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 제3차 대구시국대회’가 열린 19일 오후 5시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 중앙네거리~반월당네거리(600m) 도로가 사람들로 가득하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대구의 ‘저항정신’이 30년 만에 다시 되살아 난 것일까?
1946년 10월 항쟁의 시작은 대구였다. 미군정의 친일 관리 고용과 강압적인 식량 공출에 맞서 대구 사람들이 처음 들고 일어났다. 대구에서 시작된 이 시위는 이후 경남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횡포에 반기를 든 것도 대구였다. 1960년 2월28일(2·28민주운동) 대구에서는 학생 1200여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이승만 하야’를 외쳤다. 이 시위는 3·15마산의거,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대구 사람들은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 12대 총선에서 야당에게 절반의 표를 주기도 했다. 30년 전 대구가 보여준 마지막 ‘야성’이었다.
19일 오후 5시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 중앙네거리~반월당네거리(600m)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제3차 대구시국대회’에는 2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를 외쳤다. 아빠와 엄마는 “훗날 자식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면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함께 나왔다.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 학생들도 나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향해 촛불을 들었다.
대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한 것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30년 만이다. 2008년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대구 촛불집회(7000명)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70대 이상의 나이 든 사람은 거의 없었고, 60대 이하의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구갑)과 무소속 홍의락 의원(대구 북구을)도 나와 촛불을 들었다.
김영순(50) 대구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내가 86학번으로 1987년 대구에서 학생 민주화 운동부터 했었는데 그때 이후로 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나온 것 같다. 지난 30년 동안 대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온 것은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 장지혁(33)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은 “초를 1만개 준비했는데 처음에 금방 다 나갔다. 정확한 촛불집회 참여 인원을 파악하려고 앞줄부터 숫자를 세다가 1만4000명까지 세고 포기했다”고 했다.
대구·경북의 70여개 단체가 연대한 ‘박근혜 퇴진 대구비상시국회의’는 지난 5일 대구 중구 2·28기념중앙공원 옆 길(길이 180m·너비 9~13m)에서 1차 대구시국대회(3000여명)를 열었다. 지난 11일에는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길(길이 100m·너비 11m)에서 2차 대구시국대회(4000여명)를 열었다. 하지만 참가자가 계속 늘어나자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 중앙네거리~반월당네거리(길이 600m·너비 21m)로 촛불집회 장소를 옮겼다. 대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집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일 오후 5시 ‘박근혜 퇴진 제3차 대구시국대회’가 열린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 중앙네거리~반월당네거리(600m)에서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권우현(15)군은 “어른들은 학생들보고 집회에 가지 말라고 하시는데 우리도 나가야 세상이 바뀌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친구들과 나왔어요. 우리가 어른이 되면 정당만 보고 선거를 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에요”라고 말했다. 문정원(15)양은 “집에만 있을 수 없었고 젊은 사람들이 세상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왔어요. 저희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면 지금 어른들과 달리 공약과 사람을 보고 신중하게 투표를 할 생각이에요”라고 했다.
이날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오후 6시30분부터 한시간 동안 중앙네거리~공평네거리~봉산육거리~반월당네거리~중앙파출소 2.1㎞를 행진했다. 참가자가 많아 행진 행렬이 600m나 이어졌다. 사람들은 도심을 행진하면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김정엽(47·중구 삼덕동)씨는 “대통령은 지금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시위하니까 퇴진을 안 하고 버티는 것 같다.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집에 있지 못해 가족과 함께 나왔다. 대통령이 국민을 좀 무서워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익철(59·남구 이천동)씨는 “대구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슬그머니 내리고 풀이 죽은 모습을 보일 게 아니라 과거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몰표를 준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대구 사람들은 전국에서 제일 경제적으로 못 살면서도 늘 다른 지역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살아왔다”라고 비판했다.
촛불집회는 경북 곳곳에서도 열렸다. 경북 포항 북구 신흥동 북포항우체국 맞은편, 경주 성동동 경주역 광장, 안동 삼산동 안동문화의 거리, 영주 휴천동 영주역 광장, 상주 서성동 왕산역사공원, 성주군 성주읍 성주군청 맞은편 주차장, 김천시 성내동 김천역 광장 등 8곳에서 촛불이 켜졌다.
‘박근혜 퇴진 대구비상시국회의’는 토요일인 26일 오후 5시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 중앙네거리~반월당네거리에서 네번째 대규모 촛불집회인 ‘박근혜 퇴진 제4차 대구시국대회’를 열 계획이다.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저녁 7시 대구 중구 동성로 야외무대 앞에서 촛불집회를 이어나간다. 대구/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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