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다. 분노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은 인간의 표정과 몸짓, 생리적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표정은 일그러지고 눈썹 근육은 위축된다. 눈을 부라리며 분노의 대상을 응시하고, 근육이 긴장하면서 권투 선수의 기본자세와 같은 몸짓이 생겨난다. 사람이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언제든 주먹을 내지를 수 있도록 손으로 향하는 혈류량도 늘어난다. 화가 나면,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외부 자극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내뱉는 언어도 과장되고 공격적으로 된다.
분노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과 도발에서부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회적 부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분노는 이런 외부 자극에 대한 인간의 방어수단이다. 우리의 몸이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도록 만들어 준다. 위협으로 인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심리적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런 분노 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는 없다. 격렬한 분노 상태가 계속되면, 몸이 버텨내지를 못한다. 탈진해서 일순간 맥없이 풀어져 버리거나, 자기 분노를 스스로 못 이겨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심경은 복잡하다. 부끄러움, 허탈감, 배신감, 나라가 사달이 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 대통령의 태반주사 의혹에 이르러서는 역겨움까지 느끼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적인 감정이 분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 그리고 그들의 수하들이 벌인 온갖 일은 우리 사회의 근간과 상식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국민의 분노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감정의 발로이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원천이 뿌리 뽑혀야 분노가 풀어질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한 친박 국회의원의 말처럼 청와대와 수구세력은 버티기 모드로 들어갔다. 우리도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장기전을 준비하는 첫번째 마음가짐은 차갑게 분노해야 한다는 것이다. 뜨거운 분노는 오래갈 수 없다. 흥분하면 실수를 하게 된다. 극우단체를 동원한 물리적 충돌의 덫에 걸려들 수도 있다. 어차피 오래갈 일이라면 차분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 우리 중의 누군가가 지나치게 흥분하면 서로 자제시켜야 한다. 극우단체들이 촛불집회 옆에서 난장판을 부려도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사나?’라며 구경하면 될 일이다. 분노라는 감정적 에너지를 소비할 하등의 가치가 없다.
두번째 마음가짐은 딴 데 정신이 팔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작정치와 여론조작은 저들의 전매특허이다. 해운대 엘시티의 유력 정치인 연루설, 조직적인 실시간 검색순위 조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작과 조작은 이미 시작되었다. 유명 연예인 스캔들이 터질 수 있고, 간첩단 사건이나 남북 간 무력충돌과 같은 북풍이 재현될 수도 있다. 개헌 카드를 되살려 국면 전환을 시도할 수도 있다. 국민의 눈과 귀를 돌릴 수 있다면 저들은 어떤 일이든 능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눈과 귀를 떼지 말아야 한다.
세번째 마음가짐은 분열의 언어를 경계하는 것이다. 분열은 청와대와 수구세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조장될 수 있다. 평범한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유는 특정 세력, 특정 정치인, 특정 정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런 마당에 각 세력, 정치인, 정당, 그리고 이들의 지지자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내부에 총질하고 서로를 흠잡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촛불의 힘을 키우기 위한 경쟁과 비판은 칭찬받아야 한다. 그러나 각자의 힘을 키우기 위한 갈등과 비난에 대해서는 국민이 가차 없이 레드카드를 들고 호루라기를 불어야 한다.
지금도 기억나는 군 훈련소 시절의 교관이 있다. 다른 교관들과는 달리 그는 화를 내거나 고함을 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는 항상 웃는 표정과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가 훈련을 제대로 할 때까지 한없이 우리를 뺑뺑이 돌렸다. 말 안 듣기로 소문난 군의관 훈련생들이었지만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화를 내거나 고함치는 교관들은 그때만 잘 피해서 넘기면 되지만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 교관의 별명이 ‘무한반복’이었다.
마음가짐만 잘하면 시간은 우리 편이다. 빨리 결론을 내 달라고 정치권을 독촉할 이유도 없다. 성급한 결론은 청와대와 수구세력을 이롭게 할 공산이 크다. 우리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국민의 권리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자. 지치지만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답답한 이는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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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201606001&code=990308&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top2#csidxb176ddd02af97fe83547e004eb618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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