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글:손화신, 사진:남소연, 편집:곽우신]
"쪽팔립니다. 다른 나라 언론에서 (우리나라 국정농단을) 조롱 삼아 이야기하는 보도를 접했는데…. 쪽팔려서 못 살겠어요."
가수 이승환의 거침없는 노래와 거침없는 발언은 광화문에 모인 답답한 마음들을 뻥 뚫어주었다. 이승환 스타일의 위로였다. 눈치 보지 않고 앞장서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는 이승환은 이날 '록 스피릿'을 장착하고 무대의 마지막 순서를 채웠다. 25일 오후 7시 30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광장 촛불 콘서트 물러나SHOW'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물러나SHOW'는 계속된다.
▲ 이승환 "하야하라 박근혜" 가수 이승환이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광장촛불 콘서트 '물러나 SHOW'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무대에 오른 그는 '덩크슛'의 가사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기야"를 "주문을 외워보자. 하야하라 박근혜"로 개사해 불러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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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음악으로 시국에 대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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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온도가 영하를 맴도는 추운 날씨의 밤. 어김없이 모인 광장의 많은 사람. 이들 앞에 전투복 스타일의 올 블랙 의상을 입고 나타난 이승환은 전투적 노래 6곡을 불렀다. 그는 "이 시국에 '사랑인가요' 불러서 뭐하겠느냐"며 "이럴 땐 '하야하거라! 내려오거라!' 외치면서 불끈불끈 힘 나는 노래를 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슈퍼히어로'를 시작으로 '물어본다', '덩크슛', '단독전쟁', '개미혁명', '소통의 오류'를 유독 전투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창법으로 불렀다. 강렬한 록 사운드, 그 자체가 '발언'이었다.
그는 다음 노래로 넘어갈 때마다 윗옷을 하나씩 벗었다. 가죽 재킷을 벗었고 다음엔 티셔츠를 벗었다. 결국, 한겨울에 반팔티 하나를 입고 뜨겁게 노래했다. 군복 느낌의 독특한 바지에 눈길이 갔다. 유심히 봤더니 '이게 나라냐'고 적힌 천이 한 땀 한 땀 바지에 꿰매져 있었다. 단독콘서트도 아닌 이 무대를 위해 의상까지 맞춤으로 준비해온 이승환, 참 대단하다. '단독전쟁'을 부를 땐 모자를 쓰고 부르는 등 곡마다 다른 의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노력에 그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덩크슛'을 부를 땐 이제 모두가 아는 그 주문을 외웠다. "주문을 외워보자~ 하야하라 박근혜! 하야하라 박근혜!" 광장은 한목소리가 됐다. 입담 좋은 이승환이 이날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노래로 이야기했다. 노래 안의 가사가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가 부른 '개미혁명'에는 옳은 건 옳다고 하고 싫은 건 싫다고 뱉어버리라는 노랫말이 지금을 위해 지어진 노래처럼 여겨졌다.
"많이 오셨네요. 정말. 내일을 위한 조촐한 전야제일 줄 알았는데 성대한 전야제로 만들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말을 해오지만…. 말을 해봤자 알아듣지 못하고. 그러니 말을 해봤자 무슨 소용 있나 싶고…. 그분께 정말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를 마지막 곡으로 준비했어요. '소통의 오류'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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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대화 속에 움터가는 부지불식 소통의 오류 / 하늘과 닿으려던 오만함의 바벨탑 속 불통의 원류."
반소매 티만 입은 이승환은 손가락으로 '그분'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입 모양만으로 '물러나쇼'를 외쳤다. 소리로 담은 외침도, 소리 없는 외침도 모두 큰 소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끝으로 이승환은 "미친 세상이니까…. 우리가 만드는 (영화) '매드맥스 콘셉트'를 기대해본다"며 부조리한 세상에 맞설 것을 촉구했다.
광장을 채우는 노래, 이것이 문화의 힘
▲ 하야 촉구하는 강산에 가수 강산에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광장촛불 콘서트 '물러나 SHOW'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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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강산에 역시 자신만의 스타일로 하야를 촉구했다. 노래에 모든 말을 담았다. "내가 이러려고 음악한 거 아닌데. 진짜 이러려고 음악한 거 아닌데. 내가 이러려고 태어난 것 아닌데. 진짜 이러려고 태어난 것 아닌데"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와 가사로 목소리를 모았다. 재치 있는 가사도 일품이었다.
"순실씨 뭐합니까. 뭐라꼬요. 순실씨 진짭니까? 맞습니까? 순실씨 미친 거 아닙니까. 박근혜씨 어디에요. 뭐라꼬요. 진잡니까? 맞습니까? 아이고야 배신. 빨리 내려오이소."
다음곡으로 부른 '와그라노'는 마치 이 시국을 보고나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처럼 통쾌하게 들어맞았다. "와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니 우짤라고 그라노. 니 단디해라. 뭐라 케쌓노." 그가 부른 다른 노래들도 가사에 호소력이 있었다.
"바로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이 촌스러운 잠에서 깨어나고 싶어. 일어나고 싶어. 깨어나. 일어나."
▲ 단편선과 선원들 '물러나 SHOW' 단편선과 선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광장촛불 콘서트 '물러나 SHOW'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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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빅버튼 '물러나 SHOW' 해리빅버튼이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광장촛불 콘서트 '물러나 SHOW'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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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 콘서트 무대 오른 권나무 가수 권나무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광장촛불 콘서트 '물러나 SHOW'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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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도 문화다. '박근혜 퇴진 광장 촛불 콘서트 물러나SHOW'는 문화로서의 집회였다. 이날 무대에 선 가수들과 객석의 시민들은 정부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로써 말했고, 노래는 어떤 언어보다 단단하게 이들의 마음을 묶어주었다. 이날 이승환 밴드와 강산에 외에도 단편선과 선원들, 해리빅버튼, 권나무가 무대에 올라 "박근혜 하야"를 말보다 강한 노래로 말했다. 사회는 소리꾼 최용석이었다.
이날 광장에는 '노래'가 있었다. 예술 중에 가장 직관적인 것이 음악이고 음악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다. 이날 콘서트가 정말 그랬다. 박근혜 퇴진을 염원하는 시민들은 이날 오직 노래로만 말했다. 가장 직관적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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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 콘서트, 환호하는 시민들 가수 이승환이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광장촛불 콘서트 '물러나 SHOW'에서 공연을 선보이자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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