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유엔에서 새마을운동의 성공을 언급하면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관심을 받을만하다. 박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언급에 대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산불처럼 새마을 운동 번져’라고 극찬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 집권 전반기를 넘긴 박근혜 대통령이 국내 경제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해외에 나가, 국내에서 아직 그 공과를 놓고 극단적인 평가가 공존하는 아버지의 치적 가운데 새마을운동을 칭송하는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국내 경제는 수출입이 동반추락하고 가계부채의 급증 속에 중장기적 성장 모멘텀을 상실해 장기적 저성장 기조에 빠지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독재자의 개발독재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새마을운동 칭송가가 해외무대에서 터져 나온 것은 예사롭지 않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가 개발독재시절 도시와 경제적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던 농촌문제를 해결하려고 제기한 관제 사회운동이다. 60년대 초 이후 박정희는 재벌을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시도하면서 농촌 인구를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로 유출시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밀집한 기형적 경제 구조를 만들었다.
정부가 주도한 새마을운동은 70년대까지 농촌의 주택개량, 기반시설 개선 등에 기여하면서 소득 증대에 기여했지만 80년대 들어 한국 정치, 경제 구조가 급변하면서 동력을 상실했었다. 이 운동은 한국 사회가 급속히 산업화되면서 농촌 인구의 도시유입과 소득격차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 개선에 기여하지 못했고 특히 이 운동을 둘러싼 부정부패 등의 부작용도 속출했다. 이후 정부는 이 운동을 중앙 집중 형식에서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개도국 지원 등과 같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왔다.
오늘날의 한국 경제는 국가간 순위에서 12~13위권의 경제적 기적을 이룬 외형적 발전은 확실히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소수 재벌의 경제적 비중이 과대해지면서 양극화 심화 속에서 자살률이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를 기록하는 살인적인 기형사회의 모습이 되었다. 박정희식 경제발전 모델의 막장이 아니냐 하는 평가가 나오는 속에 그 딸이 설거지로 나선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2년여 동안 그 실체가 모호한 창조경제를 앞세우고 전국 여러 지역에 재벌이 중심이 된 발전 기지를 만들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래의 기업 프랜드리 정책을 지속하면서 기업 증세 등 대자본의 사회적 비용 지출 증대에 한사코 반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부족한 세수를 담배값 인상이나 벌과금 인상 등으로 메우는 희한한 정책이 남발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있다.
박 정권의 경제 정책은 아버지 박정희의 재벌중심 경제 성장론과 유사해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국가 경제의 핵이고 정부가 그것을 최대한 뒷받침한다는 개념 하에 추진되고 있다. 대신 노동자들의 해고를 쉽게 하거나 고 연령층의 실질적인 임금을 줄이고 대신 청년 일자리를 마련한다는 식의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비정규직의 양산 가능성을 방치하는 식의 경제정책을 강행하려 시도 중이다.
박 정권이 추진하는 노동정책이 지닌 불합리성은 유럽연합의 노동자 권익 보호 정책과 비춰보면 경제민주화에 심각하게 역행한다. 유럽연합은 노동자와 기업과의 관계에서 노동자가 약자라는 시각에서 노동자를 모든 경우에 보호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고 최근 유럽으로 이민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유럽이 노동자 복지를 철저히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기업 등의 탈세나 불법영업 등과 같은 문제가 속출하지만 그 개혁에 눈을 감고 기업에 비해 상대적인 약자인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 취업정책 등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노동자들의 법적 평등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동일 직장에서 동일노동을 할 경우 동일 급여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곳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취업 계약 기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정책은 노동 현장의 불평등을 법제화한다는 측면에서 인권보호라는 원칙에 역행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 성공을 해외에서 소리높이 외친 것은 향후 국내에서 추진할 경제정책의 방향이 반노동자적으로 갈 것을 시사한다. 즉 60년대 새마을운동이 도시 산업화를 위해 농촌의 희생을 강제한 정부 경제 정책의 보조기구로 활용된 것처럼 오늘날의 경제문제도 노동자들의 사회적 위상을 기업에 비해 약화시키는 쪽으로 몰고 가 해소하려는 함의가 담겨 있다고 보여 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에서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으로 신뢰에 기반을 둔 지도자의 리더십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국민의 참여 등을 꼽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국내에서 하지 못한 말을 해외에 나가 외치는, 어떤 면에서 한 풀이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개발독재가 낳은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사회적 경제 구조를 오늘날처럼 심각하게 악화시킨 그 어두운 면은 외면하는 자세를 박 대통령이 나머지 임기 동안 지속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유엔수장으로써 덕담을 넘어 ‘박비어천가’를 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를 낳는 것은 향후 대선 등을 포함한 정치 문화 발전 차원에서 불행한 일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