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이 말하는 거 다 진실입니다?
2012년 국정원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참여한 이유로, 국정원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한 인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나이도 지긋하신 분이었지만, 지긋한 나이만큼 배움도 깊은 분이었다. 학사, 석사 학위만 7개에 달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분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간 내가 만났던 어른들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 그리고 정보를 다루는 기관에 있었던 만큼 나와는 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예상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그에게 던져봤다.
“조중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보를 다루는 기관에 계셨는데, 조중동이 말하는 것들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의 대답은 아주 간결했다. “조중동이 말하는 거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진실입니다.”
굳이 ‘조중동’이 아니라도, 언론이 말하는 것들이 다 진실일 순 없다. 언론은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할 임무가 있을 뿐 실제 공정한 보도 혹은 사실 보도를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겨레, JTBC와 같은 신뢰 받는 언론들도 늘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은 아니다. 실수도 있고, 때론 주관이 개입되기도 한다.
헌데, 내가 인터뷰했던 그분처럼 언론이 말하는 것은 모두 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믿음은 위험하다. 믿음이 가중될 때, 언론은 이에 기초해 사람들을 세뇌시키며 잘못된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 <1984>에 나오는 언론의 역할이 꼭 소설 속의 얘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론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뉴욕타임즈의 거짓 보도에 근거한 '방관자 효과'
미국의 정론지로 이름이 높은 <뉴욕타임스>의 경우도 때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이 큰 영향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그 영향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우리가 상식 책에서 ‘방관자 효과’라고 배우는 이론의 배경이 된 사건이 그러하다. ‘방관자 효과’는 <뉴욕타임스>에 의해 잘못 보도된, 아니 거짓 보도된 내용에 기초해 등장한 이론이다.
이 이론의 배경은 ‘키티 제노비즈 사건’이다. ‘키티 제노비즈 사건’에 대해 알려진 바는 다음과 같다. 이는 오정호 PD의 책 <대중 유혹의 기술>을 참고했다는 점을 밝힌다.
1964년 3월 새벽 3시 뉴욕 퀸즈의 큐 가든의 한 바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하는 키티 제노비즈는 퇴근 중이었다. 그녀는 집 근처 롱아일랜드 레일로드 역 주차장에 자신의 피아트 자동차를 주차한다. 문득 누군가 뒤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 그녀, 순간 뒤쫓아온 괴한에게 수차례 등을 찔린다.
그때 건너편 아파트 7층에서 이를 목격했던 누군가가 소리를 친다. “그 여자를 내버려둬” 이 소리에 놀란 괴한은 도망을 치지만, 누구도 거리로 나와 그녀를 도와주는 이는 없다. 제노비즈는 기어서 남의 집 현관을 열고 도움을 청했지만 따라온 괴한으로부터 강간 살인을 당하게 된다. 키티 제노비즈가 공격을 받은 지 30분이 넘어 경찰은 도착한다.
키티 제노비즈 사건의 진실은?
이 사건은 같은 해 3월 27일, ‘37명, 살인을 보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뉴욕타임즈> 1면 기사로 실린다. 이후 이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화제가 됐다. 젊은 여성이 위기에 처한 순간 목격자 38명 중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목격한 38명이 누구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탐문했고, 그들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일부 주민은 ‘무관심 퇴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사건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미국 시민들의 개인주의가 극에 달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1968년 심리학자 빕 라탄과 존 달리는 ‘방관자 효과’라는 이론을 만들어낸다. 또한, 사건 발생 지역인 큐 가든의 주민들은 무책임한 사람들, 부도덕한 사람들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헌데, 진실은 달랐다. <뉴욕타임스>에 의해 졸지에 방관자로 낙인찍힌 주민들은 <뉴스타임스>의 보도 내용과 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당일 건너편 아파트 2층에 있던 샘 호프만은 경찰에 신고를 했으며, 그의 아들 마이클 호프만은 범인을 향해 “그 여자를 내버려둬”라고 소리쳤다. 아파트 4층에 있던 프랑스인 앙드레 피크는 자신의 짧은 영어 때문에 수화기를 내려놓기는 했지만, 경찰에 신고하려 했다고 말했다.
