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기업들 세무조사ㆍ인허가 등
불이익 우려해 돈 내” 판단
광고 발주ㆍ펜싱팀 창단 요구 등
강요죄 여부도 법정 공방 예상
변호인측, 재단 설립은 국정 수행
기업들 자발적 자금 출연 주장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이 다음달 13일로 정해졌다고 법원이 22일 밝혔다.
이들의 공소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주범으로 적시된 만큼 이들의 공판은 박 대통령의 혐의를 판단할 청사진이 된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변호인들은 벌써부터 공소사실을 강하게 반박하고 나서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에 대한 출연금 강제 모금을 놓고 공무원의 권한을 남용한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느냐 등이 쟁점이 된다.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결과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KT 인사 개입 등도 ‘공무원 권한’ 논란
검찰은 박 대통령이 최씨, 안 전 수석과 공모해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출연금을 내도록 압박한 것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 혐의를 적용했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기업으로 하여금 낼 의무가 없는 출연금을 내도록 했다는 게 직권남용이다. 하지만 기금을 출연토록 한 것이 공무원의 권한에 해당하느냐는 반론이 있다. 한 중견 법조인은 “피고인이 권한을 남용했다고 판단하기에 앞서 남용한 직무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따져야 하는데 이것부터 추상적이다”며 “직권남용보다 더 명확하고 뚜렷한 혐의가 있으면 다른 혐의로 기소하는 게 보편적이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안 전 수석과 최씨가 KT 인사에 개입하고, 최씨 측의 광고기획사인 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일감을 주도록 강요한 것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는 20일 입장자료에서 “민간기업의 직원 채용이나 광고 등 계약 체결의 영업활동은 공무원의 직무 범위에 속할 수 없어 판례상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직무범위가 특정되고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한 증거가 있다면 직권남용이 충분히 인정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검찰이 최씨 등의 공소장에서 대통령의 직무범위를 3분의 2쪽에 걸쳐 세세하게 적은 것이 바로 직무 범위를 특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박 대통령은 국가원수 및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기업활동 및 국민생활에 관한 정책, 각종 재정, 경제 정책의 수립ㆍ시행을 최종 결정할 권한이 있다”며 “이와 관련해 행정 각부의 장들에게 직ㆍ간접적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각종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체들의 활동에 직무상 또는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명시했다. 즉 대통령이 직무상 실질적으로 기업 활동에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기부금 출연 강요도 당연히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는 논리다.
학력 위조와 미술관 공금 횡령 혐의로 2008년 재판에 넘겨진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사건에서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해 직권남용죄가 인정됐다. 변 전 실장은 2008년 신씨를 교수로 채용한 동국대 이사장 영배스님이 주지로 있던 흥덕사에 특별교부세 10억원을 지원하도록 행정자치부와 울주군에 지시한 혐의를 받았는데, 이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재판부 판단에 따라 유죄가 인정됐다. 그러나 이 판례에서는 행자부에 특별교부세를 지원하라는 지시가 변 전 실장의 직무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높기 때문에 재단 출연금 등을 모금하는 것과 같이 볼 수 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불이익 두려워 냈다면 강요? 자발적?
직권남용과 함께 적용된 강요 혐의를 놓고도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최씨, 안 전 수석과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에 광고 발주, 롯데그룹에 70억원 추가 지원, 포스코그룹에 펜싱팀 창단, KT에 광고 발주 등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요 혐의는 일방이 시기나 기간, 구체적인 내용 등을 정한 뒤 다른 대안 없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할 때 인정된다. 특정 행위를 스스로 선택해 자발적으로 했다면 인정되기 어렵다. 유영하 변호사가 “강요죄가 성립하려면 폭행 또는 협박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협박을 했는지 공소장에 기재돼 있지 않다”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검찰은 기업들이 이런 요구에 불응하면 세무조사를 당하거나 각종 인ㆍ허가에서 어려움을 겪게 돼 기업활동 전반에 직ㆍ간접적인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출연금 납부 등에 응했다고 보고 있다. 결국 검찰이 피해자로 간주한 기업인들의 법정 진술이 유ㆍ무죄를 가를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한 법조인은 “직권남용이나 강요와 같은 혐의는 유ㆍ무죄 판단이 49 대 51로 애매한 때가 많다”면서 “광고대행사를 선정할 때 업체의 영업 실적 등을 검토했는지, 회의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투명하게 결정했는지 등을 따져봐야 강요죄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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