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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ugust 12, 2011

세계 경제 대지진, 진원지는 '1997년 한국'이었다!

내가 아는 그 라잔 맞아?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이라는 경제학자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도인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아성인 미국 시카고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금융 경제학을 가르친다. 2003년부터 2006년 사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했으며, 2003년에는 미국금융협회가 40세 이하 금융 경제학자 중 최고의 석학에게 수여하는 피셔 블랙 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내가 라구람 라잔을 알게 된 것은 1997~8년의 외환 금융 위기 때문이었다. 한국인의 삶을 망가뜨린 외환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당시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금융 시장에 대한 지나친 국가 개입(즉 이른바 '박정희 체제')과 영미식 자본 시장의 미발달을 지적했었다. 앞장서서 그런 주장을 했던 사람이 바로 라잔이었다.

한국에서도 1998년 이후의 '시장 개혁'(특히 금융 개혁 및 재벌 개혁) 과정에서 가장 '뜬' 학자들이 바로 재무(금융)를 전공한 경영학 교수들이다. 이들 경영학 교수들은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 양쪽을 넘나들면서 IMF, 미국 재무부, 월스트리트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리고 라잔은 바로 이런 재무(금융) 분야의 경영학 및 경제학 교수에게서 존경을 받고 있는 저명한 학자이다.

내가 처음 <폴트 라인>(송희령·김민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을 접했을 때의 첫 생각은 "설마 내가 아는 그 라잔이 아니겠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세상에, 바로 그 라잔이었다!

경제학 책이 아름답다?

▲ <폴트 라인>(라구람 라잔 지음, 송희령·김민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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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금융 또는 재무 전공자 사이에서나 이름이 언급되던, 똑똑한 하지만 한계가 명백한 경제학자로 여겨지던 라잔은 이 책 <폴트 라인>으로 일거에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그를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래 영향력 있는 여러 경제학자 중에서 최고로 꼽았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보수주의 전통으로 유명한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칭찬한 책이니 별거 있겠어, 하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books'가 내게 서평을 청탁했음에도, 석 달 동안 뭉그적거린 이유도 이런 선입견 탓이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정독하니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제학 책이라니!

라잔이 취하는 중도적 입장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이 책은 그가 사물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열린 마음을 가진 양심적 지식인임을 보여준다. 나는 마음먹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라잔의 글과 그것에 투영된 사고방식에 매혹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금융 경제학자의 글이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것과 달리, 이 책은 풍부한 지식을 담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하다.

이 책은 매혹적이다.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내용과 표현 둘 다에서 그렇게 느꼈다. 라잔보다 먼저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케네스 로고프도 이 책을 "아름답다"고 칭찬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공감한다.

라잔 : 로고프, 루비니, 쉴러를 뛰어넘다

<폴트 라인>의 주된 내용은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 위기가 그리고 최근 제2차 세계 경제 위기로 재연된 전 세계적 금융 위기가 어떠한 경제적 맥락에서, 라잔의 표현을 따르자면, 어떠한 지진 유발 단층선(폴트 라인)에서 발생했는지 상세하게 밝히는 것이다.

물론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분석하는 책은 이미 많이 출판되었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은 이미 국내에도 소개된 하버드 대학 교수 케네스 로고프의 <이번엔 다르다>(최재형·박영란 옮김, 다른세상 펴냄)와 뉴욕 주립 대학 누리엘 루비니의 <위기 경제학>(허익준 옮김, 청림출판 펴냄), 그리고 예일 대학 로버트 쉴러의 <버블 경제학>(정준희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정도다.

루비니는 이미 2006년부터 미국 주택 금융의 붕괴로 시작할 금융 위기를 경고했으며 그의 예측은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로고프는 이번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과거의 수많은 금융 위기와 별로 다르지 않은-과도한 차입(레버리지)에 따른 부채의 누적을 꼽았다. 국가건 개인이건, 기업이건 은행이건 관계없이 빚이 늘어나면 금융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쉴러도 이들과 대동소이하다.

