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방송 화면 캡쳐) |
'현대사의 비극' 김재규가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22일 현재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김재규’가 급부상한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영욕의 과거 이력이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1926년 3월 6일에 태어난 김재규(金載圭)는 1980년 5월 24일에 생을 마감한 군인이자 공무원으로, 건설부 장관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에 서울 궁정동의 중앙정보부 안전가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권총으로 사살한 혐의로 구속됐으며, 김재규는 재판 내내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고 계획적인 혁명이라고 주장해 사회적 핫이슈에 등극한 바 있다.
특히, 김재규는 1심 최후변론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한편, 김재규는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서울구치소(지금의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사형돼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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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kkm1222@gvalle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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