
최순실·장시호씨 등이 대포폰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월1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안 의원은 폴더폰 5개를 옷 주머니에서 꺼내 장시호씨의 대포폰이라 주장하며 “모두 6개인데 나머지 1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줬다고 생각한다. (대포폰은) 국정 농단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최씨 일가의 대포폰 사용은 일상이자 습관이었다. 평소에도 최씨 일가는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다는 의미다. 그런 탓인지 매사에 흔적을 남기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 보안에 신경을 많이 썼다. 최순실·장시호씨와 함께 일을 했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최순실·장시호는 의심이 많았다. 공식 문건에 그들의 이름을 올리면 안 되었다. 업무를 지시한 손글씨 자료도 다 파쇄해야 했다. 직원들도 웬만해서는 서류상 등록하지 않았고 월급도 현금으로 줬다. 이메일도 회사 공식 이메일 딱 하나만 내부에서 사용하게 했다. 이메일 비밀번호도 보름 주기로 바꿨다. 핵심 자료는 최측근 한두 명만 보게 했다. 회사 바깥으로 자료가 나가는 일은 금지시켰다. 걸리면 해당 직원을 심하게 혼냈다. 그만큼 흔적이 남는 걸 극도로 경계했다.”
ⓒ연합뉴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장시호씨(오른쪽부터)는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
장씨의 한 측근은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나 차은택 감독이 강남의 최순실 카페로 불리는 테스타로싸를 수차례 오가며 회의를 함께 한다. 그런데도 사건 초기 둘 다 언론에 회장(최순실)을 모른다고 딱 잡아떼더라. 최씨 패밀리의 보안을 믿고 거짓말을 한 게 아니겠나. 나도 솔직히 최순실·장시호가 구속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수 있는 부분은 일부라고 봐서다”라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최순실·장시호씨는 조직적 증거인멸에 나섰다. 이메일을 폐쇄하고 문건을 파쇄했으며 사무실 집기를 치웠다.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을 기소하며 쓴 검찰 공소장에도 증거인멸 혐의가 나온다.
독일로 도주했던 최순실씨가 검찰의 압수수색 하루 전날 김영수 전 포레카 대표 등에게 전화해 “더블루케이에서 가져온 컴퓨터 5대를 모두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최씨의 지시대로 김 전 대표 등은 컴퓨터를 빼돌려 숨긴 뒤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모두 새로 포맷했다. 그것도 모자라 다시 망치로 내리쳐 부수었다. 핵심 증거가 사라졌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또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했다.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서 이 부회장의 휴대전화를 없애라고도 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전문 업자를 통해 폐기했다. 또 불법으로 대포폰을 만들었다.
공소장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안종범 전 수석과 정호성 전 비서관도 대포폰을 사용했다. 안 전 수석은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이 검찰에 출석하기 전, 대포폰을 이용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안전한 번호’라며 정 전 총장에게 접근해 검찰 조사에 대해 입을 맞추려고 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압수수색한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4대 중 2대도 대포폰이었다. 해당 대포폰에서 핵심 증거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 녹음이 나왔다.
최순실씨가 구속된 이후에도 증거인멸이 진행되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최씨의 개인 회사 더블루케이의 금고 등이 최순실씨의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 더운트로 옮겨지고 곧 이어 경기도의 한 창고에 보관되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뒤늦게 압수수색에 들어갔지만 주요 문서는 이미 다 파쇄된 상태였다.
이 외에도 최순실씨 일가 주변에서는 증거인멸에 관한 증언이 계속 나온다. 지금까지 드러난 범죄행위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최씨 일가 최측근으로 일을 하다 쫓겨난 한 인사는 이렇게 심경을 전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반드시 복수하는 최순실씨 일가의 성격을 알아서 입을 열기가 두렵다. 평소에도 조금만 사이가 틀어지면, 깡패를 풀어 주변까지 괴롭히는 사람들이다. 현재 검찰이 기소한 혐의 정도로는 몇 년 살다 나와서, 빼돌린 재산으로 잘살고 다시 사람들을 괴롭힐 것을 생각하니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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