이렇듯 루비니, 로고프, 쉴러는 모두 2008년 이래의 세계 금융 위기를 주로 금융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라잔은 다르다. 물론 그 역시 미국 발 금융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과도한 주택 가격과 주택 담보 대출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는 루비니, 로고프, 쉴러와 다르게 훨씬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 그는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미국의 주택 시장에서 왜 버블이 형성되었고 붕괴했는가? 그리고 왜 과도하게 외부 자금이 유입되었는가?

미국의 소득 불평등과 부실한 사회 안전망

라잔은 먼저 미국 클린턴, 부시 행정부의 잘못된 주택 정책(즉 자가 주택 소유 촉진)과 그 정책의 배경이 된 소득 및 교육 불평등을 겨냥한다. 라잔이 보기에,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번 금융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그렇지만 모든 소득 불평등이 경제 위기를 낳지는 않는다. 인도, 아프리카의 소득 불평등이 아무리 극심하다 해도, 바로 금융 위기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득 불평등이 금융 위기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여러 계기가 있다. 미국의 경우 그것은 정치권의 과도한 저소득층 주택 대출 기준 완화였다.

클린턴 민주당과 부시 공화당은 공통적으로 미국의 취약한 사회 안전망을 개선할 노력은 하지 않고, 그 대신 저소득층과 소수 인종도 자기 집을 소유하면 주거 복지와 자산 재분배가 동시에 달성되는 환상적인 세상이 나타날 것이라 여겼다. 라잔은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자가 주택 소유 촉진 정책이야말로 이번 금융 위기의 계기를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라잔이 이 책의 결론에서 (금융 시장 재규제와 함께) 사회 안전망 강화와 증세 정책을 (비록 조심스럽고 소심하게나마)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도인 라잔과 아시아 그리고 세계 경제 위기

<폴트 라인>은 한국, 일본, 타이완 그리고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국가의 경제 성장에 대해서도 많은 내용을 할애한다.

왜냐고?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가 왜 세계 금융 위기로 이어졌는지를 알려면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등 아시아의 수출 주도형 국가들이 과거에 어떻게 성장했고, 1990년대 들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하여 2000년대에 왜 그렇게 많은 외환 보유고를 축적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아시아 각국은 보유한 외화로 미국의 국공채(특히 미국의 주택 금융 공공 채권)를 구입했다. 바로 그런 외국 자금이 미국의 주택 금융 시장에 유입되어 미국의 주택 금융 버블을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즉, 이번 세계 경제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시아의 수출 주도형 국가의 과거, 현재, 미래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필수다. 이 지점에서 라잔의 통찰은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IMF, 세계은행에서 개최하는 컨퍼런스에 가보면 이상하게도 그 국제기구의 대표 경제학자는 미국, 유럽의 백인이 아니라 인도, 파키스탄 출신 인물이다. 그들은 대개 인도, 파키스탄 명문가 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 또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왔다.

서구적, 귀족적 생활이 몸에 밴 그들은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백인 경제학자보다 오히려 더 강하게 자유 무역과 자유 금융(금융 시장 개방) 등 선진국 입장을 대변하곤 했다. 전형적인 '검은 머리 식민주의자'들이 그들이었다. (요즘에는 한국 출신 경제학들이 이런 역할을 상당 부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한국, 일본, 타이완, 중국 등에 나타난 정부 주도형 경제 성장(이것을 라잔은 '관리된 자본주의'라 부른다)에 비판적이다. 그리고 '자유 시장'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그들은 1998년의 아시아 금융 위기 역시 정부 주도형 성장 구조(한국의 경우 '박정희 체제')가 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실은 금융 위기 이후 칭송을 받는 루비니, 로고프의 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 진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라잔은 그렇지 않다. 그는 이 책에서 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는 정부개입형 경제 성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섣부른 퇴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라잔은 자신의 조국인 인도가 그 동안 가난을 못 벗어난 이유도 한국과 타이완처럼 적극적인 수출 지향 전략을 구사하지 않고 폐쇄 경제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어린 시절 체험한 인도 생활을 언급하면서, 그는 보호 무역주의 경제 정책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말한다. 그리고 그 장점을 취함과 동시에 한계를 극복하려면 인도가 타이완 또는 (1998년 이전의) 한국처럼 바뀌었어야 했고, 실제로 인도는 지난 10년간 그렇게 바뀌면서 성공했다고 말한다.

