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대통령 박근혜와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이 미국 뉴욕에서 ‘찰떡 궁합’을 과시했다. 박근혜는 3박6일의 뉴욕 체류기간에 반기문을 7번이나 만났다. 두 사람은 비공식으로도 몇 차례나 만났다.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와 똑같은 국적을 가진 유엔사무총장이 빠듯한 일정에서 시간을 여투어 그를 자주 만나는 것이야 목적이 정당하다면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 유엔총회에 참석해서 기조연설을 하는 것이 박근혜의 가장 큰 공식 업무였는데 반기문과의 잦은 만남이 더 ‘중대한 일’처럼 보였다.
박근혜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반기문과 20분 동안 ‘독대’를 한 뒤 유엔의 주요 인사들과 만찬을 가졌다. 가뜩이나 집권세력 안에서 차기 대선후보를 둘러싼 논란이 어지러운 마당에 박근혜가 세계의 안보와 평화에 집중해야 하는 유엔사무총장을 하루에 두서너 번이나 만나 무슨 대화를 했는지에 대해 국민들은 당연히 깊은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박근혜는 9월 26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한국 정부와 유엔개발계획(UNDP),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동주최한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개회사를 통해 “대통령이시던 선친께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떠한 성공 요인들이 어떻게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서 국민과 나라를 바꿔놓는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기문은 그 행사에서 “새마을운동이 처음 시작될 때 나는 공무원으로서 그 운동을 실행으로 옮기는 노력을 했다”며 “내가 살던 나라가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가난했던 마을과 주민의식의 급진적인 변화를 목격했다”고 밝혔다. 박정희 정권이 1971년에 시작한 새마을운동에 대한 박근혜의 평가는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다른 미사여구와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는다. 새마을운동의 본질과 결과에 대해서는 오유석이 2003년에 발표한 ‘농촌근대화전략과 새마을운동’이라는 논문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3대 정신 중 하나로 ‘협동’을 내세웠지만 사실 그것은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칠 뿐 실제로는 주민들의 자유권 행사가 거부되고 창조적인 진취성을 기대할 수 없는,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강요된 협동이었다. 집단적인 노력동원에 기초한 생산과 소득증대를 추동하기는 하였으나, 이 과정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부락공동체의 배타적인 정신풍토 내지 집단심리를 이용하고 마을 간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농민들 간, 마을 간의 횡적 유대관계와 상호 대등한 관계에 기초한 협동은 끊어졌다. 그 자리를 국가와 농민(또는 국민)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대신하게 되었고, 횡적 관계를 잃은 수직관계는 모든 농민을 ‘국가와 조국 근대화를 향해 나란히’ 정렬하도록 집체화(集體化)했다. 그리고 이러한 집체화 과정에서 반드시 생기게 마련인 중간 매개의 통제집단으로 새마을지도자와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것을 구성하여 새롭게 재편된 수직관계의 체계화를 이어주고 지탱해주는 말단 ‘끄나풀’로 이용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군대식 ‘집체형’ 동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박근혜의 주장대로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들’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서 국민과 나라를 바꿔 놓았다면, 박정희는 왜 그 운동을 시작한지 한 해만에 ‘10월 유신’이라는 헌정 쿠데타를 일으켜 온 나라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어야 했을까? 그리고 왜 농촌의 젊은이들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려야 하는 대도시로 몰려들어 마침내 농촌에서 중장년과 노인들이 농사를 도맡다시피 하게 되었을까? 반기문은 앞의 유엔 행사에서 “새마을운동 성공의 핵심 요소는 교육이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동참해 사회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그 핵심에 교육이 있다”며 한국 정부가 새마을운동의 개발도상국 전수를 통해 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데 대해 박근혜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도대체 새마을운동이 현재 한국에서 어떤 교육적 성과를 거두고 있기에 그것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겠다는 것인가? 한국사회의 교육 자체가 ‘승자 독식’ ‘기득권 강화’의 도구가 되어 있는 세계 최악의 상황인데 유독 ‘새마을운동 교육’만은 생산적이고 진취적이라는 뜻인가? 박근혜는 유엔 행사에서 “지금도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현재진행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한 뒤 “새마을운동이 각국의 특수성과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글로벌 농촌개발전략과 국가발전 전략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의 박정희 식 ‘한국적 파시즘’을 독재국가들에 수출하겠다는 것이라면 몰라도 참으로 어이없는 ‘포부’이다. 반기문은 유엔사무총장 자격으로 ‘새마을운동 국제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새마을운동이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면서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를 향해 ‘박비어천가’를 불렀다. 노무현 정권이 음양으로 도와 어렵사리 유엔사무총장이 된 그의 변신에 대해 외교관 사회에서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한다. 그 사회에서 나도는 반기문의 여러 별명 가운데는 ‘반반(反潘)’이라는 것이 있다. “반기문 따라 하다가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하니, 아예 따라 할 생각을 말라”는 뜻이다(<경향신문> 인터넷판 9월 27일자). 반기문은 대통령후보가 될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2016년에 유엔사무총장 임기를 마치는 그는 결심만 한다면 2017년의 대선 출마 준비를 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그가 이른바 ‘친박’의 도움으로 대선에 나서건 야당과 손을 잡건, 그것은 그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반기문이 만약 대선에 출마한다면, 현재 박근혜의 ‘새마을운동 홍보대사’ 역할에 충실한 그가 그때는 어떤 정책과 이념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할지가 궁금하다. |
Tuesday, September 29, 2015
반기문은 갑자기 왜 새마을운동 ‘홍보대사’가 됐나 [김종철 칼럼] 유엔사무총장의 닭살 돋는 ‘박비어천가’… 반기문은 박기문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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