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3일 일본의 해상자위대와 한국 해군은 아프리카 동부의 소말리아 아덴 만에서 최초의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12일 산케이신문 보도에 의해 드러났는데, 이 신문은 “한국 국내엔 자위대에 대한 ‘알레르기’가 뿌리깊다”면서 한국이 일본 측에 훈련 사실을 공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군국주의에 의한 침략과 식민지배의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이 훈련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한국정부가 승인하고 사실상 일본의 군사전략에 복속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군사적 목적에 의한 양국간의 합동훈련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다. 과거엔 미일(美日) 연합함대의 전투력 증강을 위한 미일 합동군사훈련 만이 실시되어 왔고,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인 2008년부터는 한미일의 연합해상훈련이 비공개로 시작되었다. 한일 양국의 경우 99년부터 격년제로 수색구조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는 인도주의적 협력 차원의 해상구조구난 훈련에 가깝다.
일본 해군에 숟가락 얹고 중국과 대치하는 꼴
▲ 한국 해군의 대조영함이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열리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관함식 사전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출항 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
아덴만은 호르무즈 해협과 함께 중미간 대결 구도의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곳이다. 일본은 2011년 아덴만의 지부티에 첫 해외 군사기지를 설치해 자위대 호위함과 초계기 등을 운용하고 있다. 미국과 함께 오랫동안 해상교전능력을 발달시켜 온 일본의 첫 해외기지라는 점에서도 아덴만은 국제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곳이다. 한일간 공동군사훈련은 중미간의 대립에서 한국이 명백하게 중국과 선을 그었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기존 일본 자위대의 활동영역을 일본 인근으로 한정했던 1997년 개정 미일방위협력지침은, 지난해 다시 개정이 되면서 ‘주변사태’를 없애고 미국에 대한 지원 범위 제한도 사라져 사실상 평화헌법으로 제약됐던 빗장이 완전히 풀린 상황이다. 일본 국내적으로도 2014년 집단자위권 행사가 참의원을 통과하면서 평화헌법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이렇게 볼 때 한국과 일본의 공동 군사훈련은, 일본 군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배의 피해가 가장 컸던 한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용인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번 훈련은 한국의 해군활동이 일본의 군사작전체계에 사실상 복속되어 가는 과정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해군력은 평화헌법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1978년 미일방위협력지침 제정 이후 끊임없이 발달해 세계2위의 전쟁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3각 동맹의 성격상 한국은 미일 연합함대의 작전에 동원되거나, 일본의 군사작전체계에 편입되는 성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한일 양국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왔으나, 2012년 6월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이 한국에서 국민 여론에 밀려 취소되면서 소강국면을 맞았었다.
앞서 일본에선 2007년말 한국 대선에서 이명박 당선인이 등장한 이후 “한일관계의 신시대”에 대한 낙관이 팽배했고, 이 근저엔 한일간 군사협력을 통해 자위대의 활동무대를 세계로 넓힐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있었다. 이명박 당선인과 모리 전 총리와의 교환 방문은 사세 겐니치로 차관(당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에 의해 “최고의 친선 회동과 석찬”이었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양국은 이후 2009년 4월 이상희 국방장관과 하마다 야스카즈 일본 방위상 사이에 ‘한일 국방교류에 관한 의향서’를 채택하고, 2009년 7월엔 한국 공군과 일본 항공자위대가 상호협력방안을 협의, 2011년 1월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을 위한 구체적 논의를 합의하는 등 군사협력을 강화해왔다. 그리고 2012년 이명박 정부는 밀실에서‘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을 추진하다가 결국 무산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일본 자위대와의 군사협력이 더 공공연하게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정호섭 해군 참모총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대북 억제 차원에서 키리졸브 훈련에 일본도 참여해 연합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한달 뒤인 10월엔 황교안 국무총리가 “부득이한 경우 우리나라(정부)가 동의한다면 (일본 자위대가)입국할 수 있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2013년 말엔 남수단에서 재건 업무를 하고 있는 한빛부대가 일본 육상자위대로부터 실탄 1만발을 지원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여론이 비등하자 실탄을 돌려준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한국 해군은 4천500톤급 구축함인 대조영함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열린 해상자위대의 국제관함식에 참가시켜 논란이 일었다.
“위안부라는 걸림돌 치운 다음 수순이 군사협력”
이번 아덴만에서의 한일 공동군사훈련과 관련해 군사안보전문가인 김종대 전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은 “작년 10월1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움직임에 한마디 하라는 압박이 있었고, 11월 아세안확대국방장관회담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이 중국에 대고 자제하라는 발언을 했던 연장선이라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전략적 관심은 해양으로 팽창하는 중국을 차단하는데 있고, 이를 위해 한미일의군사결속을 매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며 “그러니 위안부 문제라는 걸림돌부터 치우고 다음 수순으로 군사공조·협력을 하겠다는 로드맵이 가시화되면서 위안부 합의가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종대 편집장은 아덴만에서의 한일 양국의 공동훈련에 대해 “이는 일본 자위대의 세계 진출을 승인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흡수된 것”이라며 “한미일의 군사 공조 움직임에 한발, 두발 빠져서 이제 못빠져나오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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