더구나 라잔은 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의 치유책으로 IMF가 동아시아 위기 국가에 요구했던 이른바 구조 개혁(이른바 '시장 개혁')은 월권 행위였으며, 더구나 그 구조 개혁의 방향 역시 잘못되었음을 비판한다. 2003년에서 2006년까지 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서 근무했던 경제학자가 이런 주장을 하다니!

라잔은 1990년대 초중반에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 필요했던 것은 (당시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정책으로 밀어붙였던)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그리고 금융 시장 개방 등 개방이 아니라 오히려 내수 주도형 경제로의 전환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1998년의 외환 금융 위기 이후의 경제 구조 개혁 역시 내수 주도형 경제로의 전환이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수출 주도에서 내수주도로 : 과연 어떻게?

1998년 당시 실제로 IMF가 요구했던 (그리고 한국에서 민주 정부들이 앞장서 수행했던) '시장 개혁'은 라잔의 지적과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 등 동아시아의 수출 경제 국가는 더욱 수출에 의존하게 되고 내수 시장이 위축되었다. (그런데 최근 그리스 등 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에 직면하여 IMF는 다시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외환 금융 시장이 대폭 개방되면서 외환 시장은 미국의 통화 정책에 따라 등락을 거듭했다. 이에 한국과 타이완,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수출 국가는 통화 안정과 수출 촉진을 위해 1999년 이래 외환 보유고를 크게 늘렸고 이 자금은 다시 미국 국공채 매입을 통해 미국 주택 금융 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동아시아의 수출 의존 경제와 미국의 수입 의존 경제, 그로 인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동아시아의 경상수지 흑자 등은 흔히 '글로벌 불균형'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미국과 IMF는 중국 등 동아시아의 내수 시장 부흥을 G20 정상 회의 등에서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글로벌 논의에서 미국과 IMF가 아시아에 요구하는 '자유 시장 구조 개혁'이 오히려 아시아의 경제를 더욱 수출 의존 형으로 만들고 있다는 라잔의 지적은 들어보기 어렵다. 물론 그 역시 동아시아 경제가 수출 의존형에서 내수 의존형으로 전환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선진국 중 이러한 전환에 실패한 나라가 일본이라면 성공한 나라는 독일과 스웨덴 등 유럽 복지 국가들이다. 라잔이 일본이 여전히 복지 국가가 아닌 생산자국가(기업 국가)로 남아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사회 불안 요인을 줄임과 동시에 수출 의존 축소 및 내수 시장 확장을 위해서 서구 형 복지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는 중국 공산당의 정책을 눈여겨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린스펀과 버냉키 : 통화 정책과 금융 감독의 한계

아시아의 경제 성장과 위기, 시장 개혁의 결과로 나타난 수출 의존 심화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피고 나서 라잔은 다시 미국 경제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1987년부터 미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한 앨런 그린스펀이 저금리 통화 정책을 추진했던 이유를 통화 이론 및 통화 정책의 관점에서 상세하게 다룬다.

2004년 2월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운영 위원이었던 벤 버냉키는 "오늘날 중앙은행 전문가는 모든 경제 불황이나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에 찬 연설을 했다. 그러나 5년 뒤인 2008년 9월, 그는 "미국의 통화 정책은 실패했으며, 경제를 안정시키고 장기 불황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면 은행에 구제 금융(국유화 포함)을 제공해야 한다"고 의회에 애걸했다.

<폴트 라인>이 갖는 또 다른 재미는 벤 버냉키나 하버드 대학 교수 그레고리 맨큐가 쓴 (전 세계 경제학도의 필독서로 꼽히는) 경제학 교과서에 소개된 거시 경제학 및 통화 금융 이론이 2000년대 미국 현실에서 어떻게 정책으로 구현되었고 어떻게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실패했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라잔은 그린스펀, 버냉키가 이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너무 낮은 금리를 너무 오래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자산 가격 버블이 붕괴하더라도 중앙은행이 다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즉 모럴 해저드 혹은 대마불사)을 금융 시장이 갖도록 했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더 나아가 그는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다음과 같은 호언을 상기시킨다.

