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9월 28일 낮 부산 롯데호텔에서 전격적으로 만났다. 추석을 맞아 부산을 찾은 두 대표가 총선과 관련한 오찬회동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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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연휴가 한창인 9월 28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결단을 내렸다. '총선 규칙'을 제1야당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협의해 일정 부분 합의한 것이다. 회동 시점과 방식 모두 전격적이었다. 김 대표가 먼저 회동을 요청했고, 문 대표를 만나기 위해 김 대표가 직접 부산까지 내려갔다.
야당 혁신안 관철시켜준 여당 대표
양당 대표가 합의한 총선 규칙 중 주요 골자는 '안심 번호'를 도입한 '국민공천제'다. 언론에서는 이를 '전화 오픈프라이머리'라고도 평가한다.
시계를 돌려 지난 9월 7일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발표한 제10차 혁신안 내용 중 공천제도를 들여다보자. 이날 혁신위는 '안심번호 도입 시 국민공천단 100% 경선' 방침을 혁신안으로 공개했다. 양당 대표가 합의한 내용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안심번호를 이용해 휴대전화를 통한 지지(여론조사)도를 바탕으로 총선 후보를 결정짓겠다는 내용인 것이다.
'안심번호'는 지난 8월 25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직선거법심사소위원회에서 의결한 내용으로 당내 경선 및 여론조사에서 활용되기 위해 '임시적'으로 형성되는 번호를 의미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안심번호를 사용하고자 하는 정당은 지역 선거관리위원회 심사를 거쳐 이동통신사에 경선 선거인단의 20배까지 안심번호를 요청할 수 있다.
안심번호는 기존 휴대전화 번호에 별도의 또 다른 번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통사에서는 번호 외 성별이나 연령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 즉, 이 번호를 이용하는 정당에서는 경선 및 여론조사 용도의 '임시 번호'만을 받게 되는 것으로 조사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없다. 조직을 동원한 경선 행위 등이 무력화됨을 의미한다.
이 제도는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껏 지역구 선거의 여론조사는 '유선전화'로 진행됐다. 개인정보보호법 등으로 인해 휴대전화를 통한 수신자의 지역구를 알 수 없었다. 유선전화를 설치하지 않는 가구가 많고, 있다 하더라도 유선전화를 낮 시간대에 받는 연령층이 제한돼 있다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됐다. 안심번호는 휴대전화이기 때문에 조사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이날 양당 대표가 합의한 내용이 실현된다면 야당의 혁신안을 여당 대표가 관철시켜주는 모양새가 된다. 보기에는 훈훈한 광경이나 기존 여야 대립에 익숙한 국민들에게는 낯선 광경이다. 김 대표는 왜 이런 합의를 추석 명절임에도 추진하게 됐는가.
'국민공천제' 관철? '친박'과 대립각 세운 김무성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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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둘러싸고 '친박' 의원들이 매우 민감한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윤상현·홍문종 등 '친박 전위대'뿐만 아니라 '좌장'으로 지칭되는 서청원 의원까지 공개적으로 김무성 대표의 '오픈 프라이머리'는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청와대 특보를 겸하는 윤상현 의원은 "친박 대선주자"까지 언급했다. 양측의 긴장 수위는 높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행보 또한 정치적 해석을 낳기에 충분했다. 대구와 인천을 방문하면서 대구 지역 의원들을 수행에서 배제한 것도 뒷말을 만들었고, 3박 6일간의 짧은 미국 방문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반기문 UN사무총장과 일곱 번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석 명절 동안 반 총장과 박 대통령이 환하게 웃는 장면이 여러 차례 방송에 등장하는 것 또한 뒷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움직였다. 안심번호를 통한 국민공천제라는 '플랜B'를 가지고 야당을 설득했고, 끝내는 '전화 오픈프라이머리'를 살려 나가는 모양새를 만든 것이다. 김 대표는 추가로 '전략공천은 없다'고 쐐기까지 박았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서 양당 대표가 합의한 룰이 총선 규칙으로 확정된다면 내년 총선에서 박 대통령 입지를 찾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확실한 '박근혜 사람' 역시 '안심번호 국민공천'이라는 허들을 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해서는 안 된다. 지난 2004년 탄핵 총선의 교훈을 우리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의중을 받들어 모시지 않는 이상, 대통령이 총선에서 할 수 있는 행동에는 명백한 제약이 존재한다.
9월 28일 양당 대표의 합의내용 중에서 '친박'이 주목할만한 내용이 또 등장하는데, 바로 '예비후보 등록을 총선 6개월 전으로 연장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기존까지는 '4개월 전'이었다. 이 연장의 의미는 단순히 정치 신인들에게 활동할 기회를 더 부여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다. 내년 4.13총선의 6개월 전인 2015년 10월 13일 즉, 2주 후부터 총선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전략공천도 없고, '국민공천제'이기 때문에 '박심'을 구현할 사람을 심을 방법도 없다. 게다가 10월 13일부터 차기 총선 체제로 이행한다. 이대로 친박은 차기 공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가.
회심의 일격 허용한 '친박'... 박 대통령 vs. 김무성 모양새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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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의 반격에 주목한다. 지난 9월 10일 사위 마약 뉴스가 터진 이후 그는 침묵했다. 뉴스가 터져 나오자 '친박' 의원들이 기세등등하게 '오픈 프라이머리'를 비판했지만 그는 침묵했다. '친박'의 목소리는 컸고 그의 침묵은 길었다. 그 침묵이 길었기에 김 대표 사위 마약 논란에 대한 구구한 해석들이 많이 나왔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정중동의 행보를 이어갔다.
그런 그가 추석 명절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가지고 추석 밥상에 올랐다. 그간 수세적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킬 정도로 공세적이고, 속도감까지 느껴졌다. 정치개혁 명분도 대내외에 천명했다. 총선 규칙을 제1야당 대표와도 합의했다.
하나는 확실하다. 문재인 대표는 별 어려움 없이 김 대표와의 합의 내용을 처리할 수 있다. 이미 혁신위원회에서 발표한 개혁안 내용이기 때문이다. '안심번호'를 여당과 합의해서 공천에 도입하게 된 것, 즉 혁신위 안을 실행시키게 된 것 자체도 성과다. 여기에 더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도 관철시킨다면 문 대표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또 하나가 분명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한 직후인 30일부터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간의 극심한 대립으로 치닫게 될 것이란 대목이다. '친박'도 명확히 깨달았을 것이다. 김 대표가 야당 대표와 합의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마이웨이'를 선언했다는 점을 말이다. 김 대표는 명백하게 '위화도 회군'을 감행했다. 이제는 양측의 힘 대결만이 남은 형국이다.
'친박'의 힘은 박 대통령뿐이다. 지난 '유승민 파문' 때 의원총회를 거쳐서 힘의 우위가 확인됐다. 의석수나 조직력에서 친박은 비박을 제압하지 못했다.
지난 6월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한창일 때 김무성 대표가 기자들에게 "대다수 의원의 의견은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가 싸웠을 때 유 원내대표가 이길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 편을 들었다. 그 결과 유 원내대표는 퇴임 기자회견문을 읽고 물러나야 했다. 그의 퇴진에는 박 대통령의 결연함과 김무성 대표의 힘이 작용했다.
이제 '대통령과 김 대표가 싸우게 되는 상황'이다. 이 싸움에 중재자가 있을 것인가. 대통령만 있는 '친박'과 대통령만 없는 김 대표 사이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9월 30일로 예정된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양측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로 간에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허 찔린 친박과 박 대통령의 다음 수는 과연 무엇일까. 포문은 김 대표가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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