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최근 일본을 따돌리고 먼저 미국 고속철도 사업을 수주했다는 언론 보도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하지만 철도 전문가들은 “이미 고속철도 경쟁력은 한국이 중국에 밀린지 오래됐다”며 “우리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중국 고속철도의 발전 속도를 보면 경이로울 정도다. 중국은 한국보다 4년 늦은 2008년 베이징~톈진 고속철도를 처음 개통했지만 이미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철도 노선을 갖췄다. 수출 실적이 전무한 한국과 달리 일본, 독일, 프랑스 등과 경쟁하며 수주전에 나서고 있다.
세계 최장 고속철도 운영국가
한국무역협회와 국토교통부, 철도기술연구원 등에 따르면 한국이 2004년 이후 10년간 늘린 고속철도 노선은 351㎞(239㎞→590㎞)다. 반면에 중국 내 고속철도는 총 1만6000㎞에 이른다. 전 세계 고속철도 길이의 60% 수준이다. 2009년 우한~광저우 구간을 개통했고 정저우~시안, 하얼빈~다롄 구간 등을 연이어 개통했다. 최근엔 북한의 접경 도시인 단둥~선양간 고속철도가 개통했다.
지난해 중국의 고속철도 승객은 8억명. 한국은 오는 24일 개통 11년만에 비로소 누적 승객 5억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중국의 철도 분야 투자 금액은 지난해 8088억 위안(약 150조원)으로 2013년보다 21.8%가 늘었다. 작년 한해 중국이 개통한 노선도 8427㎞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가격이 유럽의 3분의2
이렇게 거대한 내수 시장에서 오늘도 쉴틈없이 고속철도 운영 경험을 쌓고 있는 중국은 이미 세계 철도 시장도 집어 삼키고 있다. 터키에 고속철도 차량을 수출했고 올해 6월엔 러시아의 첫 고속철도인 모스크바~카잔 고속철도 사업을 따냈다. 그리고 채 1년도 안돼 미국 고속철도 수주 소식이 나왔다.
지난해 고속철을 포함한 중국의 철도 차량 수출액은 267억7000만 위안(약 5조원). 해외 시장이 80여개국에 이른다. 뉴질랜드,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엔 기술 표준도 수출하는 상황이다.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케냐 등에 건설한 철도는 중국 표준에 따라 시공됐다고 한다.
중국 고속철도의 경쟁력은 우선 저렴한 건설 비용과 짧은 공기(工期)에서 나온다. 건설 비용은 1㎞당 8700만~1억2900만 위안(약 160억~230억원)으로 유럽이나 미국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공기도 유럽이나 미국의 4분의 3 수준이다.
차량 경쟁력은 일본이나 독일을 위협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기술력의 상징인 최고 속도에서도 지난해 시속 605㎞ 시험 운행에 성공해 세계 최고 기록을 깼다. 그동안 세계 1위는 프랑스가 2007년에 세운 574.8㎞였다. 한국의 최고 기록은 ‘해무’가 세운 시속 421㎞다. 여기에 중국은 다양한 지질·기후 조건에 맞는 고속철도를 개발·건설한 노하우도 갖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도 넉넉하다. 중국수출입은행은 지난 1월까지 35개 해외 철도 사업에 130억 달러(약 15조원)를 지원했다고 한다. 작년 12월 중국 2대 고속철 업체인 베이처(北车)와 난처(南车)가 합병해 탄생한 중처(中车)는 자산 규모 3000억 위안(약 55조원)의 세계 최대 고속철 업체다.
물론 이런 중국의 기술력과 수주 실적 등에 대해선 사실 관계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베일에 가려진 면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고속철도 수출 국가의 단계를 빠르게 밟아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국은 ‘기술 도입→거대한 내수 시장에서 노하우 축적→아프리카 등 우호적인 개발도상국에 차량 수출→선진국에 부가가치가 높은 차량+건설의 결합 상품 수출→철도기술표준 확산’의 단계를 마무리 짓고 2018년 1900억 유로(약 2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철도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 한국
반면에 한국은 좁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고 있다. 기술 수준도 현대로템 등 일부 기업의 독점 체제 아래서 발전이 더디다. 한 철도 전문가는 한국의 고속철도 기술 경쟁력에 대해 “노반을 놓는 토목 기술은 뛰어나지만 핵심 기술인 차량, 신호, 통신 시스템 기술은 수출 시장에 명함을 내놓기 민망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사업 수주전에 뛰어들었지만 경쟁력의 차이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정부 안에선 “어떻게라도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란 얘기가 나온다. 이대로 국내 시장에만 머물다간 가능성조차 막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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