"선진국의 경우 은행 관리 및 감독 시스템이 잘 발달했기 때문에 대출 관련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실제로 2008년 미국과 영국에서 금융 위기가 발발하자 이들의 금융 감독 및 규제 체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효율적' 자본 시장은 '먹튀' 자본 시장

아무리 뭐라 해도 라잔은 금융 경제학자다. 그리고 지배적인 재무 금융 이론에 따르면 자본 시장(특히 주식 시장)은 아주 효율적이다. '자본 중의 자본'인 자본 시장이 아주 효율적인 까닭에 자본주의는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 시스템이다. 자본 시장 효율성의 징표 중 하나가 바로 시장의 과잉 투자 즉 과잉(버블)을 미리 감지하여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로고프는 <이번에는 다르다>에서 기껏 과잉 부채만을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문제 삼는다. 그렇다면 부채의 과잉만 조절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공격적으로 부채(레버리지)와 리스크를 늘려나갔던 리먼 브라더스 같은 은행들을 왜 자본 시장은 (따라서 소액 주주 등 주식 투자자는) 일찌감치 효율적으로 단죄하지 않았을까? 라잔은 '효율적 자본 시장'의 명제를 통렬히 비판한다.

"금융 위기 기간 동안 실적이 최하위 4분위였던 은행들은, 이번 금융 위기 발발 바로 전해인 2006년까지만 해도 주식 수익률이 당시 최상위 4분위 은행들보다 훨씬 높았다. 그랬기 때문에 (주식) 시장은 이들 은행의 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그들이 더 큰 모험에 뛰어들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296쪽)

"대형 금융 기관에는 분명히 주주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은 이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을까? 그 이유는 꼬리 리스크가 유발할 수 있는 거대한 손실에 대해 주주들은 제한적인 책임만 지면 되기 때문이다. 무제한적 책임을 진 동업자들은 채권자에게 최후의 빚을 다 상환해야 하거나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아야 하는 반면, 주주는 주가가 제로로 될 경우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포기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되는 한, 꼬리 리스크 감수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이번 위기에서도 금융 기관이 기록한 엄청난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채권자와 납세자 쪽이고, 주주들은 이미 단물을 다 뽑아먹은 후라 별로 잃을 것이 없었을 것이다. (…) 그들이 감수한 리스크가 사회에 독이 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주주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 CEO의 선택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었다." (297쪽)


그는 이번 금융 위기의 배경에 주주 자본주의 즉 먹튀 자본주의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예를 살펴보자.

시티은행 이사회에는 재무부 장관과 골드만삭스 CEO를 역임한 로버트 루빈 등 스타급 인사들이 '사외 이사'로 포진해 있었다. 그런데 이들 사외 이사는 적극적으로 먹튀 자본, 즉 유한 책임만 지면되는 소수 주주(소액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연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시티은행은 리스크를 계속 늘려나가며 주가 폭등을 즐기다가 2008년 가을 파산 위기에 직면하였다.

ⓒ프레시안

햇볕은 최고의 소독제?

이익은 사유 재산화(privatization)하고 손실은 사회 재산화(socialization)하는 먹튀 자본의 행태는 미국의–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은행과 자본 시장 그리고 기업 투자자들의 속성에 뼛 속까지 박혀 있었다. 이것을 부추긴 것이 바로 그린스펀과 버냉키가 준 잘못된 믿음, 즉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월스트리트를 파산으로부터 구제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라잔은 부시 정부와 오바마 정부가 대마불사의 관점에서 시티은행, AIG 등 대형 금융 기관 구제에 적극 나선 것을 비판한다. 물론 그렇다고 정부가 금융 위기 시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금융 시장이 지나친 리스크를 감수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면서 동시에 금융 민주화를 유지할까를 고민하면서 구체적이고 상세한 대안들을 제안한다.

그런데 이걸 어떡하나? 라잔의 제안은 실망스러울 만큼 소소하다. 이유가 있다. 그는 결코 좌파(미국에서 좌파 리버럴이라 불리는)가 아니며, 오히려 미국의 정치경제학 지형에서도 중도 성향에 가깝다. 더 상세한 제안은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길 바라며, 여기서는 그의 고백을 인용하는 것으로 그치자.