또한, 어떤 주민들은 그 사건을 단순히 연인들 간의 말다툼으로 생각하거나, 키티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으로 착각했다고 말했다. 진실은 이러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방관자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는 않았다. 또 다른 오해를 받을까 두려웠던 이유다.
<뉴욕타임스> 거짓보도의 결과는?
2014년 이 사건을 재조명한 저널리스트 케빈 쿡은 <뉴욕타임스>가 확실한 근거 없이 38명의 주민을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몰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생각에 당시 <뉴욕타임스>의 편집자였던 로젠탈은 도시 생활의 잘못된 점을 보여줄 만한 이야기를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도시에서의 생활은 우리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 앞에서도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피해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창밖으로 바라만 보는 인간 군상으로 만들었다라는..(중략).. <뉴욕타임스>는 이 중요해 보이던 이슈를 잘 보여주는 이 사건을 기회로 삼았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를 보도한 것입니다.”
<뉴욕타임즈>가 무엇을 의도했던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 이 사건을 그들이 보도한 이후 뉴욕은 더 안전해졌다. 뉴욕 시는 키티 제노비즈 사건 이후 도시의 가로등 불빛을 더욱 밝게 했고, 911 신고 시스템을 일원화했다. 또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을 법적 의무조항으로 규정한 ‘굿 사마리안 법’도 제정됐다.
결과만 보면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공익에 이바지한 셈이다. 그러나 그들의 거짓보도로 인해 몇 년간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방관했다는 비난을 들은 자들의 피해는 어떻게 보상돼야 할까? 또한, 결과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그들의 거짓이 더 큰 사회적 혼란을 불러왔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했을까? 그들의 거짓보도는 한 번뿐이었을까? 그들은 늘 선의의 거짓말을 해왔을까?
우리는 <뉴욕타임스>의 보도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이유로 오늘도 '방관자 효과'를 현실에 기초한 이론으로 배우고, 또 알고 있다.
언론의 거짓보도가 심각한 피해를 준 사례
다른 몇 가지 사례를 보면 더욱 우리가 언론의 잘못된 보도를 경계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1.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당시 일본 정부(언론)는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소문을 냈다. 조선인들이 일본인의 집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유언비어도 퍼뜨렸다. 그 결과 약 6000명의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일본 자경대원들에게 무차별 살해당했다.
2. 2005년 8월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했다. 도시의 80%가 물에 잠겼다. 모든 공공서비스는 파괴되거나 중단됐다. 약 2000여 명이 스포츠 경기장으로 피신했다. 뉴올리언스 경찰청장 에디 컴퍼스는 TV토크쇼에 출연해 “(슈퍼돔에) 어린아이들이 있었는데, 어떤 아이들은 강간을 당했지요”라고 말했다. 이는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이 때문에 재난 구호에 투입돼야 할 인력이 흉악범 소탕에 투입됐다. 구해야 할 사람은 구하지 않고 엉뚱한 적과 싸운 셈이다.
3.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한국 언론들은 전원 구조가 됐다며 다행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진도 앞 바다로 가려던 민간 잠수사들, 일부 구조대들은 안도하며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그 시각 세월호는 잠기고 있었다. 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거짓보도가 없었다면 단 1명의 아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언론을 이용하되,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
물론 모든 언론이 의도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 역시 인간이기에 사실을 잘못 파악하거나 주관이 개입된 보도를 하게 될 뿐이다. 문제는 의도적인 거짓말을 하는 일부 언론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에 걸맞도록 사실을 각색해 보도한다. 각색된 사실은 사람들의 관점을 뒤바꾸며, 때론 위의 사례와 같은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더구나 지난 10년, 우리 언론은 점차 자유를 잃어왔다. 민주정권시절 31위이던 언론 자유도 순위는 지난해 68위로 추락했다(프리덤 하우스). 이러한 상황에서는 더욱 언론을 신뢰하기 힘들다. 그들은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거짓된 보도를 일삼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조중동이 말하는 거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진실입니다.”
그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언론을 맹종해선 안 된다고, 누군가에 의해 당시의 생각과 관점이 지배당하길 바라지 않는다면, 잘못된 정보로 인한 폐해를 줄이고 싶다면, 언론을 이용하되, 경계심 역시 늦추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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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3, 2015
언론은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공정한 보도, 사실 보도를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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