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부작용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함부로 얘기할 수 없지만, 필자는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간암에서 벗어난 후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데 문재인 대표 때문에 간암이 재발할 것 같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힘 한 번 써보지고 못하고 패한 것은 '배수의 진'을 편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퇴로를 두지 않은 것은 '사즉생 생즉사'라는 옥쇄작전이 성공했을 때만 의미가 있지, 실패했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불러옵니다.
자신이 한 말을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한ㅡ지킬 수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ㅡ문재인 대표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과반수를 막지 못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비주류의 탈당 퍼레이드와 국민의당 창당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입당 10맘 명을 돌파하고 다양한 인재들을 영입함으로써 더불어민주당의 체질을 바꾸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판단 아래, 더 큰 통합을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한 것까지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폐당의 위기를 벗아나 모든 면에서 유권자들에게 정권 탈환의 꿈을 다시 지피는데 성공했다고 해서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과반수 확보를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온라인입당이 30~40만 명에 이르고, 이들이 모두가 각각의 선거구에서 투표하지 않은 한 새누리당의 과반수 붕괴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투표율이 50%대에 머무르는 총선에서 자금과 조직동원력(박근혜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과 새누리당 특유의 온갖 불법·부정은 차치하더라도)의 압도적인 우위를 지닌 새누리당을 이긴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입니다.
앞으로 몇 개월이 남았고, 인재영입이 계속될 것이고, 김종인 체제의 선대위가 놀라울 능력을 보여준다고 해서 퇴로를 불태워 버린 문재인 대표의 발언은 필자로 하여금 간암을 재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문 대표가 옥쇄를 각오하고 배수의 진을 편 것은 그만큼 절박함의 표현이고, 가능성의 표출일 수도 있습니다.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기에 문 대표의 배수의 진은 옥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필자를 두렵게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가치를 공유하고 비판과 연대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친노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필자로서는,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한 상황에서 문재인마저 현실정치에서 잃어버린다면 다음이 없다는 점에서 막막하기만 합니다. 노무현과 김대중처럼 문재인 또한 다시 나오기 힘든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표의 배수의 진은 총선 결과에 따라 그의 영원한 퇴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정말로 많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세월호유족을 대표하는 분들이 단언했던 것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추호의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으면서도 그것을 가지고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문 대표를 흔들었던 박영선이 배부른 돼지로 변한 JTBC 뉴스룸에 나와 '문재인의 사퇴가 늦었다'라고 말한 것에서 보듯 문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정치가 지긋지긋했을 것입니다.
박영선은 당의 잔류를 선언한 시점에서조차 호남민심 악화를 빌미(지지율의 변화에서 보듯 명백한 사실 왜곡이지만)로 '문재인 사퇴가 늦었다'며 총선에서 패했을 경우, 문재인 대표와 친노 패권주의를 면피책으로 남겨둔 추악한 정치공자적 발언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표가 사퇴한 이후, 그리고 자신이 당에 잔류하기로 한 이후에 잘해서 총선에서 승리하면 문 대표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말은 명백히 모순이어서 박영선의 승리의 열매를 문 대표에게 줄 리는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이에 화답하는 손석희야 안철수를 깨놓고 밀어줬기 때문에, 그럼에도 망가질대로 망가진 방송생태계 덕분에 거의 우상화된 수준에 올라 있기 때문에 (박근혜 비판의 사라졌고, 선정적인 사건사고 보도가 급증했으며, 연성화된 내용들이 곳곳에 배치됐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볼 것이 단 하나도 없지만, 박영선처럼 총선 패배 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면피책을 마련해두지 않은 문재인의 배수의 진이 미련스럽기까지 하다.
문재인의 그릇에 한참을 못미치는 필자의 협량함이,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마저 현실정치의 장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정치는 생물이라 하고, 이철희의 말처럼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 없다고 해도 대표직 사퇴를 선언하고 시점마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사퇴가 너무 늦었다'고 비판하니, 몰락 직전의 더불어민주당을 되살려낸 문 대표가 총선에서 패하면 더 이상 정치판에 연연할 이유란 없다.
돌아갈 퇴로마저 불태워버리는 것은 언제나 타의(친구이자 동반자였던 노무현의 정치참여 부탁도 포함)에 의해 현실정치에 뛰어들었지만, 모든 이가 망가져 임플란트로 대체해야 했을 만큼 현실정치에 힘들어했던 문재인의 마음고생이 극한에 이른 느낌입니다. 비판이 필요할 때면 노무현과 문재인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밀었던 필자가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 수 없다면'이라는 글을 썼을 때보다 더욱 불길한 느낌입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 국정원, 정치검찰이 일치단결해서 대선 불법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열하고 추잡한 정치공작에 맞서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사실이라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며 정면돌파를 선언했을 때와 이번의 선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그때는 문재인이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배수의 진을 쳐도 됐고, 그것 때문에 통쾌한 역전을 이루어냈지만,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과반수를 저지하겠다는 것은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을지 몰라도, 실현가능성이 낮은 열망의 차원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정권을 탈환하는 것(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모 아니면 도'를 찾는 게임이 아닙니다. 자유방임을 외치는 신자유주의 우파(비즈니스 우파)나, 종교적 무정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는 필요악이어서 차악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최선의 정부가 현실에서는 구축될 수 없기 때문에 정치는 최선에 가장 근접한 차선의 정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말과 행위, 책임의 집합입니다.
문재인 대표의 심정과 간절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끊임없이 차선을 찾아 최선을 되뇌이는 정치에서 퇴로를 불태우면 그 다음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 같은 글쟁이들이야 '모 아니면 도'를 외칠 수 있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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