"사실 내가 한 제안은 급진주의적 좌파 성향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즉 민간 분야를 총체적으로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며, 이상주의적 우파 성향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즉 정부와 규제 관련 구속을 모두 없애자는 주장과도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말해서 라잔이 제시하는 금융 규제안은 경쟁적 자본 시장은 국가 개입 없이도 자유 규제가 가능하니, 위기에 처했을 때도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위기의 대가(즉 손실)를 짊어지도록 하는 제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는 "햇볕은 최고의 소독제가 될 수 있고, 전등은 가장 효과적인 경찰이 될 수 있다"는 명언을 인용하면서, 투명성 강화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하여 라잔은 투명성 강화를 위한 금융 규제를 말할 뿐, 그 이상의 금융 규제에는 반대한다. '투명한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라잔의 이러한 태도는 왜 그가 오늘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다보스포럼, G20 정상 회의 등에서 각광받는 저명인사로 갑자기 떠올랐는지 그 이유의 한 단면을 말해준다.

투명한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를 구할 수 있을까? 현실은 정반대다. 당장 한국이 예다. 한국의 경우 1998년 이래 '투명성 강화'를 중심으로 금융 및 기업 지배 구조 개혁을 10년간 해왔는데 과거보다 '먹튀 자본주의' 현상은 오히려 수십 배나 더 심해졌다. 한진중공업의 정리 해고 사태는 이제 재벌계 대기업마저 먹튀 자본주의에 적극 가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최근 유럽과 미국의 주가 폭락과 더불어 본격화된 더블딥(double-dip) 즉 제2차 세계 경제 위기는 오늘날의 전 세계적 금융/재정 위기가 투명성 강화 정도로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바마/라잔의 한계와 제2차 세계 경제 대지진

아름다움과 용두사미, 이것이 라잔의 <폴트 라인>을 끝까지 읽으면서 떠오른 두 개의 단어였다. 라잔의 글들은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그런데 그의 결론은 용두사미로 나가온다. 왜 그럴까?

라잔은 소득 불평등("결과의 불평등") 원인의 90%는 교육 불평등("기회의 불평등")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수업 일수와 학습 기간을 연장하자",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자", "대학 진학률 및 졸업률을 높일 수 있는 지원책을 강화하자" 등 상세한 교육 대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과연 교육 불평등이 해소되면 소득 불평등이 해소될까? 오히려 그 반대가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또 라잔은 교육적 대안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미국의 실업 안전망과 사회 안전망, 특히 의료 보험 제도를 개선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재정 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부가가치세(미국에는 아직 부가가치세가 없다)와 탄소세(공화당이 반대하는)의 도입과 함께 부유층에 대한 일부 증세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라잔이 제안하는 정책 대안은 하나 같이 오늘날 오바마 정부의 그것과 같다. 뉴딜 동맹(복지 국가 동맹)의 부활과 케인즈 경제 정책(강한 정부 개입과 시장 규제)을 과감하게 주장하는 미국의 '리버럴' 진영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이나 로버트 라이시의 그것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폴트 라인>의 서평을 마치는 시점에서 미국의 오바마 민주당 정부는 복지 지출 삭감 등을 통한 국가 부채 감축과 함께 부자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공화당에 굴복했다. 그리고 그 직후 미국 국채 신용 등급 하락과 함께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주식 시장에서 대폭락의 쓰나미가 시작되었다.

바야흐로 세계 각국은 1930년대 대공황과 유사한 파국적인 경제 대지진의 가능성을 앞에 두고 전율하고 있다. <담대한 희망>으로 시작하여 용두사미로 끝난 것이 오바마 민주당의 중도주의다. 오늘날 오바마와 라잔이 취한 중도주의 입장의 정치경제학은 그 역사적 현실적 한계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역사 속의 진리는 다차원적 시공간상에 존재한다. 진리는 진보임을 자처하는 자의 일차원적 전유물이 아니다. (같은 논리로 보수 역시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역사는 진리를 비진리로, 비진리를 진리로 전환시키면서 진리와 비진리를 뒤섞고 그 각각의 한계를 모순적으로 결합하는 변증법 속에서 전진해 나간다.

따라서 역사적 현실을 깊게 파악하면서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진리를 풍성하게 하는 중도적 지식인의 관점은, 그것이 라잔과 같은 양심적 지식인의 사려 깊은 것일 때는, 각별하게 주목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폴트 라인>이 